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파열음' 안철수-김한길 위기론 전모

비정한 정치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7·30재보선 공천파동을 계기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설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공동대표가 된 후 한 몸처럼 움직이며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던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불화설에 시달리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합당 이후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어왔다. 원내에 세가 없고 당무 경험이 없는 안 대표에게는 김 대표가 꼭 필요했고, 연일 지지율이 추락하던 구 민주당과 김 대표 역시 안철수라는 상징이 반드시 필요했다. 김 대표는 새정치계와의 통합을 성사시켜 다 죽어가던 야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두 사람은 이후 공동대표로서 항상 한 몸처럼 움직이며 끈끈한 의리를 과시해왔다.

전략적 동맹
전략적 뒤통수

하지만 이번 7·30재보선 공천파동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재보선 공천 결과만 놓고 보면 안 대표는 분명히 김 대표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모양새다.

안 대표는 당초 이번 재보선을 통해 반드시 측근들을 대거 원내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이번 재보선 이후에는 다음 총선까지 특별한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안 대표에게 이번 재보선은 마지막 기회였고, 어쩌면 지방선거보다도 더 중요한 선거였다.

그러나 금태섭 전 대변인을 비롯해 이수봉 전 대표 보좌관,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이석형 전 함평군수 등 안 대표 측 인사들은 공천과정에서 줄줄이 밀려났다.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반면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대변인과 정장선 전 의원 등은 모두 공천장을 받아 대조를 이뤘다.

김한길이 새정치연합 실세?
공천 때마다 물먹은 안철수


특히 이번 공천파동의 책임론 화살이 모두 안 대표에게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안 대표 측은 불만을 갖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이번 공천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동작을 기동민 후보와 광주 광산을 권은희 후보의 공천은 김 대표의 주도하에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초 동작을은 안 대표의 최측근인 금 전 대변인이 출마를 준비 중이었고 안 대표도 금 전 대변인의 공천을 관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곳이다. 동작을에서 금 전 대변인의 전략공천 가능성이 유력해지자 이를 감지한 구민주계 국회의원 31명이 전략공천을 반대하는 공동성명까지 냈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 대표가 안 대표에게 금 전 대변인을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옮겨주겠다며 기 후보를 동작을에 전략공천 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 후보의 공천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고 일을 꾸민 김 대표는 뒤로 빠진 채 모든 비난의 화살은 안 대표에게 쏟아졌다.

꾸민 건 한길인데
욕은 철수가 먹다


게다가 안 대표가 동작을 공천이 무산된 금 전 대변인을 수원정(영통)으로 전략공천 하려고 할 때 김 대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수원정에는 결국 김 대표의 측근인 박광온 대변인이 공천됐다. 안 대표 측 내부에서 ‘김 대표에게 우리가 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안 대표 측 금태섭 전 대변인의 낙천에 대해 “좋은 이미지와 높은 경쟁력을 갖춘 그가 ‘안철수 사람’이라 역차별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권 후보의 공천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광주 광산을에 권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자신의 측근인 최재천 전 전략홍보본부장을 메신저로 활용했다고 한다. 최 전 본부장은 권 후보의 전남대 법대와 사법고시 선배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광주 광산을에 권 후보를 전략공천 한 것은 차기 당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천정배 전 법무장관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함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역시 차기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세균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서울 동작을에 정세균계인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을 낙마시켰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 역시 같은 이유로 김 대표의 작품이란 후문이다.

김 대표와 안 대표의 갈등도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안 대표는 정치 문외한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두 공동대표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인데 정치 문외한인 안 대표는 그동안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사실상 당을 독단적으로 운영해오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쌓이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새정치연합 이해찬 상임고문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천과 예산, 정책 문제를 논의하는 종합적인 의사조율 기구가 당대표와 최고위원, 도당위원장이 참여하는 당무회의인데 우리당에는 현재 당무회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또 “최고위원회 몇 명이서 결정하니 당이 공정성을 잃어버리고 동의가 안 되는 것”이라며 “지금껏 이렇게 당을 운영해 본 적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고문의 지적처럼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 몇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안 대표 측 최고위원 8명 중 5명은 정당활동 경험이 전무하고, 나머지 3명도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다. 당연히 정치경험이 부족한 안 대표가 김 대표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정치 초보
당한 줄도 몰라?

게다가 당 대표로서 가끔은 비판이 예상되는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두 대표가 함께 결정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비난의 화살은 정치적 존재감이 더 큰 안 대표가 혼자 뒤집어쓰다시피 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자 안 대표 측 내부에서 김 대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두 사람의 갈등 기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두 사람의 불화설에 불씨를 당긴 것은 지난 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두 대표가 각각 따로 입장하면서부터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두 대표는 평소 회의장에 들어설 때 의도적으로 항상 나란히 입장하며 굳건한 신뢰관계를 과시하곤 했다. 이는 새정치계와 민주계가 완벽하게 화합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새정치연합은 합당 후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정당이기에 이런 상징적 의미는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전날 열린 회의에서 금 전 대변인의 전략공천에 대한 일부 최고위원의 반발이 격화되고 급기야 금 전 대변인이 수원 공천을 거절하는 사태로까지 번지자 두 사람은 차마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따로따로 입장하게 된 것이다.

이날 안 대표는 격앙된 목소리로 “금태섭은 최적최강의 후보였고 기동민은 민주적 절차로 선출한 후보”라면서 “그런 잣대로 비판하면 하나님도 비판받을 것”이라고 작심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끈끈한 의리는 옛말
끈적한 이해관계가 우선


안 대표는 또 지난 15일 권은희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권 후보 개소식엔 김 대표가 혼자 참석했다. 안 대표는 또 자신 쪽 사람인 이석형 전 함평군수를 물리치고 공천된 이개호 전남 담양ㆍ함평ㆍ영광ㆍ장성 보선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안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전남 순천ㆍ곡성 보선에 나선 서갑원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안 대표는 단순히 일정 탓이라고 했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안 대표가 이번 공천 과정에 대한 불만을 대놓고 표시한 것이란 해석이 잇따랐다.

이미 재보선 결과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당 안팎에서는 일단은 두 대표가 협력하겠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동작을에 안 대표의 측근인 금 전 대변인 대신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인 기동민 후보를 공천시킨 것을 놓고 김 대표가 박 시장 측으로 갈아타려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당내 뚜렷한 세력도 없는 안 대표가 가장 큰 무기였던 지지율마저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정치7단인 김 대표가 안철수라는 썩은 동아줄을 계속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박 시장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갈아타기?
안철수 부활?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대놓고 서로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안 대표의 지지율이 점점 하락하는 추세에서 안 대표가 당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당 안팎의 비판도 있지만 막상 안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떠나게 되면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정치계와 민주계의 연합으로 새롭게 창당된 새정치연합은 1년도 안 돼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안 대표는 이미 새정치연합의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안 대표 역시 김 대표에게 등을 돌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측근 중 현역 국회의원은 송호창 의원뿐인 안 대표가 김 대표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차기 대권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화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어색한 동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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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