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불황에 치졸해진 조폭들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7 09: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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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묻은 돈까지 손대는 하이에나 형님들

[일요시사=사회팀] 건장한 조폭도 불황은 피할 수 없다. 서민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약자만 골라 등쳐먹는 조폭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푼돈에 손 벌리는 그들의 이야기. 치졸함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9일 광주 동부경찰서는 도심 하천 다리 밑에서 윷놀이 도박장을 열고 판돈을 받은 혐의로 신모(45)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도박에 가담한 최모(76)씨 등 9명을 불법도박 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조직폭력배인 신씨 등 일당 4명은 지난 9월15일부터 11월23일까지 매일 오후 광주천변다리 밑에서 윷판을 벌여 판돈 수천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인 윷판까지…
푼돈에 손뻗은 조폭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인 이들은 이미 다른 조직원이 같은 혐의로 수차례 붙잡혔음에도 수법을 따라 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은 조직적으로 역할을 확실히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도박 주최자, 망을 보는 ‘문방’, 도박자금을 빌려 주는 ‘꽁지’ 등으로 호흡을 맞췄다. 주로 노인이나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도박장을 열었고 이번에 붙잡힌 이들 중에는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도 끼어 있었다.

경찰은 지난 10월께 윷 도박장이 개설된다는 첩보를 입수해 인근 건물 옥상에서 동영상 촬영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 뒤 이들을 검거했다.


최근 들어 조폭들이 이러한 푼돈에 개입하는 일이 늘고 있다. 경기침체에 조폭들도 울상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달라붙는다. 불황에는 장사 없다. 조폭도 예외는 아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조폭들의 행태도 달라졌다. 흔히 조폭이라고 하면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요즘 조폭은 생계형 조폭이다. 난투극을 벌이는 폭력 조폭은 옛말. 일단 먹고 사는 게 먼저다.

조폭도 불황은 피할 수 없다. 갈수록 깊어지는 불황에 폭력조직이 불법대부업에 손을 뻗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조직들이 실제 불법대부업에 나선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조직폭력배 검거 실적은 2003년 3309건, 2004년 3203건에서 2007년 3968건, 2008년 5411건으로 꾸준히 증가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 실적이 급증한 것은 불법대부업과 연루된 폭력조직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2개월씩 진행하던 기획수사가 하반기 5개월로 연장됐다”고 덧붙였다. 2008년 9월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하는 시점에 조직폭력배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타깃으로 돈을 빌려주고 살인적인 고금리를 강요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지적이다.

과거 조폭들이 보여 왔던 단순 폭행·협박·상해 등의 범죄유형이 점차 지능화 되면서 불법대부업 등에 손을 대 서민 등 약자의 푼돈을 건드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만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역다툼보다는 생계로, 조폭들의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화려한 조폭?
현실은 생계형


청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주 P파 폭력조직 단체 간부급 조직원인 A(40)씨는 도내 군 단위 지역에서 정통으로 주먹계를 장악하고 청주 폭력조직에 입성했다. 그는 조직 내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영향력을 넓혔다. 청주는 물론이고 서울지역까지 영역을 넓혔다. 심지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거물급 조폭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인맥을 과시했다.

그러나 30대 중반 주먹을 크게 휘둘러 결국 수년간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됐다. 교도소 생활을 마친 A씨는 후배 조직원들의 기세에 눌려 폭력조직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는 시골지역에서 작은 음식점을 개업해 먹고 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가 폭력조직에 몸 담아오면서 얻은 것이라곤 경찰의 ‘조폭 관리대상’이 된 것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겪는 사람은 A씨 뿐만이 아니다.

돈줄 마른 조직들 노인·서민 주머니 털어 
‘돈되는 일이라면…’점조직 지능범죄 기승

청주 P파 폭력조직원인 B(39)씨 역시 조폭 생활을 접고 현재 PC방과 당구장 등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생계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20대 시절 여러 차례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마찬가지로 폭력 혐의였다.

교도소에서 나온 B씨는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다 폭력조직에 다시 발을 들였지만 후배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각종 수모를 당한 후에야 폭력조직에서 탈퇴했다. 그 후 동네 PC방 등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B씨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는 게 주변인들의 말이다.

이처럼 충북지역에서 현직 조직폭력배나 조직폭력 단체에서 탈퇴한 조직원들은 현재 화려한 조폭에서 생계형 조폭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반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경찰에 따르면 조직을 탈퇴한 조폭들은 대부분 무직이다. 일을 하고 있는 조폭들도 있지만 대부분 공사장을 전전하거나 지인들의 사업장에 겨우 눌러앉아 있는 형편이다. 부동산과 보험회사에 취직해 가족을 꾸려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조폭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 주먹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

일부 조폭들은 그동안 꾸준히 모아놨던 자금으로 자동차 정비업체 등 작은 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가족으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부유한 조폭들은 비교적 큰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조직을 탈퇴한 대부분 조폭들은 ‘세력다툼’에 개입하지 않고 먹고 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도내 조폭들의 동향을 살펴본 결과”라고 말했다.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던 고교생들의 ‘조폭 양성’도 예전 같지 않다고 전해진다.

각목 대신 컴퓨터
적과의 동침도

이처럼 조폭 세계는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업 등을 통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생계에 허덕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보험사기, 심부름업체, 불법 게임장 등으로 서민을 쥐어짜고 있다.


특히 이들의 범죄가 지능형 혹은 서민 밀착형 범죄로 변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다수의 일선 경찰 관계자들은 경제 불황을 원인으로 꼽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유흥업소나 집장촌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수입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호남지역 일파 간부였다는 A씨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조폭이 관리하는 구역의 사업장(유흥업소, 집장촌)만 잘 운영해도 조직의 자금을 그럭저럭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조폭들의 생태계를 흔든 굵직한 요인은 2008년 금융위기다. 과거 IMF때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했지만 건설경기는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저축은행과 건설사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건설경기가 크게 위축됐다. 즉 과거에는 아파트 분양 브로커 및 돈세탁, 혹은 장애요소를 제거해주며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건설경기가 파리를 날리면서 지금은 거대 관급 공사나 몇몇 재개발 지역을 제외하면 돈 되는 일거리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자영업자들로 이루어진 대형상권이 무너진 것도 한몫했다. 줄이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인해 조폭들이 남을 만한 여건이 보장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아직까지 살아있는 상권으로는 서울 동대문, 남대문 등으로서 이곳에 조폭들이 몰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2004년 성매매 특별법, 2006년 사행성 게임장 집중 단속 등 경찰 수사력의 집중도 불법 유흥업소들이 대거 자취를 감추는 데 일조했다.

점조직 형태로
뭉치고 해산


이러한 사회구조적 변화는 조폭들의 행동방식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변화는 나와바리(구역)의 실종이다. 과거에는 조폭들이 정해진 구역을 차지하고 지역의 이권을 빨아들이면서 동시에 지역을 지키기 위해 많은 조직원들을 동원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구역이 무의미해져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폭의 영향력이 주먹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조폭들은 사실상 와해되거나 세가 많이 약해졌다.

부자조폭 vs 거지조폭
주먹계도 양극화 심화

이에 따라 자연스레 조직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돈만 벌 수 있다면 파벌은 무시됐다. 그저 친분이 있는 조폭들끼리 연락해 프로젝트 활동을 벌이다 일이 끝나면 해산하는 식으로 움직이게 됐다. 조폭도 프리랜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전직 조직원은 “파벌이 달라도 학연, 지연, 혈연, 교도소 등으로 서로 형, 아우지간으로 관계를 맺고 지낸다”며 “그러다 일거리가 생기면 서로 연락해 같이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조폭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합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돈맥을 수색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먹고 살 길을 찾은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행동대원은 사원, 간부들은 임원, 두목은 회장으로 명함을 바꾸고 회계사를 두고 회계장부를 최대한 깨끗이 운영하려 한다”며 “주로 부동산, 사채, 유통, 철거 및 경비용역 같은 부문에 진출하고, 혹은 상장기업을 인수하거나 주가조작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들은 조폭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러한 돈줄을 뽑아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자금추적 및 회계조사를 할 수 있는 인력, 그리고 최소 6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장기수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나마 지능화된 범죄를 하는 조폭들은 규모가 있는 편. 경찰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반면 여전히 유흥점주, 자영업자 갈취, 보험사기 등 서민 밀착형 범죄를 통해 명맥을 이어가는 조폭들은 경찰에 꾸준히 적발된다. 사회양극화가 조폭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빈부격차도 극심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민 밀착형 범죄를 저지르는 조폭들 가운데 부유층은 거의 없다. 대부분 무직이며,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어깨와 조직만 있으면 마냥 탄탄대로인 줄로만 알았던 조폭세계. 지금 조폭들은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조폭들도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 조폭 현황

216개파 5000여명 활동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국내 조직폭력배(조폭)가 전국에 216개파 5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 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에도 1개파가 활동하고 있다.

새누리당 강기윤·민주당 김현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전국 관리대상 조직폭력배 현황’을 보면 올해 경찰이 파악·관리하고 있는 국내 조폭은 전국 216개파 5425명이다.

경찰관계자는 “경찰이 동향 등을 파악하는 조폭의 간부급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라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서너 배 이상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는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집중돼 있는 서울·경기에 조폭이 밀집해 있었다. 경기 지역에는 31개파 893명이 운집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서울이 22개파 479명으로 뒤를 이었다. 부산은 22개파 384명, 경남 18개파 411명, 충남 17개파 288명, 전북 16개파 408명, 인천 13개파 312명, 경북은 12개파 349명 등이다. 광주·전남 지역은 각각 8개파씩으로 나타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경기 수도권 밀집
부산 경남 충남 전북 순
광주·전남 갈수록 쇠약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 순이다.

1980년대 전국 3대 조폭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고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하다.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유흥가가 밀집한 곳이 조폭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한 도시에 4~6개의 조폭이 있는 곳도 많다. 그중 전북 전주시와 익산시는 6개파씩 난립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찰에 검거된 조폭은 감소 추세다. 2008년 5411명에서 2009년 4645명, 2010년 3881명, 2011년 3990명, 지난해 3688명이다. 올해는 8월까지 1732명이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조폭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 데다 폭행 등으로 검거돼도 조직원임을 밝히지 않아 조폭 검거 실적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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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