<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 ⑤복학생 시절이 떠오르는 <족구왕>

삶의 가치 돌아보게 하는 마력 지녔다

일요시사 전창걸 칼럼니스트 = 개그맨, 영화인, 영화평론가 등 다양한 옷을 입고 한국 대중문화계를 맛깔나게 했던 전창걸이 돌아왔다. 한동안 대중 곁을 떠나 있었던 그가 <일요시사>의 새 코너 ‘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의 영화칼럼니스트로 대중 앞에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는 MBC <출발! 비디오여행>의 ‘영화 대 영화’ 코너에서 전창걸식 유머와 속사포 말투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로써 영화로 보는 세상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족구왕>이다.

군대를 제대하던 89년 10월이었다. 대학 한 학기 남기고 휴학을 했던 터라 다음년도 가을학기까지 거의 1년은 여대 동아리 연극 연출, 여성국극 무대감독, 반월지구 아파트 일용직 등 아르바이트와 반백수를 믹싱하며 보냈다.

복학생의 향기

그후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뉴스를 보고 가을학기에 복학했다. 그해 가을에는 대한민국과 소련이 정상수교를 맺고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해였다. 남산 중턱 서울예전 뒤로 안기부(옛 중앙정보부)가 있었고 국사편찬위원회, 리라초등학교, 숭의여전, 영화진흥공사, 남산케이블카와 남산을 오르는 계단이 학교 주변이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 한양교회 내리막 계단을 지나 몇 미터 걷다 보면 명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우리학교 자연캠퍼스는 남산, 쇼핑캠퍼스는 명동에 있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복학생이라 해봤자 한참 어린 청춘이거늘 그 때는 왜 그렇게 어른 향기를 뿜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워낙 학교가 개성이 뚜렷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인지라 사물놀이 연습하는 학생들, 기타 치며 노래 연습하는 친구들, 무용, 연극 연습을 하는 친구들이 좁은 캠퍼스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현역 때 개그클럽으로 나름 축제나 공연에서 사회를 보거나 개그, 노래를 하며 이미 후배들에게 알려진 바(그땐 4명뿐이었는데 지금은 후배들이 정말 많아졌다. 개그클럽은 대학로에서 30주년 개그클럽 공연을 준비 중이다). 복학 후 축제가 한창일 때 나는 드라마센터 대극장 가장 큰 축제무대에서 1인 개그를 했다.

그때의 개그는 나를 재학생들 앞에 나름 비범한 복학생으로 등장시킨다. 기세랄까? 공연이 끝나고 후배 신동엽이 분장실 입구에 찾아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정말 이상하고 상상 이상으로 웃기는 선배님을 만나서 깜짝 놀라고 반갑다’고 먼저 다가오면서 인생의 기로가 바뀐다(이 인연으로 동엽이와 나는 SBS 개국특채로 선발돼서 방송활동을 하게 된다).

그 시절 대학에 복학한 몇몇은 하나같이 야전잠바 패션을 본의 아니게 고집했다. 코디할 형편이 안 되다보니 입다 보면 더운 줄도 모르고 여름까지 입게 되는 게 야전잠바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리 즐겁고 할 얘기가 많았던지 빈 주머니 주제에 술자리가 많았고, 가끔 학교에 몰래 잠입해 소극장, 대극장 구석에서 잠을 잘 때도 있었는데 야상의 전천후 효용성이 위력을 발휘했다.

독립영화다운 소재와 강요 없는 전개
아름다운 시절이 절로 떠오르는 영화

외모보다는 ‘품고 있는 예술혼이 훨씬 가치있다’ 자부하던 시절이기에 일주일 같은 야상을 입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가을 막바지 작은 캠퍼스 대극장 앞에서는 공강 시간 야상 입은 사내들이 시멘트에 물선을 그어놓고 족구를 했고, 오후가 되면 그 공간이 무대제작소가 됐다. 학생이자 스탭들은 여학생까지 야상을 입고 작업하기 일쑤였고, 그 모습은 한 학기 작품제작실습을 발표하는 시간을 예고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졸업이 다가왔음을 알려줬다. 그중 몇은 지금 배우, 교수, 작가, 스탭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같이 연극과를 나온 학생들이 다 연극이나 방송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한 10%나 될까? 대학 전공과 졸업 후에 일이 연결되어 사는 확률은 다른 과 역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열정적으로 탈춤을 추고 무대 위에서 커튼콜 박수 받던 동기들이 보험설계사로, 피혁회사 직원으로 동기모임에 나타나 삶의 무게를 털며 학창시절을 그리워한다. 지나고 보니 대학 때 공부 잘한 학생이 꼭 좋은 배우가 되는 건 아니었다. 공부보다 술자리 좋아했던 야상 입은 복학생들이 훗날 전공분야에서 일하는 비율이 많은 게 신기할 뿐이다.


돌아갈 수 없지만 지난 학창시절이 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빛날 것임을 안다. 얼마 전 취업중심의 대학들이 앞장서서 문학, 예술에 관련한 학과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뉴스를 보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보편적 대학의 가치가 노골적인 취업경쟁과 재단 살찌우기가 되어 버렸다.

외형은 괴물처럼 커지고 학교 강사들의 수업료는 쥐똥만큼 주면서 대학재단이 학생들 사정을 쥐꼬리에 반점만큼이나 생각할지 모르겠다. 2대째 정권의 반값등록금 ‘구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학생들은 대출을 해서 높은 등록금을 메우고, 졸업 후 안정된 일거리를 찾기 전까지 빚을 청산해야하는 ‘젊음의 죄’를 짊어졌다.

졸업 후 그들은 어쩌면 군부정권 시절보다 가혹한 정글에 버려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 학창시절이 약육강식 정글에 적응하는 잔인성 훈련기간이라 말하면 과대망상일까? (내가 음모론적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렇게 정글에서 배출하는 야수들이 세대와 공존의 가치를 지킬까? 날카로운 이빨에 묻은 살점에 냉소적 미소를 지으며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훗날 세대의 복수가 두렵다.

<족구왕>의 매력

오늘은 야상 입은 복학생 시절이 떠오르는 영화 <족구왕>을 권한다. 공무원 취업에 열중한 기숙사로 족구에 환장한 복학생이 들어온다. 현역 때 있었던 족구장은 테니스장이 되어 버렸고, 족구를 좋아하는 복학생은 루저의 전설이며 찌질이의 근본이라 취급받는다.

그런 주변의 만류와 독설에 아랑곳하지 않는 주인공의 뚝심 있는 족구에 대한 애정. 독립영화 다운 소재와 강요 없는 전개는 보는 이에게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의 외모도 영화 속 인물과 잘 맞는다. 그래서 연기도 훨씬 자연스럽다.

페친(페이스북 친구)이자 배우 황승언의 연기도 좋았다. 이 영화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전창걸 영화칼럼니스트 

www.전창걸.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