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정국 불꽃 튀는 공방전 급물살


정치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9월 정기국회가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간 극한 대립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탓이다. 여권은 불교계 무마 대책 수립, 대운하 사업 재개에 대한 강력한 사법조치와 그에 따른 공권력에 대한 배려 차원의 제도 도입 방침을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 재개 논란도 9월 정국 정치권의 빅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정부 여당의 강공에 반발하면서 전면 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각종 현안을 놓고 여야간 불꽃 튀는 정치 전쟁이 불붙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불교계의 반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청와대에 촉구했다. 박희태 대표 주재로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불교계 반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당 차원에서 청와대에 대한 의견 개진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행보는 불교계가 연일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국론 분열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불교계가 요구하는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의 인사권 문제이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입장이 개진되면서 어 청장의 사퇴주장은 없었지만 우회적으로 자진사퇴론을 제기하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불교계 반발 무마 총력전

박희태 대표는 좋은 해결책이 나오리라 기대를 하고 또 노력하고 있으며 청와대에서도 수용 가능하고 불교계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적절한 조치의 필요성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불교계 불만 해소 노력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종교 대책특위를 만들어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키로 했으며 공직자의 종교 편향을 방지하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반도 대운하 띄우기에 나섰다. 정부는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겠다던 입장에서 국민이 원하면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꿨다.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은 ‘오해’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여론이 호전되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운하는 이제 정치권 전체의 논란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연일 대운하 사업 추진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정 장관은 ‘한국시장경제포럼’ 초청강연에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에 맞는 친수공간이 요구된다. (대운하를) 친수공간 차원에서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상임위 국토해양위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대운하는 요건이 조성되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운하는 폐지된 것이냐, 아니면 국민적 반대가 있어서 중단된 것이냐’는 의원의 질문에 “취소된 것이 아니라 중단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중단되었던 경인운하 사업도 재개된다. 경인운하사업은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서 인천 서구 시천동을 거쳐 서해로 접어드는 길이 18㎞, 폭 80m의 대수로 공사를 말한다.

수도권 물류난 해소 등을 위해 지난 1995년부터 추진되며 실시계획 승인전까지 갔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2003년 중단된 채 현재 수자원공사의 굴포천 방수로 사업 일환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국토해양부의 경인운하 재추진 방침에 대해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비쳤다. 김 지사는 발표문을 통해 김포시, 부천시, 고양시를 비롯한 경기도민과 함께 적극 환영하며 찬성한다고 밝혔다.

미국에 유학중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파나마에 가보니 운하가 관광산업과 연결돼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입을 올리는 등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다”며 운하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7월 쿠바 등 중남미 국가들을 방문했는데 쿠바 방문길에 파나마에도 들려 파나마 운하를 돌아봤다.

이 전 최고는 “파나마에 가보니 1백년 전에 만든 70m짜리 운하가 교통수요량을 다 충족하지 못하자 추가로 1백20m 운하를 건설하고 있었다”면서 “파나마의 경우 운하 관문 운영에 관련된 인원은 9천명뿐이었지만 관광산업과 연결돼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입을 올리는 등 파나마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친이계를 중심으로 대운하 사업 대국민 홍보 활동도 본격화될 조짐이다. 친이계 초선 의원 10여 명은 최근 모임을 갖고 대운하에 대한 홍보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대운하 공약의 복원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의 한 핵심인사는 “대운하에 대한 지금의 여론은 오해에서 비롯된 게 많다. ‘한다, 안한다’를 떠나 다시 정확히 알리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운하 공론화에 가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재계를 중심으로 대운하 지지세력이 결집하고 있다. 지난 4월 설립된 한반도대운하재단은 인터넷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본격적인 대운하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친환경 물길 잇기 전국연대 등의 단체들도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운하의 친환경성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재추진되는 경인운하의 성공사례를 앞세워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포했다. 정 장관의 발표가 있자 코스닥시장의 삼목정공과 홈센타, 특수건설, 이화공영, 동신건설 등도 가격제한폭까지 일제히 급등하며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대운하 관련주의 급상승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야당은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촛불민심을 왜곡하더니, 이제는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의 뜻을 오해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대운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확실한 포기 선언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러다가 ‘대운하공사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특단의 대책’이라는 대통령 성명이 또 다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오락가락하는 대운하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확실한 포기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대운하 사업 일제히 공세 나서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경제정책의 큰 물줄기를 잡아나가야 할 대통령이 건설회사 사장 시절의 토목공사 추억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창조한국당 김지혜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 친이계 초선 의원들이 이명박 정책 복원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대운하 공약 마련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의원도 포함되는 등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복원도 추진할 목적으로 구성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국토해양부 장관의 대운하 재개 언급은 국민 의사와는 상관없이 독단적 국정운영을 계속하겠다는 국민과의 재대결 선포다. 국토해양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 따르면 경인운하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한반도대운하로 이어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주장했으며 진보신당 신장식 대변인은 국민을 기만하는 대운하의 귀환이 눈앞에 닥쳤다며 대운하 재추진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뿐만 아니다. 한나라당은 9월 정기국회를 통해 반시장, 반기업적 규제 철폐에 주력키로 했다. 하나라당박희태 대표는 “감세 법안을 정부와 당이 같이 마련하고 있다. 세법을 바꿔야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으니 세법이 제일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10년 동안 우리 한국 사회는 좌편향정책이 많았다. 진보·좌파 정권에 의해 이뤄진 좌편향정책을 정기국회를 통해 바로잡겠다. 이번 9월 정기국회는 정기 보수대개혁을 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국회, 선진강국의 틀을 만든 국회로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여권 독주 견제  총력 태세 갖췄다

그는 “우리가 정권을 탈환한 뒤 20여 명의 TF(태스크포스)를 꾸려 8개월간 지난 10년 동안의 1천4백70개 법안을 전부 검토했다. 반기업적, 좌편향적 법안을 정비하는 과정을 TF팀을 꾸려서 했기에 이번 정기국회 때 당으로 대거 넘어올 것으로 본다. 몇 개의 법안을 손봐야 할지 모르지만 대통령령이나 부령도 잘못된 것이 있다고 들었다”며 대폭적인 법안 의지를 예고했다.
 

이 같은 여당의 행보는 좌파의 잔재를 없애고 보수대개혁의 튼튼한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심재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수구좌파들은 방송장악을 떠들고 있다”면서 색깔론을 제기하며 야당의 KBS 사태와 관련한 국정조사 요구를 일축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안정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안 마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백72석의 거대 의석을 발판으로 9월 정기 국회의 목표를 ‘좌편향 정책 철폐와 수정으로 설정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 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정기국회 공간에 가진 당 전체의 화력을 죄다 쏟아 부을 채비를 끝냈다. 국정감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내보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민주당은 하반기 정국의 포인트가 될 재보궐 선거가 10월29일로 다가온 것을 감안해 더욱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강공을 준비하고 있다. 소수야당이지만 작심하고 정부 여당을 몰아세울 태세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이 투사가 돼 가고 있다. 청와대의 원 구성 방해, 공안정국 조성, 언론 장악 시도 등에 맞서 정기국회에서 확실한 견제와 대안 제시 능력을 보여 주겠다”고 강한 투쟁의지를 밝혔다.

정세균 대표는 한나라당이 이번 정기국회를 이념 공세의 장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강력한 대여 투쟁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복지 수준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도 선진국의 1/4 수준에 불과하다”며 “정부 여당이 색깔론을 동원해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뤄놓은 개혁정책을 되돌리려 한다면 단호히 맞서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18대 국회 첫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쟁점 상임위마다 투쟁력이 강한 의원들을 배치해 공격수 역할을 맡겼다. 각종 법안 통과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될 법사위에 복당한 거물의원인 박지원 의원과 여성이지만 여성 전사로 통하는 박영선 의원을 배치했다. 두 사람 모두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고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박병석 정책위의장, 김효석 전 원내대표에다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 오제세 의원 등 당내에서 내로라하는 정책통이 대거 배치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간사를 맡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최근 기업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인 양벌 규정을 담은 법안 4백26개를 ‘반시장·반기업’의 실례로 규정하고 폐지를 예고한 것과 관련해 이를 친기업 정책이라며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행보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최근 민주당 경남도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최철국 도당위원장과 도당 당직자, 17개 지역위원회 위원장, 당원 등 참석한 가운데 도당 조직의 새로운 출범을 축하하고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다짐하는 전진대회를 치렀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인 친노진영은 최근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참여정부 출신이 중심축인 이들 친노인사는 정례모임을 만들고 참여정부의 공과를 평가하는 연구나 기념사업을 추진하며 결속을 다지고 있다.

친노 진영은 지난 7·6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안희정 최고위원을 탄생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현재 민주당내에는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송민순, 이용섭, 조영택 의원 등이 18대 국회 현역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노그룹 인사들도 움직이고 있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친노그룹 인사 가운데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승용 전 홍보수석과 송인배 전 사회조정비서관 등은 청정회를 구성했다.

민주당의 건설교통부 장관 출신 이용섭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의원 등이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청정회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 가운데 정치권에 이미 진입했거나 진입을 모색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참여정부 비서관·행정관 출신 인사 30여 명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장관·청와대 수석 출신 인사들은 따로 참정회를 결성했다.

참여정부의 업적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성환 전 정책조정비서관 등이 주축이 된 ‘미래정책연구원’은 9월 공식 발족을 목표로 최근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다. 참여정부의 공과와 정책에 대한 연구작업이나 기념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김병준, 성경륭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정부의 정책개발에 참여했던 인사와 학자들은 참여정부의 정책과 정신을 잇자는 취지로 9월 중 ‘미래정책연구원’을 공식 발족할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발언하고 있다. 감세론과 작은 정부론, 민영화 등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보수도 아니면서 보수의 노래를 따라 불러서는 안 된다”고 보수화 경향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감사원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힘을 써야 한다며 정부 부처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터뜨렸다.

노 전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정책에 대해 “세금을 깎아서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세금 깎는 것은 20%에게 득이고, 80%에게는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에덴밸리 리조트에서 열린 제9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기총회 축사에서 “쇠고기 협상이 아무리 잘못됐다 할지라도 그 일로 정권퇴진을 그냥 말로 해보는 것은 괜찮은데 진심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 질서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치 행보 본격화?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여러 가지를 요구하고 공격하지만 진짜 위험한 존재는 18대 국회다. 여당이 정국을 주도해 가려고 하게 돼 있다. 대통령보다 훨씬 큰 권력을 국회가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국회가 하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노사모 총회에 대해) 한쪽에서는 친노 일당이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지개를 켜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사모는 신도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가 정치는 앞으로 안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가볍지 않아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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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