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토사구팽 당한 건설업자 사연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0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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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사업장 퍽치기 당했다"

[일요시사=사회팀] 한 건설업자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중공업(이하 삼성)을 상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불공정거래로 공정위에 고발한 데 이어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그는 "삼성중공업이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사업권을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주택건설업체인 JBS의 대표 정병수씨는 지난 9일 서울 강남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났다. 앞서 정씨는 지난해 5월30일 옥중에서 삼성중공업과 부동산 신탁회사인 A신탁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및 신탁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슈퍼갑의 횡포?

2011년 8월 A신탁의 형사고발로 구속된 정씨는 같은 해 12월 1심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리고 올해 4월30일 가석방돼 삼성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정씨는 "삼성의 간계로 1년9개월의 감옥신세를 졌다"며 "이제라도 내 억울함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도대체 정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정씨가 지난 6년간 수집한 자료, 정씨가 작성한 고소장, 삼성의 반박서면 등을 토대로 사건을 요약했다. 하지만 양측의 소송이 진행 중인 관계로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수 있음을 사전에 밝힌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토대로 본 사건의 쟁점은 크게 3가지. 첫째는 삼성의 계획적인 사업권 강탈 여부, 둘째는 삼성의 불공정 계약 강요 여부, 셋째는 또 다른 소송 당사자인 A신탁과의 공모 여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

국내 최초의 타운하우스인 헤르만하우스. 정씨는 경기 파주시 교하읍 내 헤르만하우스를 시행·공급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시공·후분양 방식으로 공급된 헤르만하우스는 정씨에게 100억원 이상의 이득을 안겼다.

2007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주 헤르만하우스를 방문하면서 정씨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헤르만하우스를 극찬했다. 이 무렵 헤르만하우스를 위시한 타운하우스 사업은 업계의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07년 5월 성공을 맛본 정씨는 헤르만하우스2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서 정씨는 같은 해 1월 사업현장설명회를 개최하고 헤르만하우스2차의 책임준공을 맡을 시공사를 모집했다. 이때 당시 헤르만하우스2차가 들어설 부지는 JBS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사업을 위한 400억원의 대출금도 사전 확보된 상태였다.

처음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 중 최저가를 제시한 곳은 한라건설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분양수입금으로 공사비를 지급하고, 분양수입금이 남지 않을 경우 대물로 변제한다"는 조건으로 시공 의사를 타진했다. 삼성이 내민 파격적인 조건에 정씨의 마음은 흔들렸고, 같은 해 5월31일 JBS는 삼성과 정식으로 업무약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 직후인 6월부터 발생했다. 삼성이 자사 브랜드인 '라폴리움'을 앞세워  타운하우스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삼성은 '라폴리움' 사업을 총 4개 구역(동백·양지·오포·청평)에서 진행했고, 2008년 무렵 사전 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9년 3월7일까지 헤르만하우스는 착공도 하지 못한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전 청약자가 40명이나 있어 수요가 확인됐음에도 삼성이 착공을 고의로 미뤘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아울러 삼성은 정씨가 갖고 있던 청약자 명단을 넘겨받은 뒤 이를 라폴리움 홍보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삼성은 "2007년 5월에는 사업약정만 체결됐던 것"이라며 "약정 체결 후 도면이 나오지 않았고, 정씨가 잦은 설계 변경을 요구해 착공이 미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가 반박한 자료를 보면 설계 변경은 삼성 측이 먼저 요구했다. 또 삼성은 원래 약속된 공사비를 522억원에서 567억원으로 다시 713억원으로 부풀렸다. 아울러 삼성은 대주단인 신한은행으로부터 9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을 것과 정씨(JBS)가 소유한 15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해 공사비로 투입할 것 등을 강요했다. 이는 모두 계약서상에 없던 것들이었다.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대주단 신한은행은 삼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이 '불분명한 이유'로 연기되는 배경에 삼성 측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삼성은 토지신탁회사인 A신탁을 끌어들이며 헤르만하우스 사업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슈퍼갑' 대기업 상대로 외로운 사투 벌여
공정위 고발 이어 법원에 소송 제기

2009년 3월11일 정씨는 삼성과 2차 업무약정을 맺었다. 이미 착공이 늦어지며 손실을 봤던 정씨는 다른 건설사와의 계약이 불가한 상황에서 삼성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때 삼성은 정씨에게 A신탁과 '관리형 토지 신탁' 계약을 맺도록 했다. 헤르만하우스2차가 들어설 부지의 명의 관리를 A신탁에 넘기는 대가로 대주단으로부터 330억원을 대출받는 것이 계약 내용의 골자다. 그러나 이 계약은 몇 년 뒤 정씨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A신탁 명의로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공사, 하지만 분양권을 놓고 정씨와 삼성은 또 다시 갈등을 빚었다. 분양가를 놓고 정씨와 삼성이 이견을 보인 것이다. 정씨는 2011년 5월9일 홍콩 호화투자유한공사와 전 세대를 분양원가(100%)에 매매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삼성은 2011년 6월18일 자체 고용한 텔레마케터 등을 통해 할인분양(68%)을 시작했다. 여기서 정씨는 삼성이 자신의 분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정씨에 따르면 JBS는 헤르만하우스1차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있으며, 헤르만하우스2차 역시 계약서상 '분양 책임'이 JBS에 있음을 명시했으므로 JBS가 분양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토지를 담보로 330억원을 대출받았던 정씨의 대출금 상환이 늦어지자 A신탁이 정씨의 채무를 은행에 대위변제한 것. 즉 채무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면서 채무자가 갖고 있던 모든 권리를 (강제로) 양도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삼성과 A신탁이 처음부터 짜고 나를 팽한 것"이라며 "대위변제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정씨는 "헤르만하우스2차 분양 과정에서 온갖 불법이 자행됐다"고 말했다.

가령 정씨가 내민 공사도급내역서를 보면 삼성과 A신탁은 2009년 3월4일 정씨를 대신해 공동으로 내역서에 날인했다. 즉 정씨와 A신탁이 위탁 및 수탁 계약을 맺기도 전에 A신탁이 먼저 정씨의 권리를 행사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A신탁은 정씨가 부가세 환급금을 세무서에 잘못 지불한 사안을 놓고, 정씨가 세무서에 남은 환급금을 지불하려 하자 이를 거부한 뒤 정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또 정씨가 고소당하자 삼성 측은 정씨에게 접근해 사업권 포기를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배후 있나? 없나?

삼성 측 관계자는 "결국은 시공이 문제였는데 우리가 착공을 미뤄서 얻는 게 무엇이었겠냐"며 "정씨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방문을 통한 자료 확인요구에 대해선 거부 의사를 밝힌 뒤 "상식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을 아꼈다.


기자가 만난 한 건설 전문가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씨가 분양권을 양도하기로 했는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분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법정 공방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소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진행 중이다. 정씨가 주장하는 피해금액은 분양가와 대출금 이자 등 939억2500만원이다. 하지만 정씨가 정산하지 않은 공사비 332억원(삼성 측 주장 567억원)과 A신탁이 대위변제한 330억원 등을 제하면 실제 손해배상액은 청구금액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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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