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한국 자동차산업 향방<긴급점검>

전운 감도는 미래 자동차시장 “적극적 투자만이 살 길이다”

지난해 미국 발 금융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국내 자동차산업이 최근 소폭 상승한 모습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의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나 자동차업계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하다. 지속적인 경기 회복을 위해 해결되어야 할 위험요소들이 산재한 가운데 내년 미래시장 선점을 위한 세계 강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탓이다.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는 미래 자동차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내 자동차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금융 위기 이후 국내 자동차산업 불안정한 성장
정부지원 극약처방 따른 일시적 효과 ‘위기 여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지난해 유래 없는 판매율 감소를 기록했다. 2008년 9월 리만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세계 경제위기의 후폭풍이었다. 당시 세계 자동차시장 월별 판매추이를 살펴보면 2008년 9월(515만대) 이후 10월 461만대, 11월 425만대, 12월 454만대, 2009년 1월 413만대, 2009년 2월 413만대 판매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최고 23.5%가 하락한 수치다.

세계 자동차산업 회복세
정부 세제지원 ‘반짝’ 효과

연별 판매량을 살펴보면 세계 자동차산업의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난다. Global lnsight가 지난 10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올 한 해 세계 자동차판매량은 전년대비 7.3% 감소한 6133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04년(6145만대) 수준으로 5년째 소폭 상승세를 이어오던 세계 자동차산업이 다시 후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나마 세계 경제위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올 3월 이후 판매 감소폭은 점차 축소됐지만 이 같은 판매 회복세도 일부 국가에 한정된 모습이다. 정부의 신차구입지원 정책의 효과를 본 미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도 정부가 앞장서 1.6ℓ이하 차종 소비세 인하(10%→5%), 농촌지역 상용차 구입 등의 지원을 펼친 결과 2008년 4분기 이후 72.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자동차용 할부금융 지원과 소비세 인하(14%→8%) 혜택을 받은 인도도 같은 기간 18.3% 성장했다.

국내 자동차산업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판매가 호전되는 효과를 얻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4월 내수 부양을 위해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노후차량 세제지원 제도를 실시했다.
이는 2000년 1월1일 이전에 등록된 차량을 새 차로 바꿀 경우 개별소비세 및 취득등록세를 250만원 한도 안에서 70%씩 깎아주는 것으로 국내 자동차 판매량이 호전되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같은 회복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당장 올해로 대부분 국가의 지원정책 시행이 종료된다. 이후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의 경기회복 조짐은 각 국가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 시행에 따른 일시적 효과일 뿐”이라며 “세계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소비 회복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의 부채 조정, 경기 악화 등에 따른 소득 감소로 소비는 여전히 침체 상태다. 소득 증가를 통해 소비 확대의 근원이 되는 고용 사정도 여전히 부진한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자동차산업의 지속적인 경기 회복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국제 유가 상승이다. 지난해 말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는 올 3월 이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이 같은 상승세는 내년 이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LA(미 에너지정보청)는 내년 국제 유가가 WTI 기준으로 배럴당 72.4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석유의 수급 불균형이 원인이다. 최근 경기회복과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성장세 확대로 석유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OPEC은 적극적인 감산 정책으로 시장 공급량을 줄이고 있다. 여기에 비 OPEC의 생산 부진도 유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장기화되는 달러화 약세도 자동차산업의 수출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달러는 국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적 위상 하락과 함께 약세를 띠고 있다.

글로벌 강자 저가 친환경·신흥시장 선점 박차
적극적 투자확대로 미래경쟁력 강화 앞장서야


미국 경제의 세계 시장 지배력 약화와 미국 자본시장의 투자 매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도 달러 약세의 원인이다. 실제 최근엔 아랍산유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등이 원유 거래 시 달러 대신 별도의 ‘원유바스켓’ 통화를 만들자는 내용의 비밀 회담을 가졌다는 보도가 전해질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 달러의 위상이 크게 꺾여있다.

세계 자동차산업이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점도 불안 요소다. Global lnsight의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에는 SUV, 대형차 판매호조로 인한 선진시장의 자산효과 증가와 신흥시장의 높은 성장 등이 자동차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주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선진시장의 성장 한계와 신흥시장의 성장세 둔화, 금융위기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경제성장률은 자동차산업을 저성장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저성장 접어든 세계 경제
잠재적 위험 요소 곳곳에 

실제 Global lnsight는 2010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6492만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2005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업계는 자동차산업이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2012년쯤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이런 더딘 성장 속에서 산업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이미 발 빠른 대응으로 시장 변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008년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사상 최초로 영업 적자를 기록한 도요타는 과잉 생산능력 축소 및 생산 라인 재배치로 대응에 나섰다. 도요타는 2008년 203만여 대를 생산해내는 북미지역의 생산능력을 오는 2010년까지 18.4% 감소시킨다는 방침이다.
엔화 강세 및 북미 가동률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생산 물량을 북미 생산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는 2010년부터 미시시피 공장에서 생산된다.

업체 간 제휴를 통해 생산설비, 플랫폼, 브랜드, 판매망 등의 상호 활용을 통해 개발비와 투자비를 절감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피아트는 크라이슬러 브랜드와 생산설비를 활용해 미국 소형차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푸조-시트로엥-미쓰비시 3사는 2011년 공동투자로 러시아 시장 전용 모델을 생산해 해외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과 스즈끼도 인도 소형차 시장 공략을 위해 업무 제휴를 추진 중이다.
세계 주요 기업들은 신흥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에도 적극적이다. 선진시장의 비중이 축소된 데다 중국 시장이 이미 큰 성장세를 이룬 만큼 점유율이 낮은 새로운 시장 선점으로 판매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인 것이다. 대상으로는 인도와 브라질, 러시아 등이 주목받고 있다.

실제 도요타는 브라질 시장에 대한 판매 포트폴리오를 2007년 9%에서 2012년 14%로 상향 조정했다. 인도 시장은 7%에서 10%로 늘렸다. 혼다는 브라질 시장 점유율을 14%에서 15%로, 인도 시장을 10%에서 15%로 늘렸다. 폭스바겐은 브라질 시장을 34%에서 35%로, 인도 시장을 1%에서 2%로, 러시아 시장을 5%에서 9%로 늘렸다.
이들 업체는 연비 개선 및 저가 차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도요타는 현재 다이하츠와 공동개발로 저가 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50만엔대의 가격으로 예상되는 이 모델은 2010년 인도에서 생산, 인도 및 신흥국에 판매된다는 방침이다.
닛산도 현지업체인 바자즈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초저가차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2011년 인도에서 생산될 계획인 이 모델의 가격은 30만엔대로 알려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의 개발 및 생산 라인업도 확대되고 있다. GM은 벤츠, BMW와 2모드 하이브리드차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도요타는 2020년까지 전 차종의 하이브리드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0년 중반까지 중국, 미국, 태국에 이어 유럽으로 현지 생산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르노닛산은 2020년 세계 수요의 10%로 예상되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10년 미국과 일본에서 전기차 출시와 동시에 2012년 대량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전기차 분야의 선두업체를 지향하는 GM도 2010년 전기차 볼트를 출시하고 한국과 중국을 주요 개발 거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글로벌 강자 전략적 제휴
친환경차 및 신흥시장 선점

반면 이 같은 주요 자동차 기업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비해 국내 기업들의 시장 대응 마련은 상대적으로 열세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저성장에 접어든 세계 자동차산업 시장에서 업체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국내 기업은 친환경 자동차 개발, 신흥시장 진출, 해외기업과의 업무 제휴 등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지금이라도 해외기업에 비해 열세한 R&D 투자 규모를 늘려 미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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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