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밥솥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쿠쿠홈시스가 주부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구입한지 1년 된 쿠쿠홈시스의 전기밥솥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 가정이 화염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한 탓이다. 그러나 정작 회사는 ‘발화가 밥솥 내부에서 시작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후 두 달 가까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취재 결과 회사는 문제의 제품 회수는 물론 고객의 피해 보상 요구에도 늑장을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최근 화재 사실이 온라인에 공개되자 회사는 다급히 고객과의 합의에 나섰고 이후 회사는 합의가 끝난 문제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구입 1년 된 밥솥 화재로 홀라당… 형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
화재 뒤 두 달째 늑장 부리던 회사 고객합의 후 문제없다 배짱
지난해 12월14일, 대구에 사는 곽모씨 가족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집안에서 갑작스런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장소는 부엌. 가스레인지 옆 선반 위에 놓여있던 전기밥솥에서 시작된 불꽃이 주변으로 옮겨 붙었다.
곽씨의 집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고 그을음이 거실 등 온 집안을 뒤덮었다. 겨우 화마를 잠재우고 살펴 본 집안은 한 마디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전기밥솥이 ‘활활’
발화의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쿠쿠홈시스의 전기밥솥은 밥솥이라는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고 선반 아래에 놓인 전자레인지 등 가전 기구 일체도 열기에 함께 녹아내렸다. 선반 주변 가재도구가 파손된 것은 물론 부엌 벽면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뿐만 아니다. 거실 가득 찼던 그을음은 집안 인테리어 곳곳에 그대로 자국으로 남는 등 수천만 원의 물질적 피해를 입혔다.
갑작스런 화재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도 상당했다. 곽씨 가족은 화재 사고 후 화마가 휩쓸고 간 집안을 원상 복구하느라 보름이 넘는 시간동안 집 밖에서 생활해야 했다. 가전기구들이 불에 타 당장 식사조차 해결이 안됐던 탓이다. 실제 곽씨는 한동안 출근도 하지 못했으며 가족들은 인근 숙박업소에서 잠을 자거나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곽씨는 화재사고 직후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전기밥솥을 수거, 국과수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지난 1월6일 발표됐다. 국과수 검사 결과 ‘화재는 전기밥솥 내의 소실되어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단락회로 구성 등에 의한 과전류로 인해 퓨즈가 용단되면서 밥솥 내의 한 지점에서 전기적으로 발화가 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국과수 결과에도 정작 밥솥 제조사인 쿠쿠홈시스는 안일한 태도로 사고 처리에 늑장을 부렸다.
곽씨는 “회사는 보상금 이야기가 나오자 이 문제를 보험사에 넘기겠다고 통보한 뒤로는 1월19일 이후 20여 일이 지날 동안 연락 한 통 없었다”며 “국과수 조사 결과 제품 하자가 의심됨에도 회사에선 사과는 커녕 대화 한마디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실제 쿠쿠홈시스는 사고 발생 두 달가량이 지난 최근까지도 화재가 발생한 제품의 수거는 물론 제품 모델명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회사는 그동안 피해 고객과 보상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한 관계자는 “피해 보상금에 대한 입장차가 커 제품 수거를 하지 못했으며 고객이 보상금 합의 이전에는 제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면서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고객의 요구가 터무니없는 부분이 있었고 회사는 내부 규정상 이를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상황이 장기화됐다”고 말했다.
곽씨는 “화재로 손실된 물품비, 인테리어 비용, 정신적 보상 등을 포함한 적정한 보상금을 요구했을 뿐”이라며 “그러나 회사의 발뺌으로 집수리 공사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처럼 쿠쿠홈시스와 고객은 화재 발생 후 두 달가량 서로간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대립각을 세워왔다.
그러나 지난 8일 회사측의 늑장 태도에 화가 난 곽씨가 화재 당시 모습과 정황을 담은 글을 온라인에 게재하자 쿠쿠홈시스는 갑작스레 태도를 바꿨다. 뒤늦게 사태 수습에 분주해 진 것. 실제 곽씨의 사연이 소개된 다음 날 회사의 한 관계자는 합의서를 작성해 곽씨 가족을 직접 찾는가 하면 보상금 합의 즉시 온라인에 게재된 글을 삭제할 것을 고객에게 요청했다.
지난 10일쯤 고객과 최종 합의를 마친 회사는 이제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실제 회사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회사는 최근 고객과 최종 합의서에 사인을 마쳤고 고객도 회사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며 “고객과 회사가 최종 합의를 마쳤는데 이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뒤늦게 사태수습 분주
쿠쿠홈시스는 제품 하자 논란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이다. 회사 한 관계자는 “국과수 결과는 통보 받았지만 아직 회사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내용이 아닌 만큼 제품 하자에 대한 어떠한 논란도 섣부르다”며 “화재가 발생한 제품이 구입한 지 1년가량 된 제품이라 일부에서 하자가 아니냐고 의혹을 제시하지만 이는 제품 사용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인 만큼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쿠쿠홈시스 관계자 <미니인터뷰>
“합의 지연 과도한 보상금 요구 탓 ”
최근 밥솥 화재 사고로 구설수에 휩싸인 쿠쿠홈시스의 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 밥솥 화재 사고의 원인은.
▲ 아직 제품 수거를 하지 못해서 정확한 원인에 대해 알 수가 없다.
- 사고 후 두 달이 됐는데 제품 수거가 안 된 이유는 뭔가.
▲ 피해 보상금에 대한 고객과 회사와의 입장차가 컸기 때문이다. 고객이 보상금 합의 이전에는 제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회사는 고객의 보상금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시간이 장기화됐다.
- 국과수 검사 결과 발화가 밥솥 안에서 시작됐다는 조사가 나왔는데.
▲ 국과수 결과는 봤다. 하지만 아직 회사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닌 만큼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제품 수거 후 발화 원인에 대한 자체 조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 제품의 모델명은.
▲ 제품이 심하게 손상돼 아직 모델명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객이 제품을 구입한지는 1년가량 됐다. 그런데 이번 밥솥 화재 건에 대해 고객과 회사는 최근 최종 합의를 마쳤는데 이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나. 합의서에 사인까지 마쳤고 고객도 회사의 사과를 받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