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⑨만세절벽 자살사건

"극단적 세뇌교육, 아비가 아들을 죽이다"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결국 앞에는 막강한 미군이요,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그야말로 독안에 갇힌 쥐 꼴이 되고 만다. 이곳에서 일본군은 항복하라는 미군의 권유를 무시하고 ‘미군에게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절벽에 떨어져 죽는 것이 낫다’며 수천의 일본군과 민간인들은 차례로 ‘천황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를 부르며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 끔직한 자살을 택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만세절벽’이 된 것이다.

자살절벽의 실체

비슷한 시기에, 사이판 섬의 또 다른 절벽에서도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가족들까지 데리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일부는 집단으로 떨어져 죽었으며, 일부는 가족 단위로 모인 가운데 수류탄을 터트려 죽었으며, 일부는 연장자 순으로 뒤로 걸어서 떨어져 죽었다. 이곳에서는 떨어지면서 천황 만세나 대일본 제국 만세를 부르며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자살절벽’이라고 부른다.

이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은 오늘날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찾을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찾는 학습현장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어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에 얽힌 사연을 듣고 이해케 함으로써 은연중에 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려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아키히토 왕 부부가 이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애국적 행동에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필자도 그 사연을 자세히 몰랐을 때는 ‘적군에게 항복하여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절벽에 떨어져 죽자’며, 절벽에서 떨어진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에 경의를 표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편으로 생기는 강한 의구심은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고지식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아무리 철저히 교육을 시키고 또 사무라이 정신이란 허울 아래 철저히 세뇌시켰다 하더라도, 의식이 있고 사리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노인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앞날이 창창한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집단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극단적인 행동은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부모가 앞날이 창창한 어린아이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인단 말인가? 필자는 그 근원을 일본인들의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일본 군부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순진했던 농촌 출신의 일본 청년들에게, 일장기가 새겨진 칼 한 자루씩을 쥐어 주며 교육시킨 이른바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이 보다 쉽게 먹혀들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심하고 순진한 이 일본 군인들은 일장기가 새겨진 칼 한 자루를 옆에 차니, 무슨 유명 무사나 된 듯한 착각 속에서 으스대며 지냈을 것이다.

평민이나 천민 출신의 젊은이들에게 일장기가 새겨진 칼을 차게 한다는 것은 신분의 상승을 뜻한다. ‘사농공상’의 신분 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되던 일본 사회에서 칼을 찬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사무라이가 되었다는 기분뿐 아니라 지배계급이 되었다는 착각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기분이 내키면, 그 칼로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특권의식까지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출정에 앞서 전가의 보도를 어루만지듯 일본도를 서로 뽑아 보이며 필승의 부적인양 자랑하였던 것이다.

명예로운 죽음? 일가족 집단자살의 진실
난징 대학살, 사무라이 정신의 민낯


일본인들의 소심한 성격에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특권의식과 자부심이 더해져, 일본군을 그토록 잔인하고 악독한 인간들로 만들었던 것 같다.

중국 남경(南京 : 난징)에서는 노인부터 애들까지 무려 3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과 수녀, 비구니 할 것 없이 여자라는 여자는 전부 강간한 후 신체를 베어가면서 죽였다.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쓰요시라는 두 초급장교는 칼로 누가 먼저 100명을 죽일 수 있는지 겨루면서 무고한 시민을 닥치는 대로 죽였고, 육군 대위 다나카 군기치는 무려 300명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검술 연습을 한다며 갓난아기를 공중에 던져 칼로 베기도 했다.

1946년 중국 남경에서 열린 일본 전범 군사재판 조사에 따르면, 남경에서 일본군에게 학살당했거나 시신이 훼손되어 흔적이 없어진 주검이 19만여구에 이르렀으며, 이곳저곳에서 살해되었다가 남경의 자선단체 도움으로 묻힌 주검도 15만여구에 달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연합군에 밀려 도주하면서 무려 10여만명에 이르는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죽였고, 각 전선마다 수많은 포로들을 목 베기 연습이라는 명목 아래 목을 쳤다. 한마디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인하고 악독한 짓들을 저지른 것이다.

소심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듯한 일본 청년들은 전세가 유리할 때는 마치 대단한 무사나 된 듯 악독하고 잔인하게 전쟁에 임했지만,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주위의 동료들이 수십명씩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할 때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진주만 폭격으로 시작된 미국과 일본 간의 태평양전쟁은 미드웨이 해전부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곳곳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당황한 지도부는 미군의 일본 본토 공격을 하루라도 늦추고 반전의 기회를 잡기 위하여, 진주만 폭격 1년 뒤인 1942년 12월 파푸아뉴기니 섬을 시작으로 본토에 이르는 각 섬에서 결사 항전할 것을 명령하였다.

결사 항전을 명령하는 한편, 전투력 향상을 위하여 여러 가지 정신 교육을 시켰다. 그중에서도 미군을 마치 인육을 먹는 괴물 같은 집단으로 교육시켰다. 덩치가 크고, 피부는 하야며, 눈은 파란 이 괴물 같은 미군에게 잡히면, 포로를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남자는 사지를 찢어 죽이고, 여자는 능욕을 한 후 다시 찢어 죽인다고 교육시켰다.

뿐만 아니라 곡식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과 달리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미군은 포로들의 인육까지 먹는다고 세뇌시켰다. 물론 이러한 교육에는 그럴듯한 자료도 함께 보여 주었을 것이다. 팔 다리가 찢겨져 죽은 듯한 시체, 겁탈당하고 죽은 여자의 나신(裸身) 사진, 그리고 미군들이 붉은 피가 흐르는 ‘스테이크’를 칼로 썰어 먹는 장면 등도 보여 주었을 것이다.

인육 먹는 미군?

한마디로 미군을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괴물로 세뇌시킨 것이다. 따라서 잡혀서 처참하게 죽느니 결사 항전하다 죽는 것이 의롭고 깨끗한 죽음이라고 교육시켰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당시 일본군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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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