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삼양목장의 비밀

박정희 말 안 듣더니…박근혜 공약도 뭉개나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삼양식품이 운영 중인 대관령 삼양목장이 지역 주민들의 원성을 듣고 있다. 목장 운영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면서 지역 상생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이유다. 목장 운영은 제쳐두고 관광객 몰이에만 급급하다는 것. 한때 4000마리가 넘었던 젖소는 현재 400마리도 채 남지 않았고 대선 공약이던 '대관령 자연순응형 휴양단지' 조성은 삼양목장의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대관령 삼약목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 1970년대 초 박 전 대통령은 놀고 있는 산지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때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지금의 에버랜드자리인 용인 산간지대가, 조중훈 고 한진그룹 회장에게는 현대 제주 삼다수를 뽑아내고 있는 제주도 제동흥산 자리가,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대관령 삼양목장이, 국제 로비스트 한모씨에겐 지금 꿩사냥터로 유명한 서귀포 중문단지 옆 100여만평의 척박한 땅들이 각각 맡겨졌다.

1972년 개발
2002년 개방

박 전 대통령은 전 명예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축산입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대관령 땅을 국가에서 50년간 1년에 평당 100원을 받고 장기 임대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국유지를 거의 무상으로 임대하게 된 전 명예회장은 72년 2월 삼양축산개발(주)을 설립하고 그해 4월 농림부의 개간허가와 산림청의 국유림대부가 이뤄지자 73년부터 목장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고비는 있었다. 72년 12월 설상파종한 목초 씨앗이 73년 5월이 되어도 싹틀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6월3일 싹을 틔우는 목초가 개간지를 돌아보던 직원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해당 직원이 너무 감격하여 울어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74년 중장비가 들어오면서 공사가 본격화됐다. 산을 깎아 길을 만들고 교량 등 기반건설 공사가 진행됐다. 목축업은 고산지대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비웃듯 초기 들여온 한우 50마리는 건강하게 자랐다. 이에 전 명예회장은 73년 7월25일자 <강원일보>에 우리나라 최초로 암송아지 매입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후 전 명예회장은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나라를 돌아보면서 육우보다 젖소를 사육하는 것이 소득증대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확인,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젖소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고 78년 10월 최신시설을 갖춘 착유실을 목장에 설치해 우유 위생도를 높이고 착유 능률을 향상시켰다.

지난해 45만명 방문, 입장료 수익만 36억원
"목장에 소가 없다" 관광객 대다수 헛걸음

삼양식품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대관령 일대는 목장이 개발되기 전에는 화전민이 드문드문 옥수수, 감자 따위를 경작했을 뿐 주변 삼림은 고산지 특유의 잡관목과 넝쿨로 뒤덮여 있어 이용가치가 없는 땅으로 방치되어 있었다"며 "그러나 대관령 목장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초지농업의 풍요로운 터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8년만인 79년에는 드디어 암울했던 옛 모습을 벗고 600만평의 비단결 같은 초지가 완성되어 수천 두 젖소들의 낙원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대관령 삼양목장 개발성공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삼양축산개척십주년기념탑'에는 "대관령 삼양목장, 황량한 지대 위에 생명의 줄기가 움트기 시작했으며 자연으로 승화시킨 인간의 이상을 신념과 의지로 해발 1400미터의 고산지에 실현한 장엄한 서사시이며 생동하는 화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리한 선견지명과 뜨거운 정열, 불굴의 의지로 다져진 삼양식품의 창조적 산물이기도 하다"고 새겨져 있다.

목장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초지는 600만평, 목장 부지 가운데 삼양식품이 10만평, 삼양축산이 90만평 등 삼양이 100만평을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500만평은 국유지다. 현재 이곳엔 1·2단지 축사 21개동, 착유실 1개동 등의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목장 내 도로는 모두 합하면 120km나 된다.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주도로만 22km, 차량을 이용해도 1시간30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빛바랜지 오래다. 한때 4000마리가 넘었던 젖소는 현재 400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어 목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젖소 구경을 하기 힘들 정도다. 젖소 보다 양이 많아 '양떼목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다.

지역 상생 요청
회사 묵묵부답


삼양목장은 지난 2000년 초와 2011년 초 구제역 파동의 직격탄을 맞았다. 삼양목장은 구제역 예방을 위해 2010년 12월7일부터 목장관람을 중단했지만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아 한우·젖소 등 목장 내 900여마리의 소를 모두 살처분했다. 같은 해 4월26일 삼양목장은 목장 관람을 재개했다.

서울에서 3시간을 꼬박 달려 목장을 찾았다는 김모씨는 "어린 딸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홈페이지 어느 곳을 봐도 온통 소 사진과 소 그림뿐인데 정작 목장에는 소가 없었다"며 "모처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도시에서 보기 힘든 젖소도 보여주고 사진도 찍어주려 했는데 기분만 상했다"고 말했다.

삼양목장이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소는 볼 수 없었다. 삼양식품은 홈페이지 목장소식 게시판에 "양, 타조, 토끼, 거위는 관람이 가능하나, 젖소는 당분간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게시글을 올린 게 전부였다. 구제역 파동을 거치면서 삼양목장의 소는 줄어만 갔다. 삼양목장은 2011년 중순 젖소를 다시 입식했지만 그마저도 100여두가 다였다.

대관령면진흥회 관계자에 따르면 삼양목장은 매년 목장을 찾는 관광객들로 막대한 수익창출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역 사회에는 관심이 없다. 이 관계자는 "삼양 목장은 연간 5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 몰이에, 1인당 8000원이라는 입장료와 내부에서 삼양식품 제품 판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음에도 지역 상생의 움직임은 전혀없다"고 주장했다.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평당 30만→50만
삼양, 산림청 측 국유지 회수 제의에 'NO'

삼양목장은 2002년 8월15일 관광객들에게 전면 개방한 이래로 2003년 4500원, 2004년 5000원, 2007년 7000원, 2012년 8000원 등 꾸준히 입장료를 올려왔다. 평창군에 따르면 지난해 삼양목장을 찾은 관광객은 45만2000여명. 지난해 입장료로 벌어들인 수익만 36억1600여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목장 내부에서 판매 중인 삼양식품 제품 판매 수익까지 합치면 40원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 상생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관령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한모씨는 "주말마다 수천명의 관광객이 대관령면을 통해 삼양목장으로 들어가지만 그로 인해 대관령면 주민이 얻는 수익은 전무하다"며 "그동안 면 차원에서 수차례 삼양목장에 상생을 요청했지만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양목장이 목축업보다는 관광레저사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평창올림픽 유치 기대감이 커진 2003∼2005년 사이다. 당시 삼양식품은 2005년 한국관광공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레저업을 준비했다. 삼양목장을 친환경 관광지와 체험관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평창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서 사업을 접었다.

삼양목장 부지
노른자위 땅

하지만 2011년 7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뒤 삼양식품이 추진하던 삼양목장의 레저시설 개발이 재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단 부동산 시세가 크게 상승했다. 삼양목장이 평창동계올림픽 메인 경기장을 들어설 용평 알펜시아 인근으로부터 불과 6km 떨어진 노른자위 땅이기 때문이다. 평당 30만원이던 시세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결정 직후 10만원이 올랐다. 삼양이 소유한 목장 부지는 총 100만평, 3000억원이던 부동산 가치가 4000억원으로 뛰어오른 셈이다. 지금은 더 올랐다. 인근 부동산 업체에 따르면 1평당 50만∼60만원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당시 삼양식품 측은 "2018 동계 올림픽 유치는 분명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호재"라며 "장기 비전 차원에서 종합리조트 사업 진출 프로젝트가 가동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평창올림픽 유치 결정 당시 삼양목장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추가적인 개발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계올림픽 기반 시설 건설이 본격화 되면 제한이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고 실제로 강원 평창군은 지난해 4월부터 한시적으로 제한해 왔던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을 해제하기 시작해 지난 2월21일 모든 제한면적을 해제 완료했다. 여기에 최근 정부는 초지에 축산체험시설·운동시설 등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한 초지법 시행규칙을 올해 상반기 중 개정키로 해 삼양목장 개발 계획에 탄력이 붙게 됐다.


삼양식품은 450억∼500억원을 투자해 삼양목장을 복합관광단지로 만들 예정이다. 앞서 목장을 운영하는 계열사 법인명도 삼양축산에서 에코그린캠퍼스로 변경했다. 삼양식품은 개발 첫단계로 양떼몰이 전용 돔 건축물을 세울 계획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사시사철 양떼몰이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는 것. 이와 함께 목장을 찾는 관광객이 직접 젖소·양의 젖을 짜고 이를 치즈 등 유제품으로 만드는 프로그램과 함께 목장에서 방목하고 있는 육우·젖소를 활용한 양질의 스테이크 요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목장에 라면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물관 안엔 자판기 형태로 라면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시설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실적 부진…영업·순이익 감소
'라면'보다 관광·레저에 치중?

삼양식품이 목장 개발에는 열을 올리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정부 주도의 개발 사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양목장은 평창동계올림픽 특구로 지정됐다. 정부는 이 곳을 1차(목축)+2차(낙농)+3차(관광)산업이 결합된 대관령 자연순응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올해 초 정부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특구종합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 강릉, 정선 일원의 올림픽 특구에 대한 개발이 본격 추진된다.

올림픽특구는 2018년까지 1단계, 2032년까지 2단계로 국비 3641억원, 지방비 2828억원, 민간자본 2조6594억원을 투자한다.

앞서 2012년 강원도는 삼양목장 인근 130m² 규모의 부지에 올림픽특구 개발의 일환으로 자연순응형 휴양지구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동부지방산림청과 강원도는 삼양목장이 사용하고 있는 국유지를 회수하는 방안을 삼양목장과 협의 중이지만 삼양은 임대 국유지 회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관령면진흥회 관계자는 "2012년 10월께 삼양목장 인근에 수목원을 조성하는 사업이 검토됐지만 곧 없던 일이 됐다"며 "삼양목장 측에서 산림청 쪽으로 로비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양목장이 자체적으로 계획한 체험형 테마 목장 단지는 약 30만평에 불과한데 600만평을 점유 중인 삼양목장이 수목원을 위한 일부 부지를 내놓지 않는 것은 욕심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대관령면 발전을 위해서는 수목원 조성이 필수"라고 토로했다.

전체 매출의 80% 가량이 ‘라면 사업’에서 나오는 삼양식품의 실적은 레저·관광사업 확대와 맞물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출은 2010년 2726억원, 2011년 2947억원, 2012년 3153억원 등 꾸준히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다르다. 2008∼2009년 250억원 수준이던 영업이익은 2010년 141억원, 2011년 151억원, 2012년 81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118억원으로 일부 회복된 모습을 보였지만 광고선전비를 전년대비 25억원 가량 줄인 효과에 불과했다. 순이익 역시 5년 전 188억원에서 지난해 59억원으로 감소했다.

올림픽 특구 지정
개발 사업 탄력

이와 관련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삼양목장 인근에 수목원을 조성하는 사업은 산림청과 의견 교환 정도만 이뤄진 정도"라며 "아직 반대·찬성 여부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목축업 보다는 레저·관광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삼양목장이 박정희 정부 목축사업 일환으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현재는 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라며 "지원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목축업만으로 목장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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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