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살인 교사 있었다” 위증 혐의 무죄 판결
법조계, 재판 과정서 드러난 재정신청 모순 지적
재심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른바 ‘하양 청부살인’사건이 8년 만에 마무리됐다. 법조계에선 이 사건의 결말을 두고 재정신청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주지법 형사합의11부는 지난 18일 2002년 3월 하모양(당시 22세)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 중인 윤모·김모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와 김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한 ‘재벌가 사모님’A씨는 이번 판결에 따라 재심 청구가 불가능해져 대법원에서 확정된 무기 징역형을 복역해야 한다. 재판부는 “살해 사건 전 A씨가 윤씨와 김씨에게 큰 금액을 지불하는 등 A씨가 하양의 살인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윤씨와 김씨는 A씨가 살해를 사주하지 않았으며 의도적 살인이 아닌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을 번복하고 있으나 대법원의 무기징역 판결 이후 진술을 바꾸는 등 진술 번복 시점 등을 고려할 때 신빙성과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 전국을 들썩이게 한 ‘하양 청부살인’사건은 윤씨와 그의 동창생인 김모씨가 당시 여대생이었던 하모양을 납치,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공기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두 사람은 1년여 동안 중국에서 도피생활 끝에 이듬해 3월 경찰에 붙잡혀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중견기업 부인인 A씨가 하양 살인을 사주했다고 진술해 A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A씨는 “사주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윤씨와 김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이 ‘혐의없음’처분을 내리자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다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윤씨와 김씨는 “A씨에게 살인을 사주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들의 변호사도 “두 사람이 감형을 받기 위해 A씨가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입을 맞췄다”고 위증을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살인을 교사한 것을 확신해 윤씨와 김씨의 불기소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 결국 법원은 이번에 윤씨와 김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됐다. 법조계에선 이 사건을 통해 재정신청의 기형적 구조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고소인이 불복할 경우 직접 고등법원에 재판 회부를 요청하는 제도다. 고등법원이 심리 결과 검찰의 불기소 판단이 부당하다고 결정하면 직권으로 재판을 진행한다. 하지만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건을 맡는데 모순이 있다. 과거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권은 검찰이 아닌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특별검사)에게 있었으나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검찰이 맡도록 바뀌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자는 재정신청의 취지와 의미가 무색해진 셈이다. 검찰로선 이미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구형하는 것은 수사가 잘못됐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하는 희귀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기소하지 않기로 결심한 검찰에 공소유지를 맡기는 건 현실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며 “검찰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무죄라고 판단했다면 무죄구형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부당해 재판을 다시 시작토록 하는 재정신청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