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시한폭탄 S게이트 막전막후

‘잔인한 10월’ 숨만 크게 쉬어도 터진다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폭풍전야다. 정재계에 전보다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는 쪽은 한 중견 건설회사. 검풍이 이 회사를 덮쳤는데, 그 방향이 대기업과 정치권으로 틀어지면서 대형사건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 안팎에선 ‘S 게이트’라 불린다. 곧 정국을 뒤집을 만한 ‘큰 건’이 터질 조짐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차례로 손본 검찰은 이후 한동안 ‘관피아(관료+마피아)’에 올인했다. 검찰 중심인 서울중앙지검, 그중에서도 핵심 조직인 특수부는 ‘철피아(철도+마피아)’ ‘교피아(교육+마피아)’ ‘통피아(통신+마피아)’등에 매달렸다.

폭풍전야 예고
정국 뇌관 부상?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상 일단락된 관피아 수사는 정치권을 겨냥했지만 반타작도 하지 못했다. 비리 의혹이 있는 현역의원 가운데 절반가량만 구속, ‘반쪽짜리’수사에 그쳤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자존심이 상한 특수부는 지난 추석 전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예리하게 갈린 칼날을 빼들었다. 그 첫 타깃이 바로 S건설이다. 처음 검찰 안팎에선 다소 의아한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수사 가닥이 잡히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검찰은 S건설을 먼저 들여다보고, 여기서 몸통을 추려내는 역추적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S건설의 비자금 조성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비자금 규모는 수백억원대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 대상엔 S건설 오너와 임원진이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등에 따르면 S건설은 실체가 모호한 회사를 내세워 부동산개발 사업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S건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S건설은 결국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기로 했다. 자사가 보유한 경기도 부지의 개발 명목으로 금융권에서 3000억원을 차입했다. 검찰은 이 과정을 모두 사기로 보고 있다.
 
S건설은 아파트 신축 사업을 내밀었는데, PF 대출을 받기 위해선 시행사가 필요했다. S건설은 자본금 5000만원을 들여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인 A사를 급조해 부지를 1500억원에 거래한 계약서를 만들었다. S건설은 A사로부터 PF 대출금 일부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검 S건설 수백억 비자금 추적
정치권 수사 확대…로비 수사
 
2008년 6월 설립된 A사는 이듬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지금은 실체가 없어졌다. 매년 매출액이 ‘0원’이었다. 검찰이 A사를 S건설이 PF 대출과 비자금 조성을 위해 만든 유령회사로 판단하는 이유다. A사가 시행사 역할을 맡아 S건설로부터 부지를 매입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A사는 저축은행 등에서 PF 대출을 받아 계약금으로 150억원을 S건설에 지급했다. 이 돈은 손실로 처리돼 행방이 묘연하다. 당시 A사는 어음으로 발급했는데, S건설 오너가 사채업자에 넘겨 140억원을 현금화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S건설의 대출 사기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검찰은 타깃을 정재계 쪽으로 틀어 사건을 키울 복안이다. 그 대상엔 대기업 총수와 거물급 정치권 인사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래서 법조계에선 ‘게이트’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온다.
 
S건설이 A사를 내세워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받을 때 모 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신용 보증을 섰다. 대기업만 믿고 돈을 내줬다는 게 금융사들의 이구동성. 검찰은 두 기업 간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A사가 대출 자격이 없는 유령회사인 것을 모를 리 없어서다.

유령회사 내세워
대출 사기 혐의
 
보증서에 ‘도장’을 찍어준 배경에 양사의 오너 간 친분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S건설 회장과 대기업 회장은 동향 출신으로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검찰은 S건설 회장이 대기업 회장을 끌어들여 사기 공모 후 수수료 조로 비자금 일부를 떼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은 신용 보증도 모자라 200억원대 자금까지 빌려줬다.
 
검찰 관계자는 “S건설과 A사가 맺은 토지매매 계약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며 “여기에 대기업이 낀 이유가 수사 핵심이 될 수 있다. 현재 양측의 사기 공모 여부를 캐고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의 S건설 수사는 정치권으로도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S건설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에 뿌렸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받기 위한 로비용으로다. 사라진 140억원이 로비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벌써부터 굵직한 인사들의 이름이 ‘살생부’에 오르내리고 있다. P씨, S씨, K씨 등 여야 거물급 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S건설의 주 활동무대인 경기 지역 정관계는 혹시나 불똥이 튈까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사라진 140억원 어디로?
여야 거물급 의원 거론
 
업계 한 인사는 “S건설은 정관계 인사, 법조인 등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골프접대, 술접대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안다”며 “사업 추진 차원의 전방위 로비에도 적잖은 자금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엔 S건설이 검찰 내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역시 비자금 의혹이었다. 오너가 친인척을 자금 라인에 앉히고, 아파트 분양대금을 수령하면서 일부를 장부상 미수금 처리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미수금 규모는 매년 100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 의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이번 특수부 수사와 맞물려 다시 회자되고 있다. 두 사건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S건설은 과거에도 로비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처음 검찰과 악연을 맺은 것은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대선자금 수사 때다.
 
S건설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잘나갔던 거물 정치인 J씨와 K씨 등에게 수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S건설 회장은 이 돈이 공사대금으로 지출된 것처럼 회사 회계 서류를 작성할 것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4년 뒤인 2007년에도 검풍이 들이닥쳤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S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을 수사했다. 골프장 건설 인허가 추진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S건설 대표가 구속됐다. 대표는 법인자금 수십억원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S건설은 협력사들을 동원해 유력 정치인 K씨에게 수천만원의 후원금을 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전에도 검은돈
오너는 감옥행
 

S건설 측은 비자금 수사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검찰 수사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며 “법무팀에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임원 소환이나 압수수색 등이 없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반론 등을 듣기 위해 S건설 법무팀에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역대 ‘게이트’ 사건
 
권력형 비리를 일컫는 ‘게이트’사건엔 항상 문제 인물의 이름이 달렸다. DJ 정권 내내 나라를 뒤흔들었던 ‘정현준 게이트(2000년)’ ‘진승현 게이트(2000년)’ ‘이용호 게이트(2001년)’ ‘윤태식 게이트(2001년)’ ‘최규선 게이트(2002년)’ 등 이른바 5대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이들 사건엔 청와대와 정치권은 물론 국정원, 검찰 등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다.
 
2005년 ‘김재록 게이트’가 터졌다. 금융계 마당발로 통한 김씨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로부터 로비를 받아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같은해 ‘윤상림 게이트’가 터지기도 했다. 고졸 출신의 브로커인 윤씨가 검찰과 군은 물론 정치권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사기, 공갈, 알선수재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2007년엔 ‘정윤재·김흥주 게이트’가 열렸다. ‘정윤재 게이트’는 전 청와대 비서관인 정씨가 국세청, 건설업자 등과 얽혀 벌인 세무비리 무마 사건. ‘김흥주 게이트’는 전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이던 김씨가 정치권 등 각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건이다. 2009년의 경우 ‘박연차 게이트’로 떠들썩했다. 박씨가 참여정부 시절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십억 원의 금품을 건네고 수백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사건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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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