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아이 사고파는’ 불법입양 실태

“생후 7개월 딸 팝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까다로운 입양절차를 피해 인터넷을 통해 아이를 주고받는 ‘불법입양’이 암암리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입양 아동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입양특례법’이 본래 취지와 달리 오히려 불법입양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법안이 시행된 이후 사실상 비밀입양이 금지됐고 국내 입양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입양의 현주소와 입양특례법의 문제는 무엇일까.

 
A(20)씨는 푸른 꿈을 안고 충북의 한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니 모든 게 자유로웠다. 만남도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이성친구에게 구애를 펼쳐 아름다운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A씨는 여자 친구와 동거를 결심하고 시내의 한 자취방에서 사랑을 불태웠다. 자연스레 서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돈 받고
아이 건네
 
A씨는 여자 친구와 동거를 하면서 피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 순간의 실수로 A씨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하게 된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아이를 지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임신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긴 채 지난해 10월, 아이를 몰래 출산해 조용히 키웠다.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취방 전세기간이 끝나자 A씨는 여자 친구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이후 A씨는 약 7개월 동안 모텔을 전전하며 아이를 키웠다. 지친 A씨는 딸을 부양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입양을 결심했다. 딸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입양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딸을 입양 보내기까지의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지난 4월, A씨는 고민 끝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생후 7개월 된 친딸을 입양 보내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올린 지 얼마 안 됐을 때, 30대 여성 B씨의 댓글이 달렸고, 이 둘은 메신저를 통해 며칠 간 입양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며 입양에 합의했다.
 
그런데 A씨는 처음에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동거녀가 암에 걸렸다며 돈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더 받기 위해 흥정까지 했다. 그리고 A씨는 B씨로부터 60만원을 건네받은 뒤 자신의 친딸을 넘겨줬다. A씨는 친딸의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딸을 B씨에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A씨는 B씨로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지울 수 없었다. 이내 연락을 취했지만 B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수상해 B씨를 만났던 사이트 내 입양 문의 글을 검색해보니 B씨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B씨는 또 다른 입양을 원한다는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또 A씨가 B씨를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의 행색 때문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있어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여인은 막상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친아들 4명과 입양한 딸 1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런 점들을 미뤄볼 때 A씨는 B씨가 자신의 딸까지 키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고, 딸을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B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자신은 단지 아이가 좋아서 입양하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입양 제도의
현실적 벽
 
B씨에게 갑자기 아이가 생긴 것을 이상하게 여긴 주변 사람이 경찰에 이런 사실을 제보해 범행이 밝혀졌다. 지난 2일 충북 청주상당경찰서는 60만원을 받고 생후 7개월 된 딸을 판 A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A씨의 딸을 입양한 B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어려운 형편의 B씨가 아이를 또 입양하려는 것에 의심을 품었지만 별다른 범죄행위 의심점을 찾지 못했다.
 

입양됐던 여아는 현재 청주의 한 아동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고교생 딸이 낳은 손녀를 보육원에 두고 달아난 C(54·여)씨가 영아유기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는 입양은 전국의 22곳의 입양 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유명 포털 사이트에 입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자신의 아이를 입양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과 입양을 원한다는 댓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입양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입양의 중심에는 미성년자가 있다. 아이를 낳아 입양을 보내길 원하는 경우에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인터넷 입양을 선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한 불법입양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단속할 마땅한 근거가 없고, 불법입양이 적발된다 해도 처벌할 기준이 정확하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해진다. 입양 기관들과 협조해 입양과 관련된 글을 모니터링하고 적법한 입양을 홍보하는 정도의 노력이 최선인 상황이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 매매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불법입양 시 매매 행위를 부인하면 조사가 어렵다.
 
줄어드는 입양…알고보니 음지서 성행
까다로운 절차 피해 인터넷 거래 기승
 
우리나라의 까다로운 입양 절차와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입양한 사실을 문서로 남기지 않으려는 양부모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양부모에게 입양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이는 불법이지만 서류상으로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일들이 오래 전부터 행해져왔다. 입양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절차를 밟지 않고 합법적인 입양대신 친부모와 양부모가 직접 입양을 하거나 아동을 유기하는 등의 부작용이 종종 드러나고 있다. 기관을 통한 합법적인 입양이 아닌 음성적인 입양과 유기가 나타나는 데에는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본래 취지는 입양아가 성장한 뒤에 친모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출생신고 의무, 법원 입양허가, 친·양부모 입양 동의, 출산 후 일주일간 입양숙려, 국내 이양 우선추진, 입양정보 공개, 입양가정 사후관리 강화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건들이 친부모와 가족 등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인식 탓에 미혼·학생 또는 나이가 어린 부모들은 출생신고를 하면 기록에 남는다는 점에서 이를 꺼리고 있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입양아동 수는 계속 줄어 국내 전체 입양아동 수는 2011년 1548명에서 2012년 1125명, 2013년 686명으로 줄었다. 반면 불법입양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꾸준히 제기된
새 제도의 맹점
 

국내 최초의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입양특례법이 국내입양을 막고 있다고 본다. 이종락 목사에 따르면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8월 이후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입양특례법 시행 전에는 한 달 평균 2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5명 정도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종락 목사는 “입양특례법은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미혼모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대기 중인 아동의 수가 많아 입양이 안 되고 있다”라며 “예전에는 신고제도였지만 허가제도로 바뀌면서 재판까지 1년이 넘도록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해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입양의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이어 “출생신고 할 수는 없고, 아이는 살려야겠으니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찾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베이비박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찬성과 반대로 첨예하게 갈린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버려지는 생명을 살린다”는 측과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오히려 조장한다”는 반대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행위가 유기인지도 애매하다는 입장이다. 중앙입양원 관계자에 따르면 합법적인 입양을 위해서는 최소 6개월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 특히 남아의 경우 여아선호 때문에 더 오래 걸린다는 것. 입양 절차를 밟는 도중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가 입양특례법에서 비롯됐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입양이 줄어드는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홀트 아동복지회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입양이 줄어든다. 예전에 비해 실질적으로 미혼모들이 양육을 좀 더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입양기관들도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특례법 때문에 입양이 줄어들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입양기관이 미혼모들에게 6개월에서 1년 동안 아기 분유나 기저귀 등을 지원하고 육아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독려해 과거에 비해 입양보단 양육이 늘고 있다고 전해진다. 
 

입양아 위한 입양특례법 
오히려 불법 조장 지적
 
한 미혼모 관계자는 입양특례법 논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입양특례법과 관련한 논란 자체가 어이가 없다. 입양특례법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가족관계등록법을 고쳐야지 왜 입양특례법이 문제인가. 모든 아이는 출생신고를 하고 법원을 통해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입양특례법은 기본을 지키기 위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돈을 받고 아이를 거래한다는 점에서는 기관을 통한 입양과 불법입양 간 차이가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를 옹호하면서 입양특례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우려를 나타낸다. ‘신생아의 생명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익명출산 제도를 도입하여 출산모의 선택에 의해 법적 모자관계의 성립을 부정하고 부모로서의 권리·의무를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것이므로 그 당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우선 과제
사회적 편견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우려하는 이들은 두 가지 문제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째, 자녀가 자신의 출산모를 알 수 없게 하는 것은 자녀의 혈연을 알 권리를 침해한다. 둘째, 재개정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출생신고 의무만 없애면 출산 사실에 대한 비밀이 완전히 보장되어 출산모들이 베이비박스 대신 합법적인 입양기관을 선택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즉 이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양육포기를 줄이기 위한 각종 지원대책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입양문제는 미혼모들 인권 문제, 즉 미혼모의 사회적·경제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내외 가정에 입양되는 아동 대다수는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개정 입양 특례법의 논란 문제 해결의 출발은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신이 낳은 아기를 포기하거나 유기해야만 하는 미혼모의 문제부터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모의 A급 매춘녀
잡고 보니 트랜스젠더 
 
지난 16일 광주 동부경찰서는 트랜스젠더 남성을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성매매를 한 혐의로 업주 박모(38·여)씨와 전 업주 김모(42)씨, 트랜스젠더 종업원 정모(22)씨 등 6명을 붙잡았다. 박씨 등은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광주 동구와 서구의 모텔을 임대해 업소를 차려놓고 트랜스젠더 남성 3명을 고용해 손님들에게 1시간에 13만원의 화대를 받고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다.
 
남성들 고용…1시간에 13만원 화대
 
트랜스젠더 종업원인 정씨 등은 같은 기간 수십명의 남성들에게 성매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 뒤 광고를 내 트랜스젠더 남성을 모집해 사이트 방문자를 상대로 성매수를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박씨가 단속을 피하기 위해 광주지역 경찰관 23명의 전화번호를 블랙리스트로 관리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해당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손님으로 위장해 성매매 현장에서 박씨 등을 붙잡았다. 성매매를 한 남성 손님들은 호기심에 인터넷 사이트를 찾았다가 성관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성매수 남성들을 수사하기 위해 박씨가 임대한 모텔에서 컴퓨터 본체와 영업장부 등을 압수했다. 성매수 남성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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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