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추억 사고파는 동묘 벼룩시장 가보니…

홍대 안 부러운 노인들의 놀이터

[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동묘 벼룩시장은 전국팔도를 돌고 돌아 다시 부활한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한 온갖 물건을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노인들의 홍대’로 알려졌지만 요즘엔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 보물창고다. 동묘 벼룩시장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동묘 벼룩시장에 가면 세상 온갖 만물과 마주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며 입양을 기다리는 물건들로 즐비하다. 구석구석 향수가 묻어나는 시장으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기에 적합한 장소다. 이제 동묘 벼룩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닌, 하나의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주말 평균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을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하루종일 북적

연중무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동묘시장은 ‘동묘 벼룩시장’ 혹은 ‘동묘 구제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거래되는 특별한 시장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동묘역 주변으로 많은 물건들이 거래된다. 평일 250∼300개, 주말 550∼600개 정도의 좌판이 모여 자연스럽게 거리시장을 형성한다. 주말에 찾은 동묘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거리에는 수북이 쌓인 옷 더미로 가득한 좌판이 즐비했다. 돗자리 위에 깔린 옷들의 가격은 보통 1000원부터 시작했다. ‘사든 말든’. 길거리의 상인들은 판매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가격을 물어볼 때나 대답해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가격을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대부분의 좌판들은 쌓여 있는 옷들을 1000원이나 2000원에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시세’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형성돼 있었다.


조금 괜찮다 싶은 브랜드의 옷들은 대게 5000원 정도였다. 물론 명품 브랜드의 옷은 예외다. 명품 옷은 옷걸이에 걸어놓고 판매한다. 그렇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다. 이 옷들은 만원짜리 몇 장이면 구매가 가능했다. 새 상품 구입가격을 생각해보니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잘 찾아보면 ‘보물찾기’가 가능한 것. 그렇다고 쉽게 보면 안 된다. 보물찾기가 간단할 리 없다. 수많은 옷들을 헤치고 자신만의 아이템을 찾는다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기자도 수십분 만에 겨우 하나를 건졌다.
 

동묘시장 길거리에는 옷 외에도 중고휴대폰, 카세트, 디지털카메라, 헤드폰 등을 판매하는 전자제품 전문 좌판도 있다. 노인들은 좌판에 모여 물건을 탐색하며 상인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상인들의 착한 ‘끼워 팔기’도 눈에 띄었다. 한 상인은 “카세트 사면 최신 헤드폰 3000원에 줄게요”라며 노인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도 했다.

제품의 성능을 확인하며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쇼핑’이 아닌 ‘놀이’로 보였다. 실제로 동묘시장엔 소일거리를 나온 노인들이 많다. 괜히 ‘노인들의 홍대’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좌판 근처엔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노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박물관’ 아날로그 감성 자극 시장풍경
단돈 만원이면 옷 한벌…젊은세대도 모여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사방으로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은 기본이며 잡다한 물건들이 돗자리 위에 있었다. LP판, 시계, 보온병, 글러브, 탄띠, 화장품, 도자기, 밥상, 액자 등 종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옛 상품도 곳곳에 있었다.

굳이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역사박물관’으로서 구경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한 물건들이 동묘시장을 지탱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가치 때문일까. 구경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출사’ 나온 이들도 여럿 보였다. 또 요즘엔 과거와 달리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 빈티지를 찾는 이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패션과나 연극과 학생들에게 이곳은 새로운 쇼핑지다. 패션과 학생들에게 동묘시장은 일종의 배움터다. 과거 스타일을 곱씹으며 패션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연극과 학생 및 연극배우에게는 경제적인 소품백화점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연극 소품 등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젊은이들까지 동묘시장을 찾으면서 20∼30대의 또 다른 패션 메카로 떠올랐다. 여기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수 빅뱅의 지드래곤과 개그맨 정형돈이 동묘시장에서 쇼핑한 옷들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은 뒤 젊은 층들이 몰려들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동묘 동쪽 돌담길 골목은 유난히 인기다. 여기에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보태지면서 노인들의 홍대가 신구세대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  또 요즘엔 외국인들의 방문도 잦다.한국의 오래되고 진귀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코스로 부상했다.

아줌마들과 함께 옷을 파헤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흔히 보인다. 외국인 상인들의 방문도 줄을 잇는다. 동묘시장 한 상인에 따르면 동남아, 아프리카 중개상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옷과 가방 등을 찾는다.

추억 담아가는 장소

동묘시장도 쇼핑 방법이 있다.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시시각각 물건이 바뀌고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기 때문에 개시 시간을 알고 찾는 게 중요하다. 또 황금 할인 시간대도 따로 있다. 오전보다는 오후에 찾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 인근에 있는 동묘(동관왕묘:보물 제142호)를 산책할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이처럼 동묘시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이 급증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상권이 자연스레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노점’이라는 태생적 약점은 상인들에게 불안한 요인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노점상 대부분이 생계형 상인이기 때문에 단속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질서가 잘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영업을 허용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묘 벼룩시장 VS 서초 벼룩시장

서초구의 서초토요문화 벼룩시장은 지하철 2·4호선 사당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만날 수 있다. 사당역에서 이수역까지 800m 구간, 방배2동 복개도로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판매자만 1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옛날돈·골동품·필름카메라·LP판 등 희귀한 물건도 많다. 14년째 이어져 오는 서초토요벼룩시장은 단순한 벼룩시장이 아니다. 각종 문화 공연과 체험행사, 전시, 어린이장터 등이 열려 온가족 나들이로도 손색이 없는 하나의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서초토요벼룩시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매회 판매자로 신청받아 판매금액의 50%를 기부토록 하고 있다. 이는 교육 차원이다. 이곳엔 기부왕도 있다. 30년간 동대문에서 원단 소매업을 했다는 전봉순(81) 할머니는 15년간 매회 5만1000원씩 기부해 왔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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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