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랜만에 서울을 찾은 오명환 두만강유한개발공사를 서울 강남터미널 근처에서 만났다.
오명환 회장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충남도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이를 모두 두고 연해주로 갔다. 최초의 의병운동이 일어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1994년 중국 옌볜에서 표고버섯 재배업체인 ‘한중실업유한공사’를 운영하다 1998년부터 하산지구를 드나들며 러시아 지방정부와 수차례 접촉을 통해 사용권을 따냈다.
그간의 고생에 오 회장의 눈가가 젖어갔다. 그는 “사기꾼 소리 들어가며 이룬 일”이라고 말했다. 의병활동이 일어난 곳을 찾는다고 했을 때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국내로 들어와 정치를 하자는 제안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선산을 팔고 사위의 회사를 부도내가며 벌인 일이었다.
“발해가 일어난 땅이고 최초의 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이었다. 중앙아시아로 내쫓기기는 했지만 고려인들이 살던 곳이었다. 우리의 땅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오 회장은 “역사를 찾아야 근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근거’를 찾아 놓으니 러시아 측에서도 인정해 줬다.
“하산지역은 중국과 치열한 국경전쟁이 벌어진 곳으로 군사지역에 속한다. 드나드는 것이 힘들었다. 군부에 수차례 끌려가 곤혹을 치렀다. 하지만 임시정부 터에서 구들장, 기왓장을 발견해 결국 러시아 정부로부터 그곳이 우리의 땅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
결정적인 역할은 그가 발견한 구들장에 있었다. 그는 이를 갖고 러시아 정부에게 “일본은 다다미, 중국은 침대 문화였다. 구들장을 쓰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논조로 설득에 들어갔다. 구들장을 젖혀 아래 있는 그으름까지 보여줬다. 여기까지 8년7개월이 걸렸다.
군대뿐 아니라 마피아도 그를 위협했다. 21번 군부대에 끌려갔고 마피아에 의해 4번이나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동료 중 한 명은 자살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11년의 고생 끝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정원과 같은 러시아아시아개발그룹으로부터 개발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고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받았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평화시가 건설될 곳까지 건설되기로 지난달 승인이 났다.”
오 회장은 “우리 땅을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하며 인터뷰 내내 소리 없는 눈물로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