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국회 새 얼굴’ 정의화 신임 국회의장

비주류의 반란…개혁 드라이브 시동 건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새누리당 비주류 5선 중진 정의화 의원이 19대 국회 후반기 2년을 이끌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정 신임 의장이 주류측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에 압승할 수 있었던 건, 사실상 초선·비주류계의 몰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기인한다. 첫 의사 출신 국회의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를 이끌 의장단이 지난달 27일 확정됐다. 그리고 29일 본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국회의장에는 5선의 새누리당 정의화(66·부산 중·동구) 의원이 선출됐고, 여당 몫의 국회 부의장에는 4선의 정갑윤(64·울산 중구) 의원이 뽑혔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23일 오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열린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 투표에서 총 투표수 147표 가운데 101표를 획득해 46표에 그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에 압승을 거뒀다. 국회 본회의 무기명 비밀투표에서는 재석 231표 중 207표를 얻었다. 국회 본회의 무기명 투표에서 과반 찬성으로 선출되는 국회의장은 다수당 의원이 단독 출마하는 것이 관례다. 

101대46 압승
비주류의 반란
 
야당 몫 국회부의장에는 얼마 남지 않은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5선의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63·안양 동안구 갑) 의원이 선출됐다. 이 의원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 중 치러진 경선에서 총 투표수 126표 가운데 과반인 64표를 획득해 46표를 받은 이미경 의원과 16표를 받은 김성곤 의원을 제쳤다. 이로써 19대 국회 후반기 의장단은 정의화 의장, 정갑윤 부의장 체제로 구성될 전망이다.
 

당내 비주류인 정 신임 의장은 옛 친이(친이명박)계를 포함한 비주류 측과 초선 의원들로부터 몰표를 받아 친박(친박근혜) 주류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황 전 대표를 상대로 예상 밖의 압승을 거뒀다. 이 같은 결과는 친박계 표심이 황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여당에선 황 전 대표 2년 체제에 대한 엄중한 평가라고 보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황 전 대표가 있었던 지난 2년간 집권여당을 책임지고 이끌지 못한 리더십에 대한 당내 비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초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황 전 대표는 비박계 성향의 정 신임 의장에 비해 친박계로 알려져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당 관계자 대다수가 후반기 국회의장에 대한 질문에 “서 의원이 안 나서면 황 대표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 관계자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 신임 의장의 압승이었다.
 
6·4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당내에서 ‘중진차출론’이 나왔을 때, 황 전 대표는 인천시장 출마 권유를 지속적으로 받았었다. 그러나 황 전 대표는 출마 권유를 끝까지 외면했기에, 이것이 마이너스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천(연수)에서 내리 5선을 한 황 전 대표에 대한 당 안팎의 기대가 남달라 지속적으로 인천시장 출마요구를 받았지만 그는 끝내 뿌리쳤다.
 
황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그의 출마 거부 이유를 국회의장 도전 때문이란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본선 경쟁력이 가장 큰 황 전 대표의 불출마로 당은 결국 경기도 김포에 지역구를 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을 차출했다.
 
또한 황 전 대표가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던 것도 쓰라린 패인으로 꼽힌다.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폭력국회’는 사라졌지만, 여당이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한 국회 파행이 반복되자 법 통과를 주도했던 황 전 대표에게 ‘원죄’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졌다. 특히 온건 성향의 황 전 대표는 최경환 전 원내대표 등 강경파로 분류되는 친박 주류와 곳곳에서 충돌하기도 했다.
 
반대로 정 신임 의장은 18대 후반기 국회부의장 시절 국회선진화법에 줄곧 반대 의견을 고수해왔다. 황 전 대표가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여권 내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의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신임 의장의 꾸준했던 노력도 역전극의 배경으로 꼽힌다. 황 전 대표가 당 대표 시절 당직을 맡은 측근 의원들을 활용해 득표전을 벌인 반면 정 의원은 직접 개별 의원들을 접촉한 점이 대량 득표를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정 신임 의장은 올 초부터 소속 의원 전원을 두세 차례 이상 직접 만나 지원을 부탁했다.


“계파 척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특히 선거 막바지에는 지방선거 지원 차 지역에 내려가 있는 의원들을 찾아 전 지역을 순회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정 의원이 오랜 기간 준비하며 의원들을 여러 번 만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정 의원이 성품도 온화하고 원칙주의자로, 부의장을 하면서 좋은 평을 받았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황 의원이 당내 의원들에게조차 인기를 잃은 반면 정 의원은 야당 의원들이 기자들을 만나 ‘정의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평이 엇갈렸다”고 전했다.
 
정 신임 의장은 후보당선 연설에서 “신경외과 의사로서 뇌혈관 수술과 응급수술을 20여년 이상 해온 사람이라 주저하지 않아야 할 때는 주저하지 않는다”라며 “앞으로 2년간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정치인의 3가지 덕목은 첫째는 열정, 둘째는 책임감, 셋째는 균형 감각이라고 생각한다”며 “올바르게 책임감을 갖고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본회의장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그는 “국회의장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국회의원이 스스로 선출한 국회의 대표를 존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국민이 국회를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겠느냐”며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새 대한민국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의장이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국가의전서열 2위 입법부 수장에 올라 
정갑윤·이석현과 19대 후반기 이끌어
 
정 신임 의장은 2008년 큰아들 결혼식 당시 가족 및 친지만 초청해 병원 강당에서 작은 결혼식을 치루기도 했다. 큰 아들 결혼식 비용은 500만원이었다. 정 의원은 한 매체에서 “부모 힘으로 화려하게 출발하는 사람보다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사람이 박수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면서 “둘째·셋째 아들도 똑같이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주변에서는 그를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 신임 의장이 선출되면서 뜻밖에도 3부요인 전부 PK(부산·경남) 출신이 됐다. 정 신임 의장(부산), 양승태 대법원장(부산),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부산) 등 대통령을 제외한 국가의전 서열 2∼5위(정부 의전 편람 기준)가 모두 PK 출신들이 된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경남 거제), 황찬현 감사원장(경남 마찬), 김진태 검창총장(경남 사천) 등도 PK 출신이다. 다만 정 신임 의장 선출이 당내 이변으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됐기 때문에 인사를 전부 현 정부의 의도라고만 보기 힘든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한편, 지난달 27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국회의장단(국회의장 1인, 국회부의장 2인)을 공식 선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증인 채택에 대한 이견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본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여당 관계자는 “여야가 국정조사 계획서에 증인을 명시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밤샘 줄다리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로 인해 국회 본회의도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신임 의장은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 후반기인 1996년 15대 총선에서 물갈이 바람을 타고 부산 중·동구에서 금배지를 달고 19대 국회까지 내리 다섯 차례 당선됐다. 국회 부의장,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당 세종시특별위원장, 원내 수석부총무 등을 역임했으며, 19대 국회 전반기 의장 선거에서 친박 주류인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패했지만, 재수 끝에 의장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정 신임 의장은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될 때 당시 박희태 의장을 대신해 의장석에 앉기도 했다. 당시 김선동 민주노동장(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의장석 앞에서 최투란을 터트렸지만 정 신임 의장은 끝내 비준안을 처리했다.

‘국회선진화법’
꾸준히 반대해
 
정 신임 의장은 전임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이계 주류로 분류됐지만, 친박계와도 두루두루 원만한 사이를 유지해 당내 온건파로 불렸으며, 정치권 입문 이후 영·호남 화합, 국민 통합을 최우선하는 ‘화합형 정치’를 추구해와 야당 의원들로부터도 평가가 좋다. 정 신임 의장은 국회의장 대행을 맡고 있던 18대 국회 말기에 여야가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국회 기능이 마비돼 식물국회로 전락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반면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던 황 의원은 선진화법 성안 과정과 국회통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만큼 이번 국회의장 후보 선거는 선진화법을 놓고 첨예하게 맞선 중진 의원들의 운명이 엇갈린 무대로 남게 됐다.
 
‘주류’황우여 대표 상대로 경선 압승

친박·친이 아우르는 ‘화합형’평가
 
정 신임 의장은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중소기업을 운영 하는CEO에서 제5대 경남도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02년 울산 중구에서 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입성, 19대 국회까지 내리 5선에 당선됐으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울산시당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당 상임전국위원과 한·인도의원친선협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여당 의원들은 이날 투표에서 국회의장에 비주류를, 부의장에 주류를 선택하는 계파 안배 투표 성향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여당몫 국회 부의장을 맡았으며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정 신임 의장은 19대 국회 상반기 국회의장을 놓고 경합을 벌였으나 비박계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강창희 현 국회의장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정 신임 의장은 과거 친이계 주류 분류됐지만 최근 친박계와도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표밭을 다져왔다. 대야관계에 원만할 뿐만 아니라 당내에서도 평가가 좋은 편이다. 정 신임 의장은 투표 직전 정견발표에서 “저는 친박도 비박도 아니다”며 “이번 경선에서 나타난 계파색은 오늘 끝내야 한다”고 계파 척결을 주장하기도 했다.

친이지만…
친박과도 화합
 
정 신임 의장은 국회의장 후보로 뽑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26일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단일 법안으로는 최대 규모인 100여 명의 여야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혹자는 ‘이준석(세월호 선장) 방지법’이라는 별칭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 급조된 ‘반짝 법안’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실상은 준비하는 데만 꼬박 14개월이 걸린 ‘숙성 법안’이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 ‘인성’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라고 강조하며 법안을 만든 이유를 들었다. 정 신임 의장은 이 법안을 하루아침에 만들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2월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을 구성해 여야 의원 50여 명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법안을 다듬어 왔다. 법안은 학교 총예산의 일정비율을 인성교육에 쓰도록 정했고 정부와 17개 지자체와 교육청을 인성교육의 주체로 명시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도 말한 바 있다.
 
<khlee@ilyosisa.co.kr>
 

<정의화 의장은?>
 
▲부산 출생
▲부산고 졸업
▲부산대 의대 졸업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15∼19대 국회의원
▲18대 국회 국회부의장·국회의장직무대행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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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