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 일요초대석>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저자 장성훈

"왜곡된 역사 이젠 바로잡아야 한다"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우리나라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다음호부터 연재할 예정인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의 저자 장성훈씨를 만나봤다.

일본인들에게 ‘사무라이 정신’은 큰 자랑이다. 일본에서 사무라이를 미화한 영화나 책 등의 작품을 접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 이미 일본의 중요한 문화자산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의 저자 장성훈씨는 “사무라이 정신이 사실은 서양의 ‘기사도’를 모방한 개념에 불과하다”는 사뭇 이색적이고 발칙한(?) 주장을 한다. 과거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그저 단순한 싸움꾼 내지 관료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본이 전쟁을 하면서 자국 국민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사무라이 정신을 이용했고, 그것이 오늘날 일본의 오랜 전통인양 포장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인들이 대표적인 사무라이 정신의 표본으로 여기는 ‘가미카제(자살특공대)’에 대해서도 “사실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대부분 강압과 협박에 못 이겨 출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가미카제 대원 일부는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흘리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사무라이 정신의 적나라한 실체다.

일본이 자랑하는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는 무엇일까? 광복 69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협회의 필독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의 저자 장성훈씨를 <일요시사>가 소개한다. 참고로 장성훈씨는 본인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서면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다음은 서면으로 나눈 장성훈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반갑습니다. 우선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지요.

▲ 왜곡된 일본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정신적 근간이라는 사무라이 정신과 ‘야마토 다마시(대화혼·大和魂)’가 조작 내지 과장이라는 점을 여러 가지 사실을 근거로 들어 밝히고 있습니다.

- 책을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는 무엇입니까?


▲ 두 가지 이유로 썼습니다. 첫째는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역사왜곡 등이 한·일 간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한·일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보면서, 이 갈등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일본의 거짓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왜곡된 일본의 역사를 정리해 쓰기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떼쓰고 억지 부리는 일본에게 진실은 이것이니, 떼 그만 쓰고 억지도 그만 부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 한국과 일본이 진실을 바탕으로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신사참배 그리고 역사왜곡 등을 해결해 순수한 자세로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식민지배 등에 대해 일본의 진실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일본의 역사를 보면 무사들이 약 700여년간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그 과정에서 충성, 명예, 신의 등을 중시하는 어떤 정신적 개념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무라이 정신으로 계승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정신은 없었다고 믿습니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일본의 무사들도 중국이나 한국 또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무사들과 같이 그저 단순한 싸움꾼 내지 관료에 지나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말하는 사무라이 정신은 1899년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가 쓴 <BUSHIDO -The Soul of Japan>이라는 책에서부터 비롯되었고, ‘니토베 이나조’ 는 이 책을 서양의 기사도를 모방하여 썼습니다. 따라서 사무라이 정신은(무사도:武士道) 서양 기사도를 모방한 짝퉁이라고 믿습니다. 이처럼 근거도 없이 기사도를 모방해 쓴 책을 일본이 전쟁을 하면서 자국국민을 세뇌시키기 위한 정훈교육용으로 사용했고 오늘날 일본의 오랜 전통인양 정착되었습니다.

- 저자께서는 ‘가미카제(자살특공대)’가 일본 정부의 강압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례를 이유로 모든 가미카제가 강압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 그 점은 그렇습니다. 일부 가미카제 대원들은 특히 초기의 대원들은 일본이 주장하듯 자발적으로 나선 용감한 대원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와타나베 쓰네오’와 ‘리사 모리모토’는 대부분의 대원이 강압과 협박에 의하여 차출된 것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마치 모든 가미카제 대원들이 용맹과 충성심으로 나선 대원인양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사무라이 정신, 사실은 서양 기사도 모방
바지에 오줌 쌌던 가미카제 대원 미화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의 내용은 흥미롭지만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주장의 정확한 근거가 없어 일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머리말을 통해 ‘감히 정확한 글이라고 주장하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빌미만 제공하는 것은 아닌가요?

▲ 설사 책의 일부 내용이 잘못되어 있다고 해도 일본은 그것을 결코 문제 삼아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작은 잘못을 시정하려다가 큰 거짓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일부 내용을 의도적으로 과장해 일본의 반발을 유도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발이 제기되기 전에 책이 독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3940명에 이르는 가미카제 특공대원 전부가 강압으로 차출된 비겁한 대원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은 독자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이해할 것입니다. ‘감히 정확한 글이라고 주장하지도 않겠다’는 머리말 글은 책의 내용이 워낙 기존에 알려졌던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잘못이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저자의 겸손의 표현이지 잘못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썼다는 뜻은 아닙니다.

- 사무라이도 가미카제 특공대도 일본인의 소심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소심하기 때문에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얼핏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 모든 사람의 성격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소심한 사람들이 평소에는 예의바르고 공손하지만 때로는 지나치리만치 포악하게도 변합니다. 전쟁 시 많은 일본군들이 포악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대부분의 사무라이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행동은 과감했다기보다 악에 바친 행동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포악한 행동의 근본은 소심한 성격이라고 믿습니다. 사이판과 오키나와 전투에서 그 포악했던 일본군들이 겁에 질려 스스로 자살하는 것이 바로 소심한 성격 때문이라고 봅니다.

-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담화를 부정했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피해 국가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권철현 전 주일대사도 지적했듯이 일본의 보수파는 아시아 각국에 참혹한 피해를 준 침략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침략 전쟁이 아니라 선의의 전쟁으로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이 인식을 바꾸는 일로 일본 국민의 자긍심과 자민당의 정치 기반을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쉽게 사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한편으론 일본의 입장에서는 2차 세계대전을 치룬 이들은 전범이기 이전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입장이라면 그들을 비판하라는 주변 국가의 요구를 쉽게 들어줄 수 있었을까요?

▲ 이런 인식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일본의 신사참배를 비난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고 월권이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한 집안의 가장이 이웃집에 칼을 들고 침입해 집안을 부수고 여자들을 강간하는 등 난리를 치다가 경찰에 잡혀 처형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집의 자식들이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잘했다고 하고 공개적으로 존경한다고 하면 피해 입은 집안의 자식들과 진정한 화해가 되겠습니까?

최소한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고 공개적으로 존경을 표하는 행동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웃과 교류 없이 살아간다면 사과 없이 살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피해 입은 이웃과 서로 교류를 하고 도우면서 살기를 원한다면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얘기하였듯이 일본의 전쟁은 이웃국가들에 참혹한 피해를 유발한 침략 전쟁이었습니다.

- 일본은 한국이 이미 수십년 지난 과거사 문제를 과잉 담론화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 과잉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판단하는 기준의 차이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에 따라 항상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국가로서 충분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앞으로 나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 식민지 시기의 범죄에 직접 연루되지 않은 일본인들의 반성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 자신들이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모른 척 해서는 안 되고 또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 선조들의 잘못에 대해 충분한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범위는 정부 대표자들의 협상과정에서 정해질 것입니다.

- 반대로 식민지 피해를 직접 입지 않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사과를 요구해야 할까요?


▲ 우리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우리 선조들의 고통과 피해를 모른 척해서는 안 됩니다. 잊어서도 안 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깊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직접 피해를 입은 분들이 전부 돌아가셔도 진정한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책은 일본인들이 먼저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어본 일본인은 없었나요?

▲ 아직은 없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이나 일본의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 간에는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웃한 두 나라가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에 얽매여 살 수는 없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진실 된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을 바탕으로 서로가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했으면 합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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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