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지 않는' 5만원권의 비밀

그 많던 ‘신사임당’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일요시사 =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돈의 일생. 한국조폐공사에서 태어난 지폐는 세상에 나와 돈이 되어 국내를 떠돈다. 조폐공사에서 시중은행으로, 은행에서 고객이나 특정 기관 등을 거쳐 비로소 돈이 된다. 제 역할을 다해 너덜너덜해진 돈은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돌아온 돈은 재활용되고 끊임없이 환생한다. 그런데 고액권인 5만원이 한국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금고 속으로, 장롱 속으로, 땅 속에 묻혀 깊고 어두운 곳에 숨어버렸다. 그 많던 5만원권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해외에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뒤 수천억원대의 도박판을 운영한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2일 해외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국내 현금 인출책 양모(76)씨 등 3명을 도박개장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양씨의 아파트에서 수익금의 일부인 28억9000만원을 발견해 현장에서 압수했다. 모두 5만원권이었다. 경찰은 5만원권 5만7800매를 공개했다.

많이 풀렸는데…
절반 자취 감춰

5만원권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가장 고액권이라 갖고 다니기 가벼우면서도 수표보다 사용이 편리하다. 명절 때마다 5만원권은 시중에 대량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찍어내기 무섭게 5만원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5만원 지폐는 유난히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발행을 많이 해도 한국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권 발행잔액은 61조1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9조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5만원권만 7조9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은행권 발행잔액 중 66.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년 말보다 3.7%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4년여 동안 수요가 늘면서 5만원권 유통량은 40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5만원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5만원권 환수율(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돈의 비율)은 전년보다 13.1% 포인트 떨어진 48.6%를 기록했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1년 59.7%, 2012년 61.7%를 기록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2장 중 1장은 중간에서 잠적한 셈이다.


40조 넘게 발행…환수율 절반 이하로 ‘뚝’
시중은행선 부족해 쩔쩔…한국은행 팔짱만

환수율이 낮아지면서 국민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5만원권이 부족해 쩔쩔매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현금 자동지급기에 충전시킬 돈조차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객들의 5만원 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해 창구에서는 만원권 지폐를 섞어 인출해 주는 곳도 있을 정도다.

최소한의 현금지급기용 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고객들의 인출 요구는 많은데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5만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은행과 조폐공사 측은 5만원권 지폐에 대해 평소보다 적게 발행하거나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축소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1만원권은 평균 100개월(8년4개월), 5000원권은 평균 65개월(5년5개월), 1000원권은 평균 40개월(3년4개월)을 누군가의 소유로 지냈다. 5만원권의 수명은 적어도 100개월을 넘을 것이다. 2009년 6월 탄생한 5만원권은 아직 60개월도 채 안 돼 정확한 수명을 알 수는 없다.

5만원권은 지난 2009년 편익과 화폐 발행비용 절감을 위해 발행됐다. 많은 현금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5만원권의 등장을 반겼다. 그러나 서민들은 많은 돈을 들고 다닐 일도, 보관할 일도 없다. 따라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꼬리표가 없는 5만원은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라는 현 정부의 정책목표와 달리 지하경제가 확대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깊은 곳 숨어
검은돈으로

5만원권은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갔을 확률이 가장 크다. 고액 자산가와 자영업자의 금고, 사설 카지노 등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근로자와 교포 등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갔거나 10만원권 수표 대신 어디선가 비자금으로 돌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5만원권이 악용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권 22만장의 110억원대 뭉칫돈이 발견됐다. 이 금액은 인터넷 도박으로 벌어들인 범죄수익금이었다. 옷장과 침대 밑에 5만원권 지폐 22만장이 숨어있었다. 

당시 수사당국은 자신의 처남 등이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로 벌어들인 돈을 소유하고 있던 마늘밭에 숨긴 이모씨 등을 검거했다. 주범인 그의 처남 이모씨는 수배 중이다.

지난 2012년에는 서울 강남에서 유명 여성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여의사의 집에서 현금 24억원이 발견됐다. 이 의사의 자택에서는 5만원권이 가득 찬 박스와 가방들이 안방 장롱, 베란다, 책상 등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탈세를 위해 빼돌린 돈이었다. 지난해에는 원전 비리와 관련돼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의 집에서 5만원권 6억원어치 뇌물이 발견됐다. 

이렇게 5만원은 보란 듯이 지하경제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5만원권이 깊은 곳으로 숨을수록 지하경제 규모는 더욱 커진다. 지하경제가 커진다는 것은 세금을 걷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세금을 더 올릴 수밖에 없다. 5만원권이 지하경제 깊은 곳으로 숨어들수록 악순환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유리지갑 월급쟁이들과 성실한 납세자들만 올라간 세금을 모두 떠안게 된다.
 

그런데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5만원권 환수율 하락’이 경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5만원권이)어디에 잠겨있는지 부서마다 조사를 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고액권이다 보니 지하경제로 들어갔을 확률이 커 추적이 어렵다”고 말했다. 5만원의 행방 추적에 사실상 손놓고 있는 모습이다. 

로비로 빠지고
해외로 빠져나가

5만원은 최고의 로비 수단이다. 부피와 중량의 효율성 때문이다. 무게가 가벼워서 이동이 쉽다.

로비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건설사, 제약회사 등의 업체들은 5만원권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5만원권을 많이 확보할 수록, 로비를 잘할수록 능력있는 직원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5만원권이 없으면 상품권으로 로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권은 5만원권보다 위험하다. 추적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5만원은 자금 추적으로부터도 안전하고 무게도 가볍다.

1억원은 5만원권 2다발로 무게가 2kg도 되지 않는다. 와인이 2병 들어가는 007가방에 보관해도 5억원은 충분히 들어간다. 그만큼 거액의 돈을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게 쉽다. 가정용 금고는 보통 소형 사이즈도 10억원 정도는 들어간다. 자금 추적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래서 5만원권의 행방은 자주 뉴스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뇌물 혹은 비자금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룬다. 

지난 2012년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공개한 5만원권 100장 묶음 10개 다발이 대표적이다. 당시 장 전 주무관은 자신이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은폐 의혹을 폭로하려 하자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5000만원을 주며 회유했다고 밝혔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전 회장은 5만원권 240장(1200만원)을 브로커에게 내고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5만원권이 정치권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철을 맞아 5만원권이 뇌물로 빠지고 있다는 뒷말이 오간다.

경북도내에서는 선거법 위반 적발 사례가 4년 전 지방선거 때보다 크게 늘었다. 경북도선관위는 지방선거 91일 전인 5일 현재 도내에서 모두 171건의 선거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 91일 전의 63건 적발과 비교하면 3배나 늘어난 수치다.


없어질수록 지하경제 확대
도박자금·비자금으로 활용
암암리에 해외로 퍼져 유통

또한 일부 5만원권은 해외로도 빠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동포들이 국내에서 번 돈을 중국으로 가져가 위안화로 바꾸고 있다는 것. 옌볜 등 일부 지역의 사설 환전소는 국내보다 더 좋은 환전 조건을 제시한다.

중요한 변수는 환율이다. 옌볜에서는 위안화 대비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때마다 5만원권이 인기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화가치가 다시 올라갈 것에 대비해 저렴할 때 원화를 사두려는 교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교포들은 환전 조건이 한국보다 좋은 사설환전소에서 휴대가 편리한 5만원권을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내국인의 해외여행으로 5만원권이 빠져나가기도 한다. 한류에 의해 동남아 등에서 원화 환전수요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외국 금융회사 원화 환전이 2006년부터 허용된 데 이어 해외 유출 원화에 대한 규제도 완화돼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를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다.

위조지폐 활개
5만원 딜레마

5만원권 수요가 늘어난 만큼 위조지폐도 시중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5만원권 위폐만 100여건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 규모는 1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현금 거래를 하는 전통시장이나 편의점, 택시 등에서 위조지폐가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에는 울산과 경남지역에서 위조지폐들이 발견됐다. 울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울산시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남자 승객 2명을 내려준 택시기사가 요금으로 받은 5만원권이 위조지폐인 것을 확인했다. 택시기사는 남구 야음동 울산세관 앞에서 태운 승객들이 5만원을 요금으로 내 거스름돈 4만6000원을 줬다.

앞서 같은 날 남구 신정동 수암시장 앞에서도 하차한 남자 승객 2명이 5만원권을 요금으로 냈다가 택시기사가 지폐의 상태를 의심하자 다른 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승객들 말투가 중국동포(조선족)처럼 들렸다”는 택시기사들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를 쫓고 있다.

경남 남해군에서는 남해읍의 한 마트 직원이 물건값으로 받은 현금을 은행에 입금하는 과정에서 컬러복사기로 위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5만원권 한 장을 발견했다.

남해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5000원권과 5만원권 위조지폐가 4차례나 발견됐다.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 범인을 붙잡지 못했다.

적발된 위폐 감별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불빛에 비춰 지폐 왼쪽 여백에 신사임당이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일그러지면 위조지폐다. 상하좌우로 움직였을 때 홀로그램 안쪽 태극마크가 움직이지 않아도 위폐다. 또 심하게 낡고 구겨진 5만원권은 위폐를 의심해 봐야 한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캐시 이코노미(Cash Economy)의 증가에 대해 ‘지하경제 확대의 경고등’이라고 지적했다. 캐시 이코노미는 거래가 신용카드, 계좌이체 등이 아니라 주로 화폐, 즉 현금으로 이뤄지는 경제를 뜻한다. 캐시 이코노미는 지하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고서는 5만원권이 사라지면서 한국 경제에서 캐시 이코노미가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폐개혁’가능할까 ‘경→조?’, ‘억→만?’

화폐개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를 구체화한 대북 제안인 ‘드레스덴 구상’까지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내부에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액면 단위변경) 검토 중이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조(兆)를 넘어 경(京)단위 화폐통계가 실물경제 부분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한국은행 자금순환표 상의 금융자산은 작년 말 1경263조원, 금융부채는 1경302조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경 단위 화폐 통계의 확산은 무엇보다 경제 규모 증대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은 외국인들에게 통계를 설명할 때 1000조원만 돼도 ‘1쿼드릴리언’(quadrillion, 1000조)이라는 생소한 영어 화폐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통계 단위의 대부분이 10억(billion) 단위로 해결되고 최대치라도 조(trillion) 단위에 그친다. 이는 과거 5만원권이 나오기 직전 화폐액면 단위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액면 단위변경 검토

또한 화폐개혁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탈루된 현금 소득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에 묻힌 자금을 끌어내고 세수를 늘리는 데 화폐개혁이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사항인 만큼 한국은행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현 상황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시행 시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상당한 논란과 비용이 불가피한 화폐 단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폐개혁 움직임이 있었지만 매번 엎어졌다. 화폐개혁은 김영삼 정권 시절 한국경제에 파장을 일으켰던 금융실명제보다 더욱 강력한 수단이다. 화폐를 새로 만들고 물품 가격을 바꿔 표시하는 것은 물론 전국에 있는 은행 현금 지급기, 자판기 등 관련 기계와 각종 시스템을 모두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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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