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예상된 인사’ 김진태 검찰총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05 09: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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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정홍원·김진태…초원복집 3인방 떴다!

[일요시사=사회팀] 공석인 검찰총장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청와대가 내정자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신임 검찰총장으로 지명된 사람은 김진태다. 대표적인 ‘특별수사통’으로 손꼽힌다. 그는 과연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고 검찰의 수장이 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새 검찰총장 후보에 김진태(61) 전 대검차장을 지명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검찰조직을 하루빨리 정상화하고 현재 현안이 되고 있는 사건들을 공정하고 철저히 수사해 마무리하며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을 만들기 위해 오늘 새 총장 내정자에 김 전 대검차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차기 검찰총장
‘특별수사통’

또 이 수석은 “김 내정자는 총장 권한대행을 비롯해 서울고검장 등 검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며 “경험과 경륜이 풍부하고,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검찰 내 신망이 두터운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전직 대통령 아들 사건, 한보비리 사건 등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건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서 엄정하게 처리한 분으로 검찰 총장의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지명에 앞서 황교안 법무장관은 지난달 25일 검찰총장후보추천위가 추천한 4명을 대상으로 국정철학 공유, 조직 내 신망과 장악력, 도덕성 등에 대한 평가를 거쳐 김 전 대검차장을 낙점, 박 대통령에게 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검찰총장 후보에 지명한 것은 ‘혼외자 논란’으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불명예 퇴진한 이래 국가정보원 수사에 따른 검찰내분 등의 혼란을 추스르고 검찰조직을 정상화하는 데 그가 최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한보비리 사건 등을 수사한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 검사다. 특히 4명의 후보 중 가장 연장자이며 사법연수원 기수도 가장 높아 검찰을 장악하면서 ‘검란’ 사태에 이른 조직안정을 꾀할 수 있는 인물로 청와대가 판단했다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다.

특히 김 전 내정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아끼는 인사로 알려지는 등 청와대와의 호흡, 즉 국정철학의 공유라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땄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검찰총장 내정자 발표 다음날 김 내정자와 관련, “검찰 내부의 갈등을 잠재울 적임자로 기대해도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언론에서도 많이 나왔지만 (김 내정자는) 과거 김대중, 노태우 전 대통령 본인이나 측근들의 부정부패를 소신 있게 수사했다”며 “나도 초행검사 시절에 롤모델 검사로 여러분을 생각했는데 그 중 한 분으로 김 내정자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 검찰조직 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지리멸렬한 모습”이라면서 “집안싸움으로 비춰져서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인데 (내부 갈등을 잠재울) 적임자로 기대해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정라인 책임자
PK지역 편중 논란

반면 민주당은 청와대의 결정에 ‘PK(부산·경남) 편중’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김 비서실장과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를 비롯한 정부 내 PK 인맥을 놓고 날선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국민이 걱정하는 사정기관 특정지역 싹쓸이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말씀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침묵한 채 청와대와 여당이 능력 있는 사람을 고르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건 PK를 제외한 다른 지역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저급한 독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김기춘, 정홍원, 김진태 이른바 초원복집 3인방의 삼각편대의 재구축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김진태 카드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제2의 초원복집 사건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은 아닌지 매우 불안하고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은 능력 위주의 인사라며 반박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KBS1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들려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PK 출신이 아닌 한두분들한테도 제의를 했는데 그 분들이 인사청문회도 싫고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고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정황을 소개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들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나 업무 능력을 갖춘 능력 있고 유능한 좋은 분들을 모시려고 하다 보니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같은 검찰이나 동향 출신이라 해서 누구누구 라인이라고 단정하는 민주당의 행태는 억지”라고 지적했다.

총장 권한대행 등 주요 보직 두루 거쳐
경험·경륜 풍부…청렴하고 강직한 성품

그러나 김 비서실장이 법무부 장관시절 평검사였던 김 내정자를 총애했고, 그래서 총장 내정자로 발탁됐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그러다 보니 김 내정자가 검찰총장이 될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 그리고 공정한 수사를 제대로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일종의 ‘코드인사’ 논란으로 김 비서실장이 김 내정자를 지명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면 보은 차원에서 힘 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약하고 야권이나 일반국민들에게는 막강한 칼을 휘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또 청와대가 최근 채 전 검찰총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김 내정자를 지명했기 때문에 ‘권력 편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 내정자에 대한 우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청와대가 검찰을 ‘정치검찰’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보이면서 김 내정자를 지명했으니, 이런 상황에서 검찰총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내정자 선택에 야당 법사위원들이 ‘정치검찰의 부활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총애하는 PK 출신 인사가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되고, TK 출신의 공안통 검사가 특별수사팀장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다”며 “인사청문회에서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유지하고, 공정한 수사를 해낼 수 있는 검찰조직의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여야는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11월13일 열기로 잠정합의했다. 13일 청문회가 열리는 등 예정대로 절차가 진행되면 김 내정자는 이르면 11월 중순 공식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드러나는 의혹들
청문회 통과할까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안에서 “후보자는 28년여 공직생활을 통해 확보한 검찰구성원들의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검찰조직을 안정감 있게 이끄는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해왔다”며 “검찰개혁, 법질서 확립, 부패척결 등 당면과제를 완수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로 이끌어갈 검찰총장의 적임자라고 판단되기에 인사청문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동의안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는 인사청문 동의안이 제출된 때로부터 20일 이내에 인사청문경과보서를 채택해 박 대통령에게 송부해야 한다. 검찰총장 인사청문을 담당하는 법제사법위원회는 인사청문 동의안이 회부된 때로부터 15일 이내에 인사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보고서가 이 기간 내에 채택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 채택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래도 국회가 보고서를 보내지 않으면 곧바로 임명할 수 있다.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국회의 임명 동의까지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김 내정자는 늦어도 11월 중순까지는 검찰총장에 정식 취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는 퇴임 후 법무법인에서 일하면서 3개월 동안 월평균 5428만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 김 내정자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을 보면, 김 내정자는 지난 7월부터 3개월 동안 법무법인 ‘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급여로 총 1억6284만원을 받았다. 7월에는 4782만원, 8월 6405만원, 9월 5097만원을 각각 급여로 받았다. 김 내정자 측은 “퇴직상여금 1억여원과 퇴직연금 4개월치 1900만원에 법무법인 급여가 더해져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 2인자’김기춘 측근…그래서 발탁?
 정치적 중립·공정한 수사 우려 목소리

김 내정자는 대검 차장 시절인 지난 3월 공직자 재산변동 사항에서 아들(27)과 딸(28)의 예금이 각각 7100만원, 73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그러나 김 내정자가 자녀에게 증여했다고 밝힌 재산은 2008년 신고한 4000만원뿐이다.

별다른 소득원이 없는 자녀의 재산이 과도하게 많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나머지 1억원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김 내정자의 아들은 올해 대기업에 취업 했고, 딸은 아직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내정자 측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용돈, 세뱃돈 등으로 모아온 것”이라며 “목돈으로 준 부분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완납했다”고 밝혔다. 목돈으로 넘겨준 4000만원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모두 납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김 내정자의 아들은 ‘사구체신염’으로 제2국민역(면제) 판정을 받아 병역 비리 의혹을 샀다. 김 내정자 측은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면서 “군대에 4차례 지원했지만 불합격했고 현재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 측은 “아들이 2005년 6월 첫 신체검사 때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는 3급 판정을 받았으나 2009년 2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 지원 과정에서 사구체신염이 발견돼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내정자는 농지법 위반과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김 내정자는 본인 명의로 전남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일대 밭 856㎡와 대지 129㎡를 갖고 있다. 부인 명의로는 광양시 황금동과 상황동에 총 1만3000여㎡의 임야를 보유하고 있다. 연고가 없는 전남에 수천만원 상당의 땅을 사들였고, 매입 시기 역시 1988년 전남지역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난 시점과 일치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내정자 측은 “여수 땅은 순천에서 초임 근무를 할 때 노후에 집을 지으면 좋겠다 싶어서 샀으며, 부인 명의 광양 땅은 장인께서 돌아가신 뒤 처남의 주도로 사들였다”고 말했다.

허백련 화백의 ‘산수도’와 박생광 화백의 ‘석류도’ 등 동양화 2점과 관련한 재산 축소 신고 의혹에 대해서도 “진품 여부를 정식으로 감정 받은 적이 없다”며 “2011년 재산등록 당시 진품을 전제로 가격을 계산해 기재했는데 품목당 500만원 미만 예술품은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고 (다음 해부터) 등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내정자는 2011년 이전 재산공개에서는 해당 그림을 보유중이라고 기재한 뒤 가액은 ‘0’원으로 표시했다. 2011년에는 산수도는 400만원, 석류도는 300만원이라고 신고했지만 2012년부터는 아예 기재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은 제4조 제2항 제3호 아목에서 골동품이나 예술품의 경우 품목당 500만원 이상인 경우만 등록대상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 원칙론자
검찰조직 대수술?

경북 사천에서 태어난 김 내정자는 1968년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85년 1월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로 임용된 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인천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2과장, 서울지검 형사부장, 춘천지검 강릉지청장, 인천지검·부산지검·대구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서울북부지검·대구지검 검사장, 대검 형사부장, 대전고검·서울고검 검사장, 대검 차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지난 4월4일 의원면직 형태로 직을 떠났다.

김 내정자는 일선 검찰청과 대검에 재직하면서 두 전직 대통령 부정축재 사건, 이건희·김우중 등 재벌 총수들의 뇌물공여 사건, 현직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사건, 한보그룹 사건, 경기도지사 부부의 뇌물수수 사건,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의 비리사건,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의 금품수수 사건 등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담당했다.
일선 기관장 재직 시에는 지역 폭력조직을 소탕하고 대형 학원재단의 비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93년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로서 관계법령 해석지침과 실명제 위반사범 처리기준을 수립했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로서 91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성안에 참가했다. 대검 형사부장 때는 인터넷 저작권 침해 관련 전과자 양산 방지대책을 수립하고 경미한 사건의 경우 전화조사 방식을 도입했다.

연이은 검찰비리로 총장이 사퇴했던 지난해 12월 대검 차장검사로 부임해 4개월여 동안 총장 직무대행으로 검찰을 지휘했다.

김 내정자는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단기사병으로 1976년 5월3일 입대한 뒤 1977년 6월16일 소집해제됐다. 김 내정자의 장남 김모씨는 입영연기와 재신체검사 끝에 2009년 6월3일 사구체신염으로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진태는?]

▲경남 사천 출생
▲검정고시 합격(진주고 중퇴)
▲서울대 법학 학사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
▲부산지검 검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인천지검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형사제8부장검사
▲청주지검 검사장
▲대검찰청 형사부장
▲대구지검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법인 인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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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