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별기획⑥>2009년 하늘로 떠난 ‘거성’들





김수환, 노무현 등 사회적 파장 컸던 거목들 영면
잇따른 ‘정신적 지주’들 타계에 국민들 가슴 ‘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국민들의 슬픔이 커지고 있다. 한국 민주화를 일궈낸 산증인으로 국민들의 가슴속에 ‘정신적 지주’로 남은 김 전 대통령. 그의 죽음에 국민들은 동요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 하나 국민들을 허망하게 하는 것은 김 전 대통령보다 앞서 떠난 거목들이다. 올해 들어 유독 존경받던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어른’의 잇따른 타계는 국민들에게 공허함을 안겼다. 2009년 하늘의 별이 된 ‘거성’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셨는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던 김 전 대통령이기에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며 애써 위로했던 국민들. 그랬기에 병원에서 들려오는 위태로운 소식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또…”
잇따른 별들의 죽음

그러나 지난 18일 오후, 듣고 싶지 않았던 비보는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조문객들의 발걸음은 빈소로, 인터넷 게시판으로 향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김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엔 이념과 지역을 초월한 슬픔이 날로 커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이 국민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허망함을 안긴 것에는 불과 3개월 전 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있다. 한 해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는 사실에 비통함이 더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2009년은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사랑과 존경을 받던 거성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잔인한 해가 되고 있다.

올해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긴 이 중 하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한 평생 화해와 사랑을 전한 김 추기경은 지난 2월16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1969년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가난한 자와 약한 자, 고통 받는 자들의 편에 서 나눔의 삶을 살았다.


김 추기경이 종교와 세대를 뛰어넘는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또 한 가지 이유는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나 바른 길을 가지 못할 때 목소리를 냈다는 것. 특히 김 추기경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정치적 억압에 맞서 민주화 수호를 위해 노력한 인물 중 하나다.

1972년 8월9일에는 7·4 남북공동성명발표와 8·3 긴급조치,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는 정국 혼란 중 박정희 정권의 장기독재체제를 비판하는 ‘현 시국에 부치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성모병원이 세무사찰을 받는 등 정부의 압박은 더해갔지만 김 추기경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성명서와 강론을 통해 자유언론과 인권, 민주회복을 강조하며 민주화 수호의 의지를 표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월26일 명동성당에서 인권회복미사를 열어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피는 등 민주화투쟁의 길목마다 발자취를 남겼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거리낌 없이 행동한 김 추기경의 선종은 국민들의 가슴을 휑하게 만들었다. 고인이 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달려간 국민들의 수는 무려 40만 명.

장례식 5일 동안 전국에서 온 조문행렬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길게 늘어 선 줄로 인해 평균 4시간을 대기해야했지만 누구도 불평 없이 김 추기경의 마지막을 눈물로 보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김 추기경이 남긴 파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먼저 명동성당에는 가톨릭신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명동성당은 예비신자를 위해 6개월 과정으로 교리반을 운영하는데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열린 3월 교리반의 경우 개강 첫날 신청자가 117명에 달했다. 보통 한 달간 신청한 예비신자 수가 100명 안팎이라는 것을 따져보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또 하나 장기 기증에 대한 국민 인식이 한층 개선되고 장기 기증 운동이 확산된 것. 김 추기경이 각막 기증을 한 뒤 영면에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선종 이후 2개월 간 장기 기증 신청자는 1만2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4년 동안의 신청자를 모두 합한 숫자에 육박하는 엄청난 증가 추세였다. 이처럼 김 추기경은 사망 후에도 사랑의 정신을 전파하며 영원한 ‘추기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불과 3개월 전 일어나 큰 파장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여전히 국민들에겐 상처로 남아있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슬픔은 더욱 컸다. 사상초유의 전직 대통령 자살에 충격을 받은 이들로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애도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었다.

또 일부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집회 가능성을 곳곳에서 차단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노짱’의 비극적 죽음
상처 아물기도 전에…

그러는 동안 봉하마을을 찾는 추모객들의 수도 늘어났다. 30도가 넘는 때 이른 무더위 속에서도 발걸음은 이어졌다. 서거 이후 2개월 간 약 200만 명의 추모객이 봉하마을을 다녀갔다는 집계는 국민들의 슬픔을 가늠하게 했다.
추모 열기는 봉하마을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번졌다. 유동객이 많은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분향소가 설치돼 봉하마을을 찾지 못한 이들을 위로했다.

현 정부 특히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것도 노 전 대통령 서거가 가져온 파장 중 하나다.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한 검찰수사 초기부터 전직 대통령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도마에 올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3월 중순부터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아들 건호씨와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초점을 맞춘 수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한 수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 없이 정황과 상식만을 들어 죄인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유명인 자살사건 이후 어김없이 나타난 베르테르 효과도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지난 5월29일에는 한 여대생이 노 대통령을 따라간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자살했다.

여대생 A(23)양은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양은 영결식 방송 사이트에 연결된 컴퓨터를 켜 놓고 목을 매 숨졌다. A양의 휴대폰에는 “나 노통 따라갈래. 잘 지내. 지금까지 미안했어”라는 내용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또 지난 5월27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방법과 시간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자살사건도 발생했다. 이날 B(55·여)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11층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B씨는 남편에게 TV 시청을 권유한 뒤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곧바로 뛰어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투신한 시각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전 봉하마을 사저를 나간 시각과 거의 일치했다. 또 경찰조사결과 B씨는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가족과 측근들이 다 행복해지는 것 아니냐, 나도 저렇게 하면 나머지 가족들도 편할 텐데”라는 말을 주변에 수차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도 피어올랐다. 서거 직전까지 함께했던 경호원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스터리는 대부분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인정하기 힘든 이들의 억측이 주를 이뤘다.

문화·체육인들의 안타까운 타계도 잇따랐다. 특히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던 체육인들의 죽음이 이어져 아쉬움을 더했다.

그중 한 명은 지난 7월17일 세상을 떠난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 그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를 등정하고 내려오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현장에 있던 산악인들과 파키스탄 당국은 헬기를 동원해 그를 구조하기 위해 나섰지만 악천후와 눈사태에 의한 2차 사고 위험으로 난항을 겪다 추락 나흘째인 7월16일 오전 11시쯤(현지시간)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12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끝없는 도전의 삶을 살았던 고씨. “강하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을 남긴 고씨는 도전하는 삶에서 행복을 찾는 의지와 용기를 국민들에게 일깨워줬다.

많은 이들이 참석해 눈물을 흘린 고씨의 영결식에서 최홍건 한국산악회장은 애도사를 통해 “고미영씨는 불나비와 같았다. 등잔불에 온몸을 다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며 고인의 도전정신을 되새기기도 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의 갑작스런 사망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4월 재혼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꾸려나가던 조오련은 심근경색으로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끝나지 않은 도전
국민에 희망 전해

1970년 열린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 한국 수영 역사상 최고의 쾌거를 이룩한 ‘원조 마린보이’ 조오련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도 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1980년 대한해협을 13시간 16분 만에 횡단하고 1982년 도버해협을 9시간35분 만에 횡단하면서 해외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한국인의 투혼을 세계에 알렸다.

2005년에는 또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18시간 만에 횡단했다. 독도영유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독도를 33바퀴 도는 프로젝트에도 도전해 적지 않은 나이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불황과 경기침체에 지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대한해협 횡단 도전을 선언했던 것. 그는 지난 8월15일을 디데이로 잡고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오련은 지난 5월 한 방송사에 출연해 “50년 수영인생을 마무리하고 싶고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며 대한해협 횡단 도전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는 마지막 도전을 방해했고 국민들에게 비통함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시대의 지도자나 희망을 안겨줬던 유명인들을 잃은 상실감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개인의 감정조절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