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대중 vs 이명박 최후전쟁 전모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간의 최후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다. 검찰 사정칼날이 야당을 향해 매섭게 몰아치고 있어서다. 민주당에서는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민주당과 전·현직 대통령을 향한 표적 수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이미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만큼 민주당도 ‘큰 건’을 준비 중이라는 의견이 많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대통령을 공격할 회심의 카드가 있다는 말이 은밀히 나돈다. 검찰이 쏘아올린 핵폭탄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간의 최후 전쟁의 ‘신호탄’인 셈이다.



잠잠했던 검찰 사정 칼날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는 불편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 갖가지 악재가 연일 겹쳤던 것. 쇠고기 정국, 경제위기론에 이어 사정칼날, 이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까지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최근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이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게다가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나오고 흘러나오고 있다.

조 부사장은 코스닥 기업인 엔디코프의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이다. 이밖에 지난 2월 국가청렴위원회가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조현범 주가조작 의혹
“수사 진행 지지부진”


문제는 이들에 대한 수사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 부사장은 차익을 챙기고 지분을 처분해버리는 ‘전문 투자꾼’과는 달리 일부 투자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법적 처벌이 애매하다. 게다가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주식 거래에 이용했더라도 증거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또한 조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검찰 관계자는 “철저하게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밝혀낼 것”이라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검찰 주변에서는 조 부사장과 조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검찰이 뚜렷한 물증을 잡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검찰이 이 대통령의 친인척 수사의 결과에 시선이 쏠려 있다. 이 대통령의 친인척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난무한 가운데 아무런 이득을 챙기지 못한다면 검찰이 야당을 향한 ‘표적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가운데 최대 관심거리는 검찰의 전 정권 비리 의혹 24개 확보설. 그 동안 정치권에 나돌았던 ‘표적 수사’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한 언론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 쪽에서 과거 정권 인사들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 24건을 선정해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고 올해 안에 모두 공개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비리에 연루된 여권인사들도 사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구 정권과 밀착된 기업·법인을 중심으로 고강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 러시아 유전게이트의 주역인 전대월씨에 대한 재수사가 참여정부 핵심실세들을 겨냥하고 있다. 게다가 비자금 조성, 횡령 및 사업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정치권으로 자금이 유입됐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하고 있다.

이 뿐 아니다. 홍경태 전 청와대 총무행정관이 건설공사 수주 외압의혹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홍 전 행정관이 지난 2005년 군산~장항 호안공사, 2006년 영덕~오산 도로 공사를 SK건설과 대우건설이 각각 수주할 수 있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도 ‘표적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프라임그룹이 검찰 수사의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DJ 정권 시절 대표적인 수혜그룹으로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후원자로 알려진 상태다. 따라서 검찰은 프라임그룹의 급속한 성장 배경에 정치권의 로비가 개입되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사실상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을 향한 ‘표적 수사’가 될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그리고 민주당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판단에서다.

先 이명박 친인척
後 야당 비리 수사


민주당 한 의원은 “검찰에서 전·현직 비리를 캐내고 있지만, 막상 실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항간에는 S·L 의원이 각종 비리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검찰은 찰떡궁합”이라며 “친인척 비리 수사를 감행하는 것은 야권에 대한 사정 칼날을 매섭게 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 공안조성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며 “야당과의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선 이명박 친인척 비리, 후 야당 비리’ 수사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 있을 민주당이 아니다. 싸움을 걸어온다면 싸움닭으로 변모하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사정 칼날이 전·현직 정권으로 ‘정조준’된 만큼 민주당도 이명박 정부를 정조준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를 입증하듯 민주당은 “싸움을 걸어 온 이상 일단 싸워야 하며, 앞만 보고 달리겠다”며 이 대통령을 압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 의혹 목록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민주당 일부 관계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 은밀히 나온다.

지난 대선 당시 BBK 사건으로 상암동 DMC 특혜 의혹이 묻히면서 이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상암동 DMC 특혜 의혹을 파헤칠 경우 이 대통령 측근 뿐아니라 이 대통령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또한 민주당 내에서 상암동 DMC 특혜 의혹과 관련된 자료와 녹취록 등 갖가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파일에 포함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대통령 측근 A의원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또한 인천 공항 민영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친인척 인사들이 상당한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어, 상암동 DMC 특혜 의혹과 인천 공항 민영화 둘러싼 의혹들을 모조리 파헤칠 예정이라는 게 민주당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결국 민주당에서는 국정감사 시점을 계기로 이 자료들을 종합해 이 대통령을 겨냥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야당 반격 시도
“자료 수집 중”


이에 대해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상암동 DMC 특혜 의혹에 이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자칫 섣불리 칼날을 세웠다가는 오히려 민주당이 ‘역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정치권은 서로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검찰 사정을 빌미 삼아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을 압박해 올 경우 민주당은 ‘상암동 DMC 특혜 의혹’, ‘인천공항 민영화를 둘러싼 의혹’들을 파헤쳐 맞불을 놓을 태세다.

검찰이 쏘아올린 핵폭탄은 자칫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민주당과 이 대통령과의 싸움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사정을 계기로 정치권에는 극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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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