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년’ 공포의 지존파사건 그 후…

인육 씹으며 세상을 씹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인육을 먹는다"는 '연쇄살인집단'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다. 지존파로 명명된 이들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는 말로 충격을 안겼다.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터졌고, 의기양양한 20대 초중반 사내들의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 1994년 9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이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이들의 말이 저릿저릿한 이유다.


지난 7월 정윤석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관객과 만났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1994년을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공교롭게도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당시의 시대상과 세월호가 침몰한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여러모로 대비되고 있다.

공포의 1994
혼돈의 2014

문제의 지존파 사건은 1994년 9월19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지존파 조직원이었던 김현양(당시 22세·사망)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검거됐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솔직히 (돈) 없는 사람은 항상 없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어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힐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직원은 "돈 없는 놈 무시한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들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국제적인 테러조직을 제외하고 살인을 위한 집단을 만들어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긴 조직은 그 사례가 드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지존파 조직원은 불특정 부유층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TV드라마 덕분에 1994년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 해를 '공포의 해'로 부른다. 1994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인용하면 '터질 것은 다 터진 한 해'였다.

20년 전 9월 연쇄살인 소식으로 '발칵'
1994년 박한상·온보현 사건 등 잇달아

실제로 1994년엔 유독 대형사건이 많았다. 자신의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운 박한상 사건,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2명)한 온보현 사건 등이 지존파 사건 전후로 발생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이 무렵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8일)했고, 성수대교가 붕괴(10월21일)해 49명의 사상자(32명 사망)를 내는 등 대한민국은 한 달에 한 번씩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0여명이 다치고 12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지존파 사건은 김일성 사망의 여파가 잦아들 때쯤 각 신문 머리꼭지를 장식했다. 시기적으로는 박한상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터진 대형 살인사건이었다. 패륜범 박한상씨는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는데 지존파가 증오한 대상과 정확히 들어맞아 화제가 됐다.

부자를 증오한다
범행을 계속한다

당시 신문보도와 재판기록 등을 참고한 지존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4월 지존파 두목 김기환(당시 26세·사망)은 중학교 후배 강동은과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 문상록을 만나 "더러운 인간들을 청소하자"고 제의했다.


포커를 치고 있던 이들은 마스칸, 그리스어로 야망이란 뜻을 가진 범죄조직을 결성했다. 후일 이들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고병천 수사관은 강동원 등이 김기환을 '지존'으로 부른 것에 착안해 지존파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김기환은 "세상이 오염됐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사회 고위층을 겨냥한 살인을 계획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던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해력이 빠르고 산수나 계산능력이 우수하다"는 지도의견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김기환은 두뇌가 나름 명석했다고 한다.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엄청났고, 바둑은 프로에 준하는 1급이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신연령(고등학교 1∼2학년 수준)이 낮았던 조직원들이 김기환의 꾐에 이용당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같은 해 김기환은 강동은의 소개로 강문섭을 영입했고, 전남 영광에서 트럭운전을 하다 만난 김현양을 조직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스무살 백병옥까지 모두 6명이 지존파로 활동했다. 유일한 여성조직원 이모(23세)씨도 있었지만 그는 법원에서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사유가 참작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존파 일당은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5명을 살해·유기하는 끔직한 범행을 저질렀다. 1994년 충남 논산에서 최모(당시 23세·여)씨를 윤간 및 살해·암매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8월에는 조직자금을 빼돌리려 한 같은 조직원 송봉은을 살해·암매장했다. 이 가운데 최씨는 지존파가 저지른 살인예행연습의 희생양으로 이유 없이 살해돼 안타까움을 줬다.

비슷한 시기 지존파는 '돈 있고 백 있는 놈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자금을 모았다. 강령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원)씩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이다.

지존파 일당은 대전·분당 등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각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일부 자금 출처가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모은 돈은 수천여만원에 이르렀다. 범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끼니마저 걸렀다고 하니 이들의 집요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살인공장서
차례로 죽였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는 '살인공장'이 들어섰다. 지존파 아지트였던 그곳에는 창살감옥과 사체를 태우기 위한 소각시설(화덕)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공기총, 다이너마이트, 도끼 등 다양한 살인도구가 구비됐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압구정 한 유명백화점의 VIP명단을 입수해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하루 600만∼700만원어치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우선 범행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1000여명이 적힌 우수고객명단에는 정·관계 유명인사, 재벌 2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존파 사건으로 일부 부유층이 밤잠을 설쳤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 감독이 쓴 연출의도를 인용하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지존파의 범행은 정작 '돈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검거되며 일단락됐다.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지존파의 범행은 처절함을 넘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살인공장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목 김기환은 고향 선배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됐다. 법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지존파 일당은 김기환의 옥중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계속했다.


1994년 9월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모 여인은 카페 밴드 마스터이자 애인인 이종원(당시 36세·사망)의 그랜드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가 지존파에게 납치됐다. 지존파 일당은 이 여인을 윤간한 뒤 이종원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이종원의 시신을 차량 운전석에 앉히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경찰은 이 사건을 최초 음주운전에 의한 단순사고로 오인했다고 전해진다.

남은 이 여인의 처리를 놓고 김현양과 다른 조직원들은 심하게 다퉜다. 당시 김현양은 이 여인에게 연인의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도화선이 됐다. 김현양의 고집으로 이 여인은 살아남아 지존파와 함께 생활했다.

1994년 9월13일 경기도 성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소윤오-박미자 부부가 납치됐다. 소윤오 부부는 고급차를 타고 다녔다는 이유로 지존파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소윤오는 개인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지키려던 성실한 사업가였다. 고급차도 회사영업용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지존파로부터 1억원 가까이 갈취당한 뒤 무참히 살해됐다. 살해 과정에는 미리 준비한 공기총과 도끼가 동원됐다. 소윤오 부부의 사체는 소각됐다.

백화점 고객명단 유출
정재계 유명인사 벌벌


1994년 9월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폭발해 부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차 병원에 가면서 이 여인과 동행했다. 당시 "이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 문상록 등으로부터 이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이 여인은 병원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탈출했다. 김현양 등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택시를 세 번이나 갈아탔다. 이 여인이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경찰서.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1994년 9월17일 이모 여인의 자리는 강동은의 애인이었던 여성조직원 이씨가 대신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틀 뒤 들이닥친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을 조직에 끌어들인 '5명의 악당'과 함께였다. 당시 감옥에 있던 두목 김기환은 "녀석들, 여자는 어머니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밝혔듯 지존파의 범행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실제 피해자는 평범한 서민밖에 없었다. TV화면에선 "우리는 악마의 씨를 타고났다"는 이들의 악다구니만 생중계됐다. 주류 언론은 지존파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그렸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동정론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됐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1994년 10월3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당시 이광렬 부장판사)는 김기환, 김현양 등 지존파 일당 6명에게 살인·사체유기·범죄단체조직 및 가입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구속기소된 지 불과 25일 만에 1심 재판이 끝난 것이다.

다음해인 1995년 1월 <한겨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5.3%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돈'을 첫손에 꼽았다. '권력'은 39.1%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존파 사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8%가 '사회구조의 잘못'을 짚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8.3%, 가정환경은 27.9%였다.

법무부는 같은 해 11월 지존파 6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한상씨는 사형이 확정됐지만 집행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관에게 "오늘(조간신문)은 내가 톱이냐, 지존파가 톱이냐"고 물었던 온보현은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과 함께 사형된 죄수 중에는 가정집에 침입해 아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부녀자를 다섯 차례 강간한 배모씨, 김모씨 등이 눈에 띄었다.

지존파사건 직후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 사상 유례가 없는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 예는 없었다.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경우엔 징역 7년6월이 선고됐다.

이례적 사형집행
부자는 솜방망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은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올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근로 및 사회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1.3%가 '부자는 극소수이고 가난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답했다. 또 올 4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는 ‘존경할 만한 부자가 많지 않다’고 답했다.

지존파는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부정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지존파의 강령이 오늘날에도 저릿저릿한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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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