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유형별 추석나기 노하우 대공개 ① 자린고비형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시즌이다. 짧은 연휴가 아쉽지만, 설레는 마음은 예년과 같다. 그러나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명절 때만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짠돌이’란 별명답게 돈 나갈 걱정 때문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잊은 지 오래다. 불경기에 허리띠를 꽉 졸라매도 모자랄 판에 명절은 큰 산이 아닐 수 없다. 얼핏 보면 “그래도 1년에 몇 번 없는 명절인데”라며 김 과장의 엄살이 심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연휴 기간 동안 빡빡해지는 주머니 사정은 서민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자린고비형’인 김 과장의 추석나기를 통해 알뜰 한가위 보내기 비법을 알아봤다.

‘줄이고, 깎고, 아끼고….’
추석의 걱정거리는 ‘돈’이다. 직접 가계부를 쓰는 김 과장은 이번 추석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목돈이 들어가는 이유에서다. 부인 대신 가정경제를 쥐고 있는 입장에선 당연한 고민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새어나가는 돈의 가치는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

“명절은 돈 쓰는 날이나 다름없죠. 어르신들 선물에 기름값까지, 억지로 지출을 막지도 못하고 한마디로 죽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요즘 같아선 부모님 용돈까지 부담될 지경입니다.”

김 과장은 알뜰한 명절나기를 위해 지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선물, 교통수단, 차례상 등 비용 지출을 추석 보너스에 맞추기 위해서다.

우선 김 과장은 회사에서 나온 ‘떡값’부터 가계부에 기재했다. 그가 받은 추석 보너스는 80만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올 추석 직장인들의 평균 상여금 88만원과 비슷하다. 이는 전년(94만9천원)에 비해 6만9천원이나 감소한 금액. 고유가·환율 불안 등으로 촉발된 경기침체 여파가 기업 추석 상여금에 영향을 미친 탓이다.

평균 보너스 88만원
전년보다 7만원 줄어


그러나 김 과장은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보너스가 평균보다 낮고 지난해에 비해 대폭 줄었지만, 이마저도 못 챙기는 직장인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실제 추석 상여금을 지급하는 기업은 65.9%로 전년(68.1%)에 비해 2.2% 감소했다. 중소기업은 무려 44.3%가 올 추석 상여금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추석 상여금 지급률도 감소세다. 지급률은 전년(80.2%)보다 7.8% 감소한 기본급 기준 72.4%로 나타났다. 지급률은 2004년 96.5%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 4년간 24.1%나 줄었다.

경총 측은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성과주의형 인사임금체계의 개편이 가시화되면서 명절상여금 등 각종 특별상여금을 기본연봉에 포함시키거나 상여금 지급률 자체를 낮춘 기업이 많다”며 “경기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기업의 지불여력 역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선물이다. 물론 그 대상은 지인들을 빼고 부모님으로만 한정했다. 김 과장은 잘나가면서도 싸고 알찬, 무엇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을 낼 수 있는 선물을 골랐다. 바로 ‘상품권’이다. 추석선물 선호 설문조사를 보면 현금에 이어 건강식품, 생활용품, 전자·가전제품 등의 순으로 상품권 인기는 그리 높지 않지만, 매년 1위를 놓치지 않는 현금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진 점에서 매력적이다.

김 과장이 예상한 선물비용은 20만원 정도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각각 10만원권 상품권을 드릴 계획이다. 참고로 올 추석 예상되는 선물비용으론 ‘20만∼30만원’이란 응답이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상품권은 시기만 잘 맞추면 시중에서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재래시장 상품권은 각 시도별로 구입시 2∼5%의 할인 혜택을 받는다.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온라인 또는 상품권매장에서 구매하면 정가의 약 5∼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현재 온·오프라인 통합 한 상품권 유통업체는 10만원 상품권을 9만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상품권매장에선 최대 1만원까지 싸게 팔기도 한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
‘상품권 어떠세요?’


업계 관계자는 “명절이 다가올수록 상품권 수요가 폭증하기 때문에 가격도 조금씩 더 오른다”며 “최소한 명절 한달 전에 미리 구매해야 제대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향을 방문할 때 들어가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4명의 가족을 둔 김 과장은 중형차(2천㏄급)를 소유하고 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난 7월 리터당 2천원에 육박했던 휘발유값이 1천7백원 안팎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부담이다.

부산이 고향인 김 과장 가족이 승용차를 타고 서울∼부산을 왕복하려면 기름값에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모두 40만원이 넘는다. 올해 추석연휴가 3일로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통 혼잡이 예상돼 길바닥에 버리는 기름값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루해도 싸다면…”
대중교통 이용 ‘정답’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추석 승용차 기준으로 귀성시 서울에서 대전까지 5시간40분, 부산까지 9시간50분, 광주까지는 9시간10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막혀 귀성 때보다 길게는 1시간쯤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과장은 항공과 기차, 고속버스 등 각종 대중교통을 놓고 저울질 끝에 결국 고속버스를 선택했다. 그는 4인 기준 고속버스로 서울∼부산 왕복시 일반고속 약 16만원, 우등고속 약 24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계산했다.

4인 가족이 서울∼부산 왕복시 KTX 일반석을 이용하면 운임이 40만원가량 든다. 서울∼부산 KTX 일반실 1인당 요금은 평일엔 4만7천9백원이고, 주말엔 5만1천2백원이다. KTX 4인용 동반석을 이용할 경우 최대 15만원까지 절약할 수 있다. 새마을 등 일반열차는 더 싸다.

항공도 비슷하다. 일반 항공은 4인 기준 서울∼부산 왕복시 60만원대가 예상되지만, 저가항공을 이용하면 40만원대에 편안하고 빠르게 고향을 다녀올 수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편하게 가면서도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고유가 시대에 돌입한데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짧아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할 것으로 보이므로 대중교통 이용이 경제적이고 편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명절에 차례상은 피할 수 없는 필수다. 매번 재래시장에서 제수음식을 구입한 김 과장은 이번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래시장을 둘러볼 작정이다. 특히 시중가보다 10∼40% 저렴한 가격으로 성수품을 판매하고 있는 전국 2천여곳의 직거래장터도 김 과장의 타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래시장이 백화점보다 40% 싼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 따르면 서울 시내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 슈퍼마켓, 재래시장 등 1백곳에서 32개 추석 성수품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 차례상(4인 가족 기준) 비용은 17만4천원으로 집계됐다.

유통업체별 차례상 비용은 ▲백화점 23만7천2백1원 ▲할인마트 16만7천1백63원 ▲슈퍼마켓 16만2천7백64원 ▲재래시장 14만3천70원 등이었다. 재래시장이 백화점에 비해 39.7%나 저렴한 셈이다.

다른 조사도 마찬가지. 최근 한국물가협회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 차례상을 준비하는 데는 13만1천2백원이 들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10∼20%, 많게는 50% 이상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와 백화점보다 싼 것은 원가 차이가 아닌 관리비와 인건비 등 부대비용 차이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갈수록 재래시장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은 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차례상
발품 팔면 돈 보인다


김 과장은 싼 맛에 인터넷과 대행서비스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리기도 했지만, 상품의 원산지와 유통기한 표시 등과 관련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을 접었다. 제사음식 인터넷 판매와 요리 대행서비스의 가격은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하다.

연합회 측은 “제사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인터넷 업체의 원산지 표시와 유통기한 별도 표시 여부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유통기한 및 취급상 주의사항에 대해 전혀 표시를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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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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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