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별기획>④ ‘포스트 조문정국’ 정치 함수

겉은 ‘애도’ 속으론 ‘끙끙’



민주, 원외투쟁 부담에 탄력 받는 등원론
한나라, 10월 재보선, 선거구제 개편 변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야는 ‘포스트 조문정국’을 고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겪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 동반 추락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남은 민주세력의 연합을 통해 ‘반MB전선’을 확대하려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조문정국으로 멈춰졌던 정치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10월 재보선 공천과 9월 정기국회, 이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 논의 등 복잡한 상황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조문정국 후 정세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올스톱된 여의도는 겉으로는 애도를, 속으로는 향후 정국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상주 된 민주당
‘민주대연합’ 구상

DJ의 서거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 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적 무게처럼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또한 국장이 마무리되자마자 10월 재보선 공천과 9월 정기국회 개원 문제 등 굵직한 사안을 처리해야 해 여야의 머리싸움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10월 재보선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앞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정치 풍향계가 될 전망이고 9월 정기국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8·15 메시지를 통해 전한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9월 정기국회를 개원할 수 있을지의 여부부터 따져야 한다.

서거정국으로 다시 상주가 된 민주당은 ‘DJ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그중 하나가 민주세력의 대연합이다. 민주세력이 뭉쳐야 한다는 DJ의 말처럼 민주세력을 모으겠다는 것. 이는 길어지고 있는 장외투쟁으로 인해 하나둘 표출되고 있는 당 내부의 불협화음을 잠재울 수 있는데다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는 친노 진영을 압박할 수 있는 패다.


또한 ‘반MB전선’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DJ가 마지막 연설이 된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현 정부를 독재 정권으로 규정하고 거세게 질타했기 때문이다. 당시 DJ는 “우리는,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면서 “만일 이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을 갖고 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할 것을 바란다”고 경고했다.

미디어법에 대한 반감이 가시지 않았고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예산 문제 등도 ‘반MB전선’을 강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반MB전선’이 강화되면 대여투쟁에 탄력이 붙게 될 뿐더러 곧 있을 10월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민주당은 국회에 꾸려진 DJ의 빈소보다 시민 참여가 더 많은 서울역 광장 빈소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민심의 향방을 살피고 있다.

거목 부재 ‘큰 구멍’
민주당내 역학구조 변화

DJ의 유지를 잇는 것과는 별개로 민주당은 한 해에 연거푸 두 전직 대통령을 잃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DJ의 ‘훈수정치’는 민주당에도 부담이기는 했지만 정치적 위기 때마다 나서서 민주세력을 다독이고 감싸던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까닭이다.

또한 DJ의 서거로 인해 당 내 역학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전국정당화를 위해 ‘중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호남에 대한 영향력이 일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DJ가 서거함으로써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가 손상되는 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9월 정기국회 등원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등원론에 대한 내부의 주장뿐 아니라 평생 정치의 중심 무대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의회주의자 DJ의 뜻을 저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빈소가 국회에 치러진 것도 그러한 DJ의 뜻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인 만큼 당이 자연스럽게 등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DJ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5월 말 서거했을 때 나는 6월 국회를 바로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를 통해 500만 명을 민주당에 줬다. 우리가 그런 추모 열기를 등에 업고 바로 등원해서 강력한 원내투쟁을 했더라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며 등원을 주장했다.


그는 “나는 ‘주국야광(晝國夜光)’을 하자는 입장”이라며 “낮에는 국회에서 투쟁하고, 밤에 필요할 경우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자는 거다. 우리는 9월이 되면 9월의 행동을 할 것이다. 무조건 등원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9월 정기국회가 되면 합당한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의원직 사퇴까지 내걸면서 원외투쟁에 나선 만큼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DJ의 서거가 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등원을 위해서는 의원직 사퇴에 맞먹는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잔뜩 몸을 낮추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DJ까지 서거하며 국민 여론이 다시 한 번 민주당으로 모아질 수 있다는 점과 정부 여당이 그 후폭풍에 가격당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당 지도부가 발 빠르게 조문에 나서는 등 조문정국 동안에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에게는 조문정국보다 ‘포스트 조문정국’이 더 골칫거리다. 당장 10월 재보선이 멀지 않았다. 재보선 지역이 확정된 곳은 강원도 강릉, 경기도 안산, 경남 양산이다. 하지만 수도권 한두 곳이 더 늘어날 수 있는데다 이 경우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 민심이 민주당으로 돌아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숨죽인 한나라당
골치 아픈 일감만 잔뜩

9월 정기국회도 난제를 안고 있다.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이다. 당초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은 이 대통령이 8·15 메시지에서 “여당에 불리해도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한 이래 여권 내에서 활발히 논의됐다.
박희태 대표는 “우리 정치 현안 중에서 특히 선거제도와 지방행정구역 개편 등은 이 시대의 소명”이라며 “당은 이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구상과 방향 제시에 대해 총력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은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고 향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문정국으로 기대했던 효과가 반감됐으며 국장 후 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바쁜 일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거정국이 끝나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고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DJ는 죽기 직전까지 남북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하며 현 정부에 ‘6·15 선언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동교동계 측근들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관된 대북정책이 있어야 북한도 남한 정부를 신뢰하고 대남 유화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이 DJ의 조문을 위해 방문했다는 것도 호재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후 북한과 냉랭한 기운만 쌓아갔다.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성과를 가져오며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소득을 얻었지만 그만큼 “정부는 뭐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특사 조문단’은 방문 그 자체가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 조문단이 DJ의 빈소를 찾은 지난 21을 기점으로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조처가 해제됐다. 조문단을 위한 임시 전화 개설도 지난해 11월 북한이 끊었던 적십자 채널의 전면적 복원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대북정책 어찌하나
여권 고민 깊어만 가

대북 소식통들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잇따른 방북, 북측의 조문단 파견, 남북적십자회담 제안 등의 흐름은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며 “임시 전화 개설로 인해 남북 정부 간 연락 채널 복원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북측과의 대화를 위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 대북 전문가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반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면서도 “능동적인 대북전문가를 등용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절충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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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