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수상한 기부' 청계재단 실태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0.29 09: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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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하려 선심 쓰듯 기부하고도 '남는 장사'?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청계재단'이 수상하다. 지난 2009년 이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장학재단인 청계재단을 세우고 331억원 가량의 재산을 기부했다. 청계재단이 정식으로 출범한지도 어느새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청계재단의 장학금지급액과 수혜학생은 해마다 줄고 있다. 청계재단과 관련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청계재단의 수상한 운영을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 막바지에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광운대 동영상이 폭로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주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때 대통령후보였던 이 전 대통령은 벼랑 끝 승부수를 던진다. 12월7일. 대선을 10여일 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이 전 대통령은 "우리는 내외가 살아갈 집 한 칸이면 족해 그 외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며 "대통령 당락에 관계없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전 재산 기부공약을 내걸었다.

전 재산 기부
전 재산 세탁?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본인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소식은 해외 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전 재산 기부 선언 이후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상승했고 BBK사건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2위 후보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며 무난히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야당으로부터 집요하게 전 재산 사회환원 공약을 지키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를 차일피일 미뤘다.


청계재단이 설립된 것은 임기 3년차에 접어든 지난 2009년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그해 7월 자신이 소유한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과 대명주빌딩, 양재동 영일빌딩 등 감정평가액 395억원의 자산에서 채무를 제외하고 331억4200만원 상당의 자산을 청계재단에 출연한다.

재단을 설립할 당시에 청계재단은 매년 11억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할 것이며, 그 대부분을 장학사업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청계재단의 장학사업 관련 지출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재단 이사진 상당수 최측근들로 채워 의혹 집중
자기 회사 아니라던 다스 주식 보유 '수상한 고집'

청계재단이 지급하는 장학금 규모는 2010년 6억2000만원에서 2011년 5억8000만원, 2012년 4억6000만원, 올해는 4억5000만원(3/4분기 기지급액 3억4140만원과 4/4분기 지급예정액인 1억1380만원을 포함한 금액)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 수도 2010년 447명, 2011년 408명, 2012년 305명으로 점점 줄어갔다.

재단이 장학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전 대통령이 떠넘긴 빚 때문이다. 2008년 이 전 대통령은 서초구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우리은행으로부터 30억원을 빌려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에게 진 빚을 갚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이 건물을 재단에 출연하면서 빚까지 함께 떠넘겼다. 재단은 이 전 대통령의 빚을 갚기 위해 은행에서 50억원을 대출해 이 전 대통령의 빚을 갚았고, 이에 대한 이자는 매년 증가해 재단은 2010년 2억6372만원, 2011년 2억7950만원, 지난해 2억9169만원을 지급했다. 재단이 430억원에 이르는 자산의 일부를 팔아 빚을 갚는 방법이 있지만, 재단에선 부동산 시세가 좋지 않다며 그동안 매각을 미뤄왔다.

MB 빚이 우선
장학사업 뒷전


게다가 이 전 대통령은 청계재단의 이사진을 자신의 측근들로 채워 넣으면서 재단설립 초기부터 논란을 자초했다. 송정호 청계재단 이사장은 이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후원회장을 지낸 바 있다.

이외에도 박미석 전 청와대 수석과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 김창대 명사랑 후원회장 등 청계재단 이사진 중 상당수가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때문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기존재단 기부가 아닌 별도 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사회환원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거기에 측근들이 재단을 주무르는 구조라면 사실상 사유재산이나 마찬가지라며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 오너가 설립한 공익재단들은 가족들의 상속증여세 절세 창구로 활용되거나 편법적으로 그룹지배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가 많았다. 실제로 시민단체들은 이 전 대통령이 소유했던 건물들을 청계재단의 소유로 돌리면서 소득세와 상속세, 법인세, 주민세 등 상당액의 세금을 감면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청계재단에 대해 "겉모습은 기부인데 온갖 세금을 감면받고 측근들을 통해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청계재단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주식과 현금 등 107억원 상당을 기부 받았는데, 서울시교육청이 민주당 박홍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가운데 실제 장학사업에 쓴 돈은 6억원뿐이고 나머지 101억 상당의 주식은 고스란히 적립금으로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주식은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고 김재정씨의 아내 권영미씨가 기부한 주식회사 다스의 주식 1만4900주다.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이 실제 소유주란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회사다.

박홍근 의원은 이에 대해 "거액의 기부금까지 재단에 적립금으로 묶어놨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재산의 회피처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0년 당시 권씨가 기부한 주식은 다스 전체 지분의 5%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 부분이 다스의 경영권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것이었다.

당시 권씨의 주식 기부에 따라 종전 2대 주주였던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씨가 1대 주주(46.85%)가 됐고 1대 주주이던 권씨는 2대 주주(43.99%)가 됐다. 주식회사는 50%가 넘어야 경영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5% 주식을 가진 청계재단에서 동의를 해야 다스가 가진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계재단이 가지고 있는 다스 주식 5%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청계재단은 다스의 주식을 지난 2011년 1월경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주식을 놓고는 그 당시부터 여러 가지 의혹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 김유정 의원에 따르면 청계재단은 다스 지분을 권씨로부터 기부 받고, 2010년 10월 강남 교육청에 재산변경 신고를 했다.

그러나 교육청 측은 '공익 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을 내세워 승인을 보류했다. 회사지분을 보유하는 것으로는 매년 현금이 필요한 장학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배당금을 확보해야만 청계재단의 재산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청계재단은 이 주식을 보유하기 위해 3달여간이나 공을 들였다. 결국 다스 측이 강남교육청에 "앞으로 주주들에게 1주당 액면가액(1만원)에 대해 연간 5% 정도의 배당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고서야 승인이 떨어졌다. 다스가 직접 나서 교육청에 전례에 없던 배당금 확보 노력까지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다스가 이례적으로 5% 배당을 하더라도 청계재단이 1년에 확보할 수익은 약 745만원에 불과했다.

다스 주식 집착
삼고초려

반면 다스 지분 5%에 해당하는 주식의 평가액은 당시 약 100억원으로 추정됐다. 다스 주식을 팔면 100억원을 확보할 수 있고 은행금리만 적용하더라도 연간 3억원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계재단은 다스 주식 보유를 고집하며 연간 745만원 수익에 만족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김 의원은 이 대통령의 외아들 시형씨가 다스 입사 6개월 만에 차장(경영기획팀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사실 등을 제시하며 "다스는 과거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던 회사다. 여러 정황들이 우연치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대통령이 실소유자라는 증거에)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고 있어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스 주식 의혹과 관련 청계재단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부 받은 주식이 비상장 주식인데다 배당금이 얼마 되지 않다보니 사려는 사람이 없어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청계재단이 소유한 다스 주식이 매물로 나온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늘어야 할 장학금·장학생은 되레 감소
예상대로 '꼼수의 왕' MB 개인금고? 

게다가 다스는 알짜회사로 유명한 기업이다. 아무리 비상장 주식이라고 하더라도 3년간이나 처분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어딘가 어색하다. 이와 관련 <일요시사>는 청계재단 측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해명을 듣고자 했으나 청계재단 측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현재는 어떠한 내용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마음대로 쓰시라"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공익재단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았었다. 대표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웅산 폭탄테러가 발생한 후 경제인들의 후원을 받아 그해 12월1일 자신의 호를 딴 일해재단을 만들었다. 북한에 대한 연구와 테러 희생자 유자녀들의 교육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일해재단은 5공비리의 본산으로 지목되면서 현재는 세종연구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재단 잔혹사
역사는 반복?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기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경력이 논란이 돼 곤혹을 치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박 대통령은 1998년 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연간 1억~2억3520만원을 섭외비 및 보수로 지급받았다. 당시 서울교육청은 "이사장의 연봉이 목적사업에 비하여 공익법 취지나 사회통념상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며 개선하라고 권고까지 한 바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현재 청계재단을 둘러싼 의혹과 잡음은 이 전 대통령이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이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과거 '아만다&게이츠' 재단에 수백억 달러를 기부한 사례처럼 사회공헌 활동이 검증된 공익재단에 재산을 쾌척했다면 이 같은 잡음이 생기질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재단 이사진에서 측근들을 배제하고 재단을 투명하게 운영해 불필요한 오해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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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