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골프천재’ 노승열·리디아 고

세월호 참사로 슬픈 국민에 ‘희망샷’

[일요시사=사회팀] ‘코리안남매’ 노승열과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PGA·LPGA서 나란히 우승을 차지했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사이, 골프천재들이 먼 타국에서 희망을 안겨줬다. 우승컵을 쥔 노승열의 새하얀 모자에 달린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노승열(23·나이키골프)과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7·캘러웨이)가 지난달 28일(이하 한국시간) 나란히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를 동반 석권하며 한국 골프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앞으로 두 선수가 세계 골프 무대를 호령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PGA 노승열
LPGA 리디아 고
 
‘영건’ 노승열은 지난달 28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애번데일의 루이지애나 TPC(파72·7399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취리히 클래식에서 최종일 1언더파 71타를 기록해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투어 진출 2년 만에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같은 날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7·한국명 고보경)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레이크 머세드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스윙잉스커츠 클래식에서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프로 전향 후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노승열과 리디아고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골프 재능을 선보인 천재로 알려졌다.
 

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노승열은 최경주(44·SK텔레콤), 양용은(42·KB금융그룹), 배상문(28·캘러웨이)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4번째로 챔피언에 올랐다. PGA 데뷔 2년 만에, 78번째 도전 끝에 얻은 소중한 우승이다.
 
우승상금 122만4000달러(약12억7000만원)를 받은 노승열은 앞으로 2년 동안 투어에서 뛸 수 있는 카드는 물론 올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PGA챔피언십 출전권, 그리고 내년 마스터스행 티켓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또 오는 5월29일 만 23세 생일을 앞두고 한국 선수로는 최연소 우승의 진기록도 세웠다.
 
노승열은 우승 직후 “안타까운 사고로 슬픔에 빠진 모든 분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국의 국민을 위한 행복 에너지 배달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웰스 파고 챔피언십을 그 일환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각오다.
 
노승열은 인터뷰에서 “웰스 파고 챔피언십과 그 다음 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2승에 도전하겠다”고 의욕을 다졌다. 그리고 우승 다음 날인 29일, 세월호 피해 지원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 노승열의 선행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3년간 꾸준히 선행을 실천해왔다.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고대의료원에 2011년부터 3년 동안 모두 9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노승열 우승에 현지 언론은 무척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나이 때문이 아니다. 3라운드까지 보기 한 개 없는 완벽한 플레이를 했고 메이저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베테랑 키건 브래들리와 최종일 맞대결을 하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던 대담한 플레이가 돋보였다는 것.
 
 
키건 브래들리는 2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동타를 만들었다. 그러나 브래들리가 5번홀 보기, 6번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하면서 갑자기 무너져버렸다. 노승열은 8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브래들리를 완전히 떼어놨다. 메이저 우승 경력이 있는 미국의 차세대 스타 브래들리는 지난해 배상문에게 역전패한데 이어 노승열에게도 참패를 당했다.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노승열은 인정받는 ‘골프 신동’이다. 타이거 우즈의 스승이었고 지난해 말까지 노승열을 가르쳤던 세계적인 골프교습가 숀 폴리는 그에게 특별한 애칭을 붙였다. ‘Soon You`ll Know’다. ‘Seung-Yul Noh’의 한국식 발음(승열 노)과 비슷하게 부르며 ‘곧 널리 알려지는 스타가 될 것’이라고 그의 재능을 인정한 것이다.
 

노승열은 PGA 투어 첫 승을 새 캐디와 이뤄냈다. 하버드대 출신의 캐디 마크 마조(미국)와 호흡을 맞췄던 노승열은 지난 3월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을 끝으로 캐디를 교체했다. 이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베테랑 캐디 스콧 새즈티낵(호주)과 마침 일정이 맞았고, 이번 경기부터 함께 플레이를 했다.
 
새즈티낵은 트레버 이멜만(남아공)과 스튜어트 애플비(호주) 등의 백을 멨고, 10년 이상 PGA 투어를 누빈 베테랑이라 젊은 노승열에게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새즈티낵과 함께 PGA 투어를 누빌 가능성이 크다.

노란 리본 승전보
고국에 위로 안겨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난 노승열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골프채를 잡아 장타자로 이름을 날리며 중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2007년 프로로 전향해 2008년 아시안투어 대회인 미디어 차이나 클래식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그해 아시안투어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아시안투어와 유럽투어가 공동 개최한 메이뱅크 말레이시아오픈에서 18세 282일의 나이로 1위에 올랐다. 그는 그해 아시안투어 상금왕에 오르기도 했다.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가 보유한 유럽투어 최연소 우승(18세 213일)에 이어 두 번째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것이다.
 
노승열은 2012년 두 번째 도전 만에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꿈의 PGA 투어 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PGA 정복은 쉽지 않았다. 함께 PGA 티켓을 따낸 배상문이 지난해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동안 노승열은 톱‘10’에만 5번 오르는 데 그쳤다.
 
2013년 난조에 빠져 투어 카드를 잃을 뻔하는 고비를 맞았지만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 파이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2013-2014 시즌에 합류했고, PGA 투어 78번째 출전 대회인 취리히 클래식에서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쥐며 자신의 실력을 당당하게 입증했다.
 
노승열의 골프 인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아버지 노구현(51)씨다. 그는 어릴 적 노승열의 캐디를 자청하는 등 적극 지원했고, 노승열이 미국 생활을 할 때도 함께 했다. 
 
한국 남녀 골프 유망주
미국 프로무대 동반우승
 
테니스 선수 출신인 노씨의 권유로 초등학교 1학년 때 골프채를 잡은 노승열은 아버지의 지도 아래 집에서 3분 거리인 바닷가를 훈련장으로 삼아 매일 4km 거리의 모래사장을 뛰었다. 강한 하체에서 나오는 장타 본능은 어린 시절 훈련에서 나온 것이다.
 

노씨는 어릴 적 아들의 캐디백을 직접 메는 등 열성적으로 지원했다. 아들이 프로가 된 후에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캐디를 자처했다. 노씨는 갑상선암 재발로 그동안 건강 상태가 나빴지만 우승 소식을 듣고는 “갑상선 질환은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다 풀린 것 같다”며 기뻐했다. 
 
또 한 명의 골프 신동 리디아 고는 지난해 10월 프로 전향 선언 후 처음으로 LPGA 투어 대회를 제패했다. 이로써 리디아 고는 여자골프 세계랭킹 2위로 올라섰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세계여자골프랭킹에서 9.42점을 받아 4위에서 2계단 상승했다.
 
프로 데뷔 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첫 우승이 순위 상승을 견인했다. 리디아 고는 28일 끝난 스윙잉스커츠 클래식에서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를 1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달 24일 17번째 생일을 맞았던 그는 선물로 우승을 받은 것.
 
박인비(26·KB금융그룹)는 55주 연속 세계랭킹 1위(10.12점)를 지켰고, 루이스는 3위(9.31점)에 자리했다. 반면 박인비를 위협했던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은 최근 부상으로 인한 대회 불참으로 4위(8.91점)까지 밀려났다.
 
베테랑 카리 웹(호주)은 5위(7.24점)를 유지했고, 스윙잉스커츠에서 공동 9위에 올랐던 크리스티 커(미국)는 10위로 한 계단 올랐다. 롯데 챔피언십 우승자 미셸 위(미국)는 13위(4.19점)로 12위 최나연(27·SK텔레콤·평점 4.29)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나란히 우승하며

세계에 얼굴도장
 
리디아 고는 아마추어 시절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와 호주여자프로골프(ALPG)투어 대회에서 총 3차례 우승했고 LPGA투어 대회에서도 2승을 거두며 두각을 보였다. 프로 전향  불과 2개월 후인 지난 12월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스윙잉스커츠 월드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우승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1위에 올라 ‘천재 소녀’라는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의 최대 강점은 침착한 경기 운영이다. 이날 최종 라운드에서도 초반 세계 정상급 선수인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게 2타 차로 뒤졌지만 8, 9번홀 연속 버디로 동타를 만든 뒤 13번홀에서 버디를 낚아 이 홀에서 보기를 범한 루이스를 2타 차로 따돌렸다.
 
[노] 생애 첫 PGA 우승…최연소 타이틀
[고] 세계랭킹 2위…1위 박인비 0.7점차
 
리디아 고는 “루이스 같은 베스트 플레이어와 경기하는 건 항상 기쁘고 배울 점이 많다”며 최종 라운드를 출발했다. 2012년 캐나다여자오픈에서 LPGA 투어 최연소 우승을 거뒀을 때도 루이스와 챔피언 조에서 정면 승부를 펼쳤는데 결과가 좋았다. 선두로 출발했던 리디아 고는 5타를 줄이며 정상에 우뚝 섰고, 반면 1타 차 뒤진 채 최종 라운드를 맞은 루이스는 이븐파에 그치며 공동 6위까지 미끄러졌다.
 
루이스는 “15세 소녀의 플레이라곤 믿기지 않는다”며 혀를 찬 적이 있다. 스윙잉 스커츠 LPGA 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루이스는 침착했다. 작전대로 전반에 잠잠하다 후반에 승부수를 띄웠다. 반면 리디아 고는 전반에 업앤다운이 좀 있긴 했지만 버디를 보기보다 1개 더 잡아내 10언더파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둘은 10번홀(파4)에서 나란히 보기를 적어 9언더파 공동선두가 됐다. 
 
13번홀(파4)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리디아 고가 2m 버디 퍼트를 성공한 반면 루이스는 2.5m 파 퍼트 실패로 보기를 적어 2타 차로 벌어졌다. 파5 14번홀에서도 리디아 고는 연속 버디를 낚았다. 루이스도 버디를 잡아 9언더파로 올라섰다. 세계랭킹 3위 루이스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루이스는 16번홀(파4)에서 버디를 솎아내 1타 차로 좁히며 숨통을 조여 왔다. 
 
하지만 루이스는 17번홀(파4)에서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리디아 고가 2온에 실패해 어려운 파 세이브를 하는 동안 루이스는 4m 버디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퍼트가 약간 짧았고, 루이스는 아쉬움이 고개를 푹 떨궜다. 오히려 신지은이 3m 버디를 솎아내 10언더파로 올라섰다. 
 
18번홀에서 숨 막히는 1타 승부가 벌어졌다. 챔피언 조 3명 모두 3m 이내의 버디 찬스를 잡은 것. 먼저 퍼트한 신지은은 버디 기회를 놓쳤고, 리디아 고가 1.5m 버디를 시원하게 성공시키며 최종 우승을 확정 지었다. 
 
최근 LPGA 투어에서 리디아 고에 버금가는 화제를 모은 렉시 톰프슨(19·미국)은 2010년 6월에 프로 전향을 선언하고도 첫 우승을 2011년 9월에 기록했고, 미셸 위(25) 역시 2005년 10월 프로로 데뷔한 뒤 첫 승을 2009년에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디아 고는 데뷔 후 첫 시즌부터 가볍게 우승컵을 거머쥐며 ‘골프 신동’의 등장을 세계에 알렸다. 
 
리디아 고는 제주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2003년 가족들을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뒤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며 골프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리디아 고는 영국왕실골프협회가 수여하는 매코맥 메달을 3년 연속 수상했다.
 
매코맥 메달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마크 매코맥의 이름을 딴 메달로 매해 시즌이 끝난 뒤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한다. 리디아 고는 지난해 LPGA 투어 대회까지 제패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계의 명성을 높였다.

예견된 결과
골프 기대주
 
리디아 고가 작년 말 프로 전향 후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금은 하루 5300 뉴질랜드달러(약47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후원사와의 계약금이나 광고 수입 등은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상금은 올해 LPGA 대회에서 받은 액수가 총 58만8816뉴질랜드달러, 지난해 두 차례 프로대회에서 21위와 1위를 해서 받은 액수가 23만4406뉴질랜드달러, 지난 1월 뉴질랜드 오픈에서 2위를 차지해 받은 액수가 3만2710뉴질랜드달러 등이다. 
 
리디아 역시 정상급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리디아 고는 5세 때 처음 골프를 시작해 48일째 되는 날 첫 라운드에서 130타를 칠 정도로 골프감각이 뛰어났다. 그 이듬해 테니스 선수 출신인 아버지 고길흥(53)씨는 리디아 고를 데리고 뉴질랜드로 골프 이민을 감행했다.
 
고씨는 딸에게 “너는 천재다. 특별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 리디아 고는 골프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즐길 줄 아는 선수가 됐다. 고씨는 또 자신이 고안한 훈련법으로 딸을 직접 지도했다. 집 근처 골프장의 파3홀에서 각각 다른 세 곳의 티에서 각각 30개씩 볼을 치며 거리 맞추는 연습을 매일 했다. 그 결과 리디아 고는 “홀 가까이 아이언 샷을 붙이는 대회가 있으면 내가 당연히 우승”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리디아 고는 우승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어떤 우승이든 큰 차이가 없지만 이번 대회는 아버지와 함께한 우승이라는 점이 달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khlee@ilyosisa.co.kr>
 
 
[노승열은?]
 
▲강원도 속초 출생
▲경기고 졸업
▲고려대 재학 중
▲2005∼2007 골프국가대표
▲2005 한국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
           한국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08 아시아투어 미디어차이나클래식 우승
▲2010 아시아투어 겸 유럽투어 메이뱅크 말레이시아 오픈 우승
▲2012 미국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진출
▲2013 PGA 2부 투어 웹닷컴투어 우승
▲2014 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 우승
 
 
[리디아 고는?]
 
▲제주 출생(국적 뉴질랜드)
▲2011 마크 매코맥 메달
▲2012 호주 아마추어 여자 골프선수권대회 우승
▲호주 여자 골프 뉴사우스 웨일스 오픈 우승
▲제112회 US 아마추어 여자 골프선수권대회 우승
▲LPGA투어 캐나다 여자 오픈 최연소 우승
▲2013 LET ISPS 한다 뉴질랜드 여자 오픈 우승
▲LPGA투어 캐나다 여자 오픈 우승
▲KLPGA 스윙잉 스커츠 월드 레이디스마스터스 우승
▲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클래식 우승(프로 전향 후 LPGA 첫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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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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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