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코너 몰린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

어쩌려고 ‘극우 보수’를…어쩌라고 ‘국정 초짜’를…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신임 국무총리에 문창극(67) 전 <중앙일보> 주필이 내정됐다. 문 내정자는 마지막 여생을 나라를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 발언을 놓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수첩’이 궁금할 정도다. 도대체 문 내정자는 어떤 인물이기에, 좀처럼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지난 10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께서 오늘 국가 개조와 개혁을 이끌 새로운 국무총리 후보자와 국정원장 후보자를 내정했다”며 “국무총리에는 문창극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가, 국정원장에는 이병기 주일대사가 내정됐다”고 밝혔다.

‘문창극 망언’
또 낙마하나
 
문 내정자에 대해 민 대변인은 “소신 있고 강직한 언론인 출신으로 그동안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라고 소개했다. 또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안대희 전 대법관이 과거 ‘국민검사’ 칭호를 들을 만큼 단호함과 소신을 가진 인물로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로 지명됐지만 국민정서에 반하는 전관예우 등으로 낙마한 바 있어 청와대가 이번 총리 지명에 있어 무엇보다 청문회 통과를 우선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 출신인 문 내정자가 상대적으로 언론 노출이 잦았고, 언론 대응에 능한 만큼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주 출신인 문 내정자가 인사 청문회를 거쳐 총리직을 맡으면 충북은 사상 처음으로 국무총리를 배출하게 된다. 
 
문 내정자는 10일 서울대학교 IBK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갑자기 나라로부터 이런 부름을 받아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렵고 엄중해 이런 상황을 제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는 (아직) 총리가 아니라 총리 후보자, 총리 지명자에 불과하다”며 “국회에서 남은 청문회 절차가 끝날 때까지 겸손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며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내정자는 청문회장 근처도 밟지 못하게 생겼다. 과거에 뱉었던 망언 등이 논란이 되면서 여론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꺼내든 ‘문창극 카드’가 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또 다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발단은 이렇다. 문 내정자는 지난 2011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서울 온누리교회의 특별 강연에서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항의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문 내정자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많다.
 
문제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역사인식 발언에도 불구하고 문 내정자가 사과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우리 군경에 의해 양민학살로 결론 내려진 4·3 민주항쟁과 관련해서도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라고 규정해 우리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관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난 4월 서울대 강연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여론이 들끓자 문 내정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글들은 언론인 출신의 자유기고가로서 쓴 것이고, 강연은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어서 일반인의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런 점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생긴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후 과거 발언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는 “(사과하실 계획은?)사과는 무슨 사과 할 게 있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고심 끝에 꺼내든 ‘충청 카드’ 딜레마

과거 종교·역사 발언 뭇매…낙마 위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책임총리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문 내정자는 총리 임명 다음 날인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기자들의 책임총리 관련 질문에 대해 “책임총리제, 그런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대답했다. 
 
이에 문 내정자가 국무위원 제청권 행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무조정실에서는 ‘책임총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 취지는 책임총리는 법에서 정한 용어가 아니라는 의미’라는 해명자료를 배포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론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야당은 문 내정자를 “건국 이래 최대 인사 참사”라며 총리 부적격성을 꼬집었다. 안대희 전 총리 내정자에 이어 문 내정자도 인사청문회를 넘기도 전에 낙마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우려의 목소리는 여권에서도 나온다. 여당은 문 내정자가 결국 자신의 발언으로 낙마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으면서도 일단은 ‘지켜보자’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깜짝’ 카드서
‘끔찍’ 카드로
 
문 내정자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기자로 출발해 79년 정치부로 옮긴 뒤 부서이동 없이 기자생활을 하다가 95년 정치부장을 맡았다. 그는 국제감각도 쌓았다는 평가를 듣는데, 이유는 미국 워싱턴특파원과 미주총국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정치부장 이후에는 논설실장, 논설주간, 주필, 대기자를 거치며 주로 칼럼을 써 왔다. 또한 중견언론인모임인 관훈클럽 총무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등 언론인단체를 이끈 경험도 있다. 지난해 퇴사한 문 후보자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석좌교수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로 일해 왔다.
 
문 내정자는 지금껏 색채가 강한 칼럼을 주로 써 왔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 ‘공인의 죽음’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자연인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며 “그 점이 그의 장례 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즉 당시 국민장이 부적절했다는 것.
 
문 내정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독했던 2009년 8월에도 논란을 샀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일’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런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 깨끗한 마무리가 있어야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은 <중앙일보>에 반론보도문을 실기도 했다.
 
문 내정자는 2011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적도 있다. 그는 ‘박근혜 현상’이라는 칼럼을 통해 “(박 대통령이) 행정수도를 고수한 것이나 영남국제공항을 고집한 것은 나라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내게는 지역이기주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2012년 12월에는 ‘하늘의 평화’란 칼럼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좌우 시소게임을 완전히 끝장내게 한 그런 선거였다”며 “50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젊은 세대는 겸허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내정자는 박 대통령과 뚜렷한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하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의 초대 이사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khlee@ilyosisa.co.kr>

 
<문창극은?>
 
▲충북 청주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

▲관훈클럽 제44대 서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중앙일보 편집국 미주총국 총국장
▲관훈클럽 제49대 총무
▲중앙일보 논설주간 상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제15대 회장
▲중앙일보 주필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11·12대 이사장
▲고려대 미디어학부 석좌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기사 속 기사> 과거 정치사건 부메랑?
문창극에 묻힌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는 누구?

신임 국정원장에 이병기(68) 주일대사가 내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새 국정원장에 이병기 주일대사를 지명했다. 이 내정자는 이날 오전에 내정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날 이 내정자가 국내외 정보와 안보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고, 엄중한 남북관계 상황 속에서 정보당국 고유의 역할 수행과 개혁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적임자로 판단돼 발탁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 내정자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일본 대사로 재임하면서 일본에 대한 이해도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 출신 최측근
 
이 내정자는 전날 저녁 관저에서 약 1개월 전 약속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의 만찬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송별 만찬’이었다. 이 내정자는 이후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국정원장 업무와 관련된 질문에는 “인사청문회 절차도 있는 만큼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언급을 피했다. 다만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며 “(국정원장)임무를 맡게 된다면 냉청하게 동북아, 국제정세를 분석해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갈 수 있도록 더욱 크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주일대사 업무를 회고하면서 “작년 연말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만 아니었더라도 좀 더 시간을 앞당겨서 (한일 당국 간에) 협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참배로 인해 노력이 조금 헛된 시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교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벽돌 쌓듯이 해서 궁극적으로는 (한일관계) 안정화라는 목표까지 가는 것”이라고 밝힌 뒤 “어차피 안정화까지는 간다”며 그때까지 양국간 간격을 좁히는 것이 한국 외교 당국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주일대사관 직원들은 한국 신문들의 하마평에 이 대사가 자주 오른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정 사실은 이날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한 대사관 관계자는 “이 대사가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일했던 만큼 개인적으로 아쉽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사관 직원은 “아쉽긴 하지만 한국에서 한일관계를 잘 아는 분이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인사 청문회 준비 등을 위해 수일 내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미리 잡혀 있던 일본 학자와의 오찬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한 이 대사는 이삿짐을 싸는 등 귀국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주일대사가 부임할 때까지 김원진 정무공사가 대사대리를 맡을 예정이다. 
 
친박 원로 핵심그룹 멤버
2007년 경선때 캠프서 인연
 
한편, 일본 정부와 언론도 이 대사의 국정원장 내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대사의 국정원장 내정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자 “취임 이후 1년간 일한관계 발전을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한 분”이라고 평가한 뒤 “새로운 직책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하고 싶고, 앞으로도 일한관계를 위해 진력을 다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부임 이후 ‘카운터파트’인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과의 통상적인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아베 총리의 최측근이자 정권의 실세 중 한 명인 스가 장관과 긴밀한 소통을 해왔다. 지난해 12월26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하기 직전, 스가 장관이 휴대전화로 이 대사에게 참배 예정 사실을 알린 일화가 있다. 

이와 함께 NHK는 “이 대사가 작년 6월에 대사로 부임한 이래,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강한 의욕을 보여왔기에 외교 관계자들로부터 (이 대사의 이임이)일한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이 내정자는 1996년부터 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지냈다. 이 내정자는 2차장으로 재직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 낙선 북풍 조작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북풍 조작 사건은 1997년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김 후보와 북한이 연계돼 있다는 재미교포 윤홍준씨의 기자회견을 안전기획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꾸민 사건이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 안기부는 공작금으로 1만 9천달러를 윤씨에게 전달하고 기자회견문 작성과 회견장소를 물색해 언론이 이를 보도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내정자는 98년 3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김대중 후보 비방 기자회견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드러난 이대성 해외조사실장의 직속상관이었다. 이 내정자는 이후 게이오기주쿠 대학 객원교수를 지내고 2001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안보 특보로 정치권에 복귀했다. 그리고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정무특보로 활약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내며 당시 야권 내 실세로 통했다. 그러나 당시 이인제 자민련 의원 측에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에 유리한 활동을 해달라는 취지로 5억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당시 사건은 한나라당에 치명타를 안겼다. 정치권의 추악한 치부가 드러난 것이었다. 결국 돈 심부름꾼을 하다 사고를 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위원장으로 내정됐지만, 언론의 질타를 받고 전략기획단장직 사의를 표명하고 자신의 공천신청도 철회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온 최측근 인사 중 하나로 분류돼 왔다. 지난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과거 전력 송곳 검증 예고
 
특히 이 내정자는 노태우정부 때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을 거쳐 김영삼정부 시절 현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 2차장(당시 대북·해외담당)을 맡았고, 안기부 차장 시절 황장엽 망명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러한 경력 탓에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한 차례 국정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문창극 신임 총리 내정자에 대해 극우적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이 내정자는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과거 전력으로 인해 국정원 개혁 적임자로 부적합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광>

 
<이병기는?>
 
▲서울 출생
▲경복고 졸업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외무고시(8회)
▲주제네바대표부·주케냐대사관
▲민정당 총재 보좌역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이회창 대선후보 정치특보
▲박근혜 대선경선후보 선거대책위부위원장
▲여의도연구소 고문
▲주일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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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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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