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개>‘하양 청부살인’후속취재 총쏜 자들의 고해성사

“사모님이 시키지 않았다”…말 바꾼 진짜 이유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한 ‘하양 청부살인’사건. 중견기업 부인이 사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한 이 사건의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범은 명백하지만 살인교사 여부가 쟁점이다. 실제 살해 청부는 있었을까. 아니면 궁지에 몰린 범인들이 꾸며낸 시나리오일까. 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 부인의 주장, 그리고 직접 총을 쏜 범인들의 고해성사와 이들의 변호사 인터뷰를 통해 그 진실을 파헤쳐봤다.

최대 쟁점 ‘재벌가 사모님’ 살인교사 여부 곧 판결
두 범인 “살해 지시”에서 “사주 없었다”진술 번복


이른바 ‘하양 청부살인’사건은 2002년 3월 윤모씨와 그의 동창생인 김모씨가 당시 여대생이었던 하모양을 납치,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공기총으로 살해한 범죄다.<본지 735호 참조> 두 사람은 1년여 동안 중국에서 도피생활 끝에 이듬해 3월 경찰에 붙잡혀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무기징역 선고 후
왜곡된 진실 고백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중견기업 부인인 A씨가 하양 살인을 사주했냐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사위와 하양의 불륜을 의심한 A씨가 둘의 감시·미행도 모자라 윤씨와 김씨에게 하양을 살해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A씨의 사위-하양 불륜 의심이 거의 병적 수준이었다는 점 ▲A씨가 윤씨·김씨에게 거액을 주기로 한 점 ▲범행 직후 해외로 도주한 윤씨·김씨가 A씨 친인척 집에 머물렀던 점 ▲실탄 최초 1발 발사 후 확인사살을 위해 추가로 5발을 발사한 점 등이 그 이유다.

특히 윤씨와 김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이들은 “A씨의 납치·살해 부탁을 받았다. A씨의 지시로 하양을 죽였다. 이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A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A씨는 “사주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윤씨와 김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이 ‘혐의 없음’처분을 내리자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다시 진행됐다. 청주지법은 오는 18일 위증 여부에 대해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하양 청부살인’사건의 종착지인 이번 판결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A씨가 살해를 지시했다”는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새 국면을 맞을지가 관심거리다. 윤씨와 김씨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A씨는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A씨 측은 “윤씨와 김씨의 거짓말 때문에 A씨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이들은 죗값을 감면받으려 거짓 진술을 하다 최고형이 떨어지자 나중에서야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범인의 입장은 어떨까.
윤씨와 김씨는 기존 진술을 번복한 상태다. 윤씨는 대법원 상고 직전, 김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사주 받지 않았다”고 자백을 뒤집은 바 있다.
이들은 위증 공판에서도 “A씨에게 살인을 사주 받은 사실이 없다”, “A씨가 미행 지시만 내렸다”, “A씨는 하양의 자백만 원했다”, “A씨가 준 돈은 미행댓가이지 살해댓가가 아니다”, “살해는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저질렀다”고 말을 바꿨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찾아간 기자의 접견을 거부했다. 낯선 이의 방문을 경계한 듯 보였다. 대신 윤씨와 김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상중 변호사를 통해 그들의 ‘고해성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변호사의 말도 다르지 않다. 2004년 4월 대법원 상고 전후 두 사람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이 변호사는 각각 윤씨와 김씨를 접견한 자리에서 허위 자백 사실을 알게 됐다.

“총으로 머리를 쿡쿡 찌르다 갑자기 1발이 격발됐습니다. 오발사고에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계속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 변호사는 “위증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으로선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맞지만 윤씨와 김씨는 자신들로 인해 중형을 선고받은 A씨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형 추가를 감수하고 위증을 시인하고 있다”며 “피의자들이 허위 자백한 행위에 대해선 변명 여지가 없으나 이제라도 사실을 밝히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윤씨·김씨의 진술(번복 이후)과 이 변호사 등에 따르면 윤씨와 김씨는 1·2심 과정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위로 자백했다. 하양 살해 직후 잘못된 판단이 위증한 이유다.
윤씨와 김씨는 범행 후 베트남과 중국으로 도피 중 이미 A씨가 살해를 교사한 것으로 입을 맞췄다. 타의에 의해 살해했다면 조금이나마 책임을 면할 것이란 계산에서다.

“계획적 살인 정황에
몇 가지 의문 있다”

특히 검거 뒤엔 사주 진술에 대한 1·2심 변호사들의 요구도 있었다. 1심 변호사는 A씨의 지시로 살해했다고 하면 법원의 선처로 5∼7년 정도의 형에 그칠 것이라고 자신했다. 2심 변호사도 진술 번복 시 형이 더 올라갈 수 있으니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주문했다.
윤씨와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감형을 위해 위증할 수밖에 없었고 재판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진술을 번복할 수 없었다는 게 이 변호사의 전언이다. 당시 변호사들은 예상과 달리 무기징역이 최종 선고된 후 이들이 말을 바꾸자 변론을 포기했다.

윤씨와 김씨의 우발적 범행 정황도 사주 부분과 대치된다. 이들이 밝힌 하양 납치 배경을 보면 A씨를 향한 충성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윤씨와 김씨는 A씨가 돈을 주고 사위와 하양의 미행을 시켰지만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등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하자 A씨로부터 추궁을 당했고, ‘돈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양을 납치해 불륜 사실을 자백받기로 했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A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독촉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돈을 다 쓴 상태였죠. 돈을 반환할 방법이 없어 친구인 김씨와 함께 납치를 계획했습니다. 뭔가 성과를 얻으려고요.”
윤씨가 재판에서 증언한 하양의 납치 모의 경위다.

그러나 납치는 살인으로 이어졌다. 이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A씨의 교사에 따른 계획적 살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전에 살인을 계획했다면 미리 철저하게 범행 은폐까지 시나리오를 짜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사체 처리를 위한 삽, 곡괭이 등을 준비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암매장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행 장소도 등산객이 자주 오고가는 등산로 바로 옆(약 1m 지점)에 사체를 허술하게 낙엽으로 덮어 놓은 채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이들은 범행 전 공기총과 함께 철물점에서 결박용 노끈과 테이프, 머리에 씌울 쌀포대만 갖고 하양을 납치했다.

이들은 또 당초 납치 목적이 살인이었다면 최대한 범행을 감춰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살해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조력자 3∼4명 등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윤씨 소유의 승합차를 범행에 사용했다.
A씨가 윤씨와 김씨에게 각각 8000만원, 5000만원을 줬다는 혐의 내용도 살인 대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이 변호사의 의견이다. A씨가 이들 외에도 여러 명의 감시원들을 고용하면서 이에 버금가는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통 심부름센터 등에 미행을 의뢰할 경우 1주당 1000만원 안팎의 사례비가 들어간다. 윤씨는 2000년 3월부터, 김씨는 2001년 10월부터 ‘행동’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A씨가 건넨 돈이 미행댓가로 과한 게 아닌 셈이다.
범행 직후 해외로 도주한 윤씨와 김씨가 A씨 친인척 집에 머물렀다는 경찰의 발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은 이를 A씨가 하양 살해를 사주한 뒤 이들의 도주를 도왔다는 근거로 내세웠지만, 윤씨가 A씨의 조카이기 때문에 이들이 윤씨 친인척 집에서 있었다는 것으로도 풀이가 가능하다.

형 낮추려 허위 자백
1·2심 변호사 부추겨


특히 이 변호사는 윤씨와 김씨가 하양을 살해할 결정적인 동기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들은 하양 납치·살해 당시 불륜 사실을 입증할 만한 물증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불륜 증거를 잡았다면 몰라도 하양이 심하게 반항하는 등 예상치 못한 사태 외에 달리 하양을 죽인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자발적·우발적 범행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


하양을 향해 공기총 방아쇠를 당긴 김씨도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불륜 사실만 자백 받으려다 하양의 저항이 거세지자 자신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머리를 덮은 쌀푸대와 입, 눈을 가린 테이프를 떼자 하양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빨리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입과 눈에 테이프를 붙이고 쌀푸대를 씌운 뒤 총으로 하양의 머리를 쿡쿡 찌르면서 불륜을 시인하라고 하다가 갑자기 1발이 격발됐습니다. 예기치 못한 오발사고에요. 실탄이 장전돼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아쇠 잠금장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김씨가 직접 작성해 이 변호사에게 전달한 사건 당일 행적 중 일부 내용이다. 김씨는 확인사살에 대해선 실수로 1발 발사 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벌어진 일(5발 발사)이라고 해명했다.
“저의 손으로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때부턴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계속 방아쇠를 당기게 됐습니다. 정신이 없어 몇 발을 발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그 순간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총은 하양을 살해하기 위해 가져간 게 아닙니다. 단지 위협하려고 한 것입니다.”

검찰은 법원의 공소 재기 명령에 따라 위증 혐의로 윤씨와 김씨를 기소했지만 무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A씨의 살인교사가 명백하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A씨가 단순히 혐의를 벗기 위해 윤씨와 김씨의 위증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두 범인이 “A씨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한 이면에 A씨-윤씨·김씨간 모종의 거래도 의심하고 있다. A씨 측의 회유가 있지 않았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총은 살해용 아닌
위협용으로 소지”

하지만 이 변호사는 이를 일축했다.
“윤씨와 김씨는 하양은 물론 A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왜곡된 증언으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그 죗값을 받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검찰은 아무런 증거나 근거 없이 언론 등에 회유 의혹을 흘리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추측만 갖고 말이죠. 검찰 맞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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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