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찾아서 ③전남 나주-염색장 정관채

‘손끝 예술’쪽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115호 염색장 정관채(56)씨는 쪽 염색의 대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전남 나주시 다시면 샛골에서는 예부터 목화를 많이 재배했다. 영산강 변에는 쪽이 많았다. 강이 범람하는 경우가 많아 벼 대체 작물로 쪽을 심었다. 영산강 하류는 바다와 가까워 쪽 염료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매염제 소석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소석회는 굴이나 꼬막 껍데기를 1000℃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 만든다. 쪽 염색이 발달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샛골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전통적 방법으로 쪽 염료를 생산했다.

사라진 우리 ‘쪽빛’ 되찾아
마을 사람들의 삶 고스란히

쪽 염색은 한국전쟁 이후 사라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통 쪽물 재현을 시작으로 1980년 이후 다시 쪽 염색이 점차 보급되고 있다. 그 중심에 ‘염색장’ 정관채씨가 있다.
쪽 염료를 만들고 쪽 염색을 하는 일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3~4월에 쪽 씨앗을 파종하고, 7~8월에 수확한다. 쪽을 항아리에 넣고 잠기도록 물을 붓는다. 2~3일 지나면 물이 옥색을 띤다. 쪽을 건지고 소석회를 넣어 산화 처리를 하면 남색 거품이 생기면서 옥색 물이 청색으로 변한다. 색소는 불용성 인디고가 되며 가라앉는다. 인디고 색소가 침전되고 남은 맑은 물을 따라낸다. 이때 남은 것을 진흙 같은 쪽이라고 해서 니람(泥藍)이라고 부른다. 니람은 항아리에 담아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전통을 잇는
‘장인의 숨결’'

인디고는 불용성이므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환원형으로 만들어 수용성이 되도록 해야 한다. 쪽을 환원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해야 한다. 니람과 알칼리성인 잿물을 준비한다. 잿물은 콩대, 쪽 등을 태운 재를 시루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만든다. 용기에 잿물과 니람을 넣고 섞는다. 이때 잿물은 니람의 3~5배가 되도록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액의 표면에 청색 거품 같은 것이 생기는데, 염색이 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쪽물이 준비됐으니 염색할 천을 준비한다. 천은 염색하기 전에 세탁하거나 끓는 물에 담가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쪽물에 넣고 3~5분 뒤 꺼낸다. 공기 중에서 황록색이 청색으로 변한다. 수용성인 쪽물이 산소와 접촉하면서 다시 불용성이 되기 때문이다. 발색은 공기 중에 노출하는 방법과 쪽물에서 꺼낸 천을 곧바로 물에 넣는 방법이 있다. 진하게 염색하고자 할 때는 반복해서 염색한다.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염색된 천을 물에 씻는다. 완전히 염색되지 않고 천에 붙어 있는 쪽 색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잿물을 빼지 않으면 쉽게 탈색되므로 주의한다. 잿물을 빼려면 염색한 천을 30분 정도 삶았다가 헹궈서 햇볕에 말리고,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둔다. 이후 햇볕에 밀리고 다시 하루 정도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린다. 이렇게 2~5회 반복하면 잿물이 빠진다. 빙초산 등을 희석한 물에 쪽 염색한 천을 담갔다가 세탁하여 잿물을 빼는 방법도 있다. 잿물 빼기가 끝나면 중성세제로 세탁한 뒤 사용한다.


염색장 정관채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샛골을 비롯한 나주 일대에서 이런 일을 해왔다. 태어난 곳의 자연환경과 거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를 쪽 염색의 길로 자연스럽게 인도한 셈이다. 젊은 시절 미술을 전공하면서 쪽 염색에 인생을 걸었다. 한국전쟁 이후 끊어진 쪽 염색의 맥을 이은 것이다. 손톱에 쪽물 빠질 날 없던 그는 2001년 9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는 다시평야 한쪽에 있는 전수관은 쪽 염색을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사람들과 쪽 염색 체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다.

방방곡곡
나주 돌아보기

나주 일대에 있는 여행지를 돌아본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나주목이던 나주는 ‘전라도의 천년 수도’라는 별칭이 있다. 나주읍성의 동·서·남문을 복원했고, 북문은 현재 터를 발굴 중이다. 4km 정도 되는 나주읍성을 한 바퀴 돌며 사대문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일제강점기에 나주읍성의 문루와 성벽이 대부분 훼철되었다. 나주읍성을 돌아보고 100년 전통의 곰탕을 맛본다.

영산포등대를 구경한 다음 황포돛배를 타고 영산강 유람에 오른다. 영산강은 전남 담양에서 발원하여 나주를 지나 목포까지 122km를 흐른다. 영산강이 품은 영산포는 조선시대 전세(田稅)를 보관하던 영산창이 있던 곳이다. 조선 중종 때 전남 영광 법성창이 생기기까지 영산창은 남부지방의 전세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올려 보내는 역할을 했고, 뱃길이 시작되는 영산포구는 사람들과 주변 지역 산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영산교 부근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영산포 홍어거리가 있다. 황포돛배를 타고 나서 영산포 홍어 맛을 본다. 홍어삼합이 가장 유명하지만, 한 끼 식사로는 보리애국을 따라올 게 없다.

나주 시내와 영산포에서 좀 멀지만, 불회사와 명하쪽빛마을도 돌아볼 만하다. 불회사는 덕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찰인데, 백제 침류왕 때 인도 스님 마라난타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불회사 대웅전은 보물 1310호, 대웅전 안에 있는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1545호다. 보물도 보물이지만 불회사는 절이 자리 잡은 숲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대웅전 뒤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을 돌아보자.

명하쪽빛마을은 쪽 염색으로 유명한데, 염색과 함께 생활사박물관을 만들어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생활사박물관은 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평범한 집이다. 예부터 쓰던 물건과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나주읍성→완사천→영산포 황포돛배→백호문학관→한국천연염색박물관→나주영상테마파크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 나주읍성→완사천→영산포 황포돛배→백호문학관→한국천연염색박물관→나주영상테마파크
· 둘째 날 : 명하쪽빛마을→삼봉 정도전 선생 유배지→죽산보→불회사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나주문화관광 http://tour.naju.go.kr
· 중요무형문화재 115호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 h ttp://cafe.daum.net/jungindigo
· 불회사 www.bulhoesa.org
· 나주영상테마파크 www.najuthemepark.com
· 나주시천연염색문화관(한국천연염색박물관) www.naturaldyeing.or.kr


문의 전화
· 나주시청 문화관광과 061)339-8592
· 중요무형문화재 115호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   061)332-5359
· 나주영상테마파크  061)335-7008
· 황포돛배 선착장  061)332-1755
· 나주시천연염색문화관(한국천연염색박물관)  061)335-0091
· 불회사  061)337-3440
· 명하쪽빛마을  061)336-5557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나주 ;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5회(07:10~18:35)운행, 4시간 소요.
· 나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500번 버스(나주·회진 방향)를 타고 정가마을 정류장에서 내리면 중요무형문화재 115호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이 있다.
·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광주(05:30~다음 날 01:00 수시 운행, 3시간 30분 소요)까지 이동한 뒤 나주로 가는 방법도 있다.
*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나주시외버스터미널 061)333-3226~8
기차>·서울-나주 : 용산역에서 KTX 하루 4회(07:23~18:20) 운행, 3시간 소요.
* 문의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자가운전 정보
무안광주고속도로 나주 IC→노안삼도로에서 나주 방향→영산로→다시면→중요무형문화재 115호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


숙박 정보
· 나주목사내아 금학헌 : 나주시 금성관길, 061)332-6565, www.najumoksanaea.com
· 나주스퀘어모텔 : 나주시 선창길, 061)333-0927
· 대주모텔 : 나주시 삼영1길, 061)333-1180

 
식당 정보
· 홍어1번지 : 홍어정식·보리애국, 나주시 영산3길, 061)332-7444, www.nskates.com
· 나주곰탕 하얀집 : 곰탕, 나주시 금성관길, 061)333-4292, http://cityfood.co.kr/h9/najugomtang4
· 노안곰탕 : 곰탕, 나주시 금성관길, 061)333-2053


주변 볼거리
백호문학관, 삼봉 정도전 선생 유배지, 죽산보, 나주영상테마파크, 한국천연염색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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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