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음식의 궁합

와인은 어느새 우리나라에서 소주, 맥주처럼 편의점이나 주류샵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른 술들과 마찬가지로 와인을 마실 때도 안주 혹은 식사를 겸하게 되는데, 와인바에서 가장 즐겨 찾는 치즈부터 이태리 혹은 프랑스 레스토랑의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울러 최근에는 한식집에서 삼겹살과 갈비를 먹을 때도 와인을 곁들이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음식과 같이 했을 때 더욱 맛이 좋은 와인은 무엇이며, 어떤 음식과 먹어야 좋을까?

음식의 맛은 우리가 지금까지 식생활을 하면서 잘 알고 있다. 반면 와인의 맛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다소 낯선 것이 현실이다. 음식과 와인의 조합을 위해서 우리는 와인이 어떤 맛을 지니고 있고 와인이 음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간단한 몇 가지만 숙지한다면 와인과 음식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와인과 음식에 대한 조화에 관련해 많이 듣게 되는 내용 중 하나가 육류에는 레드와인을 생선류에는 화이트와인을 매칭하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조건 100% 육류에는 레드와인을, 또 생선엔 화이트와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 우선 이 말이 어느 정도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레드와인은 육류의 지방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탄닌 성분이 풍부하고, 상큼한 화이트와인은 생선의 비린내를 죽이고, 담백함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반면 다소 무리가 있는 말이라는 것은 보통음식에 와인을 매칭할 때 중요한 것이 음식의 메인재료가 아니라 소스에 따라 매칭시키는 게 훨씬 좋은 궁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거운 느낌의 진한 소스에는 레드와인이 어울리고, 가벼운 느낌의 가벼운 소스에는 화이트와인을 매칭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 중 ‘달콤한 와인은 단맛이 나는 디저트와 함께 한다’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맞는 말이긴 하나 100% 맞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단 음식에 음식보다 더 단맛이 나는 와인을 마시면 음식의 단맛이 와인의 단맛에 묻혀 제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신맛과 짠맛이 강한 음식은 와인의 산도를 적게 느끼게 해 와인의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이태리 토마토소스의 피자나 파스타와 이태리 키안티와인을 곁들이는 것은 좋은 예가 된다. 또한 음식의 짠맛은 와인의 떨떠름한 탄닌 성분을 줄여주어 와인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와인별 음식 선택의 세 가지 팁

첫째, 와인의 맛이나 향이 음식의 맛과 향을 덮지 않도록 한다.
와인을 먼저 선택하고 음식을 고르거나 음식을 선택하고 와인을 고르거나 그 상황과 자리에 맞는 조화를 생각하되, 와인의 맛은 음식의 맛보다 진하지 않은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 다시 말해 와인만 마실 때는 와인을 기준으로 안주를 고르지만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을 중심으로 와인을 고르게 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때 와인이 음식의 맛을 덮을 정도로 진하고 강하다면 메인이 되는 음식이 맛없는 음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는 같은 성질의 것은 같은 것으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부드러운 와인은 부드러운 음식과, 향과 맛이 진한 와인은 진한 음식과 같이하면 좋다. 즉, 비슷한 맛의 와인과 음식을 매칭시키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반대되는 맛의 와인과 음식을 조합한다. 소금에 절인 엔쵸비나 짠맛이 있는 블루치즈에 단맛이 넘치는 스위트와인을 조합하면 서로의 특성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어 각자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달콤한 고구마와 매콤 새콤한 김치를 먹을 때 서로가 반대되는 맛이지만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와인의 가본적인 지식이 있으면 식사를 더 즐겁게 해줄 만한 와인을 충분히 고를 수 있다. 또한,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음식과 같이 와인을 마셔보면서 내가 느끼는 최고의 조화를 기억하고, 내 입맛에 맞는 선택을 하면 된다.
·와인의 산도(신맛) = 일반적으로 산도가 높은 와인은 적은 양의 크림이나 치즈 소스요리, 토마토소스의 파스타, 와인과 비슷한 신맛을 지닌 요리와 잘 어울린다.

신맛이 나는 이태리 키안티 와인들이 토마토소스의 파스타나 피자하고 어울려 훌륭한 풍미를 내는 것이 그 예다. 또한, 염도(짠맛)가 높은 음식일수록 산도가 있는 와인으로 조합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짠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각자의 맛을 더욱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신맛은 음식의 맛을 더 좋게 돋우어 주고 맛을 더 길게 느끼게 해준다. 예를 들어, 요리사들이 다 만들어진 요리 위에 레몬을 뿌리는 것등이다.
·와인의 질감 = 음식은 저마다 질감이나 견고함에 차이가 난다. 와인 역시 질감이 있어서 그 미묘한 풍미의 차이에 따라 특정 요리에 적당한 선택이 될 수도 있고, 훌륭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와인의 질감은 탄닌 성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구분이 된다.
탄닌이 많은 스타일의 와인은 입 안을 꽉 채우는 질감과 뚜렷하고 짙은 풍미가 있어 미각을 확 깨워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하지만 음식과의 궁합 문제에서 섬세한 요리의 참 맛을 잃게 하므로 맛이 강하지 않고 소스가 거의 첨가되지 않은 음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탄닌이 많은 와인은 진한 양념이 된 붉은색 육류, 진한 크림소스의 파스타, 매운 양념의 스튜 등과 잘 어울린다.

반면 탄닌이 적은 스타일의 와인에는 와인의 맛과 촉감이 부드러운 음식이 적절하다. 가벼운 스타일의 연한 레드와인의 경우 참치나 상어와 같이 유질이 좋은 생선류(큰 생선일수록 유질이 풍부하다)나 향과 맛이 진하지 않은 치즈류가 어울리며, 연하고 신선한(가벼운) 화이트와인의 경우 간단한 방법으로 조리한 새우, 가제를 비롯해 샌드위치, 샐러드류, 양념이 안 된 닭고기류 등과 잘 어울린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에서는 조화와 밸런스를 찾아야 함을 숙지해야 한다.
음식의 맛이 강하거나 짙을수록 풀바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좀 부드러운 음식에는 미디엄바디 혹은 라이트바디가 좋은 선택이다. 와인을 알게 되면 음식과 조화시키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 맛보게 되는 와인일수록 그 맛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지를 잘 기억하면 좋다.

·화이트 와인 = 와인은 크게 라이트바디와 미디엄바디, 풀바디로 나누어진다. 이들 중 화이트와인의 대표적인 것에는 라이트바디에 샤블리, 무스카데, 쇼비뇽블랑, 오르비에토, 피노 그리지오 등이 있으며, 미디엄바디에는 푸이퓌세, 샹세르, 푸이 퓌메, 쇼비뇽블랑, 가비, 게브르츠트라미너 등이 있다. 또한 풀바디에는 샤르도네, 뫼르소, 샤샤뉴 몽라쉐, 비오니에 등이 있다.

·레드 와인 = 레드와인의 대적인 것에는 라이트바디에 키안티, 부르고뉴, 피노누아, 보졸레 등과, 미디엄바디의 꼬뜨 뒤 론, 보르도, 부르고뉴 그랑크뤼, 멀롯, 까베넷쇼비뇽, 진판델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바르베라 등이 있으며 풀바디에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부르넬로디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조, 보르도 그랑크뤼, 까베넷쇼비뇽, 쉬라·쉬라즈, 에르미타쥬, 멀롯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 가면 꼭 있는 것이 치즈메뉴다. 흔히들 치즈를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치즈에 있는 풍부한 유질과 단백질, 부드러움이 와인의 맛을 잘 살려주기 때문이며, 무수히 많은 와인의 종류에 버금갈 만큼 치즈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어떤 와인에 어떤 치즈가 가장 잘 어울릴까?

·치즈 = 치즈는 우유를 비롯한 포유동물의 젖에 포함된 영양성분이 골고루 들어있는 완벽한 식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우유를 가만히 두면 가벼운 지방성분이 떠올라 크림이 되는데, 이것을 따로 모아 가공한 것이 버터다. 그리고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를 넣어 주거나, 오래 두어 젖산균이 자라 우유가 시큼해지면 응고되기 시작하는데, 이 응고된 것을 커드라고 한다.
또한 이 커드를 따로 분리해 적절한 처리를 한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치즈다. 따라서 치즈에는 다양한 영양성분이 들어있고 그로 인해 고칼로리 식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와인과 음식, 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해 알아봤다. 와인을 마실 때 함께하는 음식의 종류와 음식을 먹을 때 곁들이는 와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듯이 와인의 대중화에 걸맞은 음식의 궁합 역시 중요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주먹구구식으로 “누가 그랬다. 무슨 와인에는 어떤 것이 좋다고 하더라” 등의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와인의 특성에 맞는 음식을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도 와인 선진화로 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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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