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몸사리는 황교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30 11: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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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잡으려다…“역풍 맞을라” 조심조심

[일요시사=사회팀] 검찰총장 ‘혼외자’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정국. 그 후폭풍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몰아닥치고 있다. 청와대와 교감 의혹을 받고 있는 황 장관의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의혹과 관련해 여야의 공방이 예상됐던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불출석으로 파행을 빚어 앞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예상된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한 후 황교안 법무장관은 채 전 총장에게 감찰을 지시했다. 당시 조상철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법무부 규정에 따른 감찰 착수 사실을 브리핑했다. 이러한 검찰 착수 소식을 들은 채 전 총장은 대검 간부 긴급회의 참석 후 1시간도 안돼 자진 사퇴 결단을 내렸고 퇴임사 없이 대검찰청 청사를 떠났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 9월 28일 채 전 총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채동욱 사태 이후
정치권 공방 확산

채 전 총장의 전격 사퇴로 격양된 검찰 내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황 장관이 일선 검사들에게 해명 이메일을 보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황 장관은 지난 13일 오후, 전국 검사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채 전 총장 사퇴와 관련한 입장을 표명했다.
황 장관은 “최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오늘 검찰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불행스러운 사태가 있었다”면서 “총장 본인의 부인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고 그런 상황이 장기화돼서 검찰의 명예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저는 장관으로서 법무부 부서 중 사실확인 기능이 있는 감찰관으로 하여금 사안의 진상을 신속하게 파악하도록 조치했으며 이는 하루 빨리 의혹을 해소하여 검찰이 본연의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하지만 결국 검찰총장이 사직 의사를 밝히는 상황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만큼 어려운 상황이지만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황 장관의 이메일을 받은 일선 검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검사는 “채 전 총장 사퇴는 역사상 유례없는 법무부의 감찰 때문인데 언론보도를 탓하는 것은 책임전가”라며 “만약 ‘윗선’의 감찰지시가 있었더라도 법무부 장관이 자리를 걸고 막았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검사는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는데 (황 장관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혼외자 의혹 감찰 지시…고의적 흠집내기 지적
총대 멘 모양새…김기춘-홍경식 막후서 뒷짐?

지난 24일 검찰에 따르면 황 장관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22일 저녁 서울 시내 모처에서 고검장급 간부들을 만나 차를 마시며 얘기를 듣고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는 길태기 대검 차장과 소병철 법무연수원장, 국민수 차관을 비롯해 임정혁 서울고검장 등 일선 고검장 5명,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고검장급 9명이 모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장관은 이 자리에서 고위 간부들을 중심으로 검찰 구성원들과 조직 안정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채 전 총장에 대한 감찰에 앞서 준비 단계로 진행 중인 진상규명 조사와 관련, 명확히 확인된 성과가 없어 채 전 총장의 협조가 필요하며 필요할 경우 강제조사 수단을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채 전 총장은 법무부 감찰이 본격 시작되더라도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황 장관은 최근 상황과 관련해 어쨌든 채 총장의 의혹이 신속히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일선 검찰청의 분위기 등 고검장들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회동에 참석했던 관계자들은 전했다.


야당 3인방 경질 촉구
김기춘-홍경식-황교안

채 총장의 사퇴와 관련해 청와대는 사전에 알지 못했고,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채 전총장이 사퇴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황 장관의 감찰지시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상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이 청와대의 허가없이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게 법조계와 청와대 주변의 시각이다. 특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이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았겠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채 전 총장이 그동안 청와대 눈 밖에 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국정원 댓글 사건에 선거법을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법무부와 정면 충돌했다. 그러나 곽상도 수석은 검찰을 컨트롤하지 못해 경질됐다.
곽상도 수석 후임으로 온 홍경식 민정수석은 검찰을 제어하기 위한 카드였다. 곽 수석이 채 전 총장 보다 연수원 1년 후배인데 비해 홍경식 수석은 6기나 앞서는 대선배다.
황교안-홍경식 라인의 맨 위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자리잡고 있다. 세 명 모두 공안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기춘-홍경식-황교안 라인이 만들어진 지 6주 만에 임기를 4분의 1도 채우지 않은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내려온 셈이다.
정의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법무부-조선일보의 삼각편대가 벌인 채 전 총장 사퇴압력설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총장을 밀어내기 위해 사전정지작업으로 임명된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은 자진사퇴하시라. 국정원 사태 덮으려고 검찰의 독립성마저 무너트린 황 장관은 경질돼야 마땅하다”며 3인방 경질을 촉구했다.
채 전 총장이 사퇴하게 된 배경에는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설’ 보도가 자리잡고 있다. 이 혼외 아들설 보도에 대해서는 김기춘 비서실장-남재준 국정원장 작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국의 주요한 고비 고비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비서는 입이 없다며 밖에다 말을 하는 일이 없다.
채 전 총장이 사퇴함에 따라 청와대는 후임 검찰총장을 임명해야 한다.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정부 조직이니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앉히려 할 것이다.

참석한다더니…사개특위 15분 전 불참 통보
민주당 사개특위 “탄핵 또는 해임안 검토”

그러나 이럴 경우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청와대의 의중을 헤아려 수사를 하는 구태를 벗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한 검찰이 칼을 마구 휘둘렀을 때 어떤 모양새가 빚어지는지는 이미 지난 정부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중요한 대부분의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감한 검찰개혁은 이런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제 정권의 뜻에 반했던 채 전 총장이 낙마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장이 옴에 따라 검찰 독립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황 장관 불출석으로
여야 사개특위 파행

채 전 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부당한 감찰 지시로 지탄을 산 황 장관이 지난 26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에 돌연 불참했다.
특위는 그간의 활동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한 뒤 특위를 끝내려 했지만 황 장관의 불출석으로 파행됐다. 결국 이날 회의는 속개되지 못했다. 여야는 사개특위 활동시한인 30일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황 장관을 출석시키기로 했다.
이날 전체회의에선 황 장관의 출석을 놓고 여야 간 공방이 이어지다 회의 시작 40여분 만에 정회된 뒤 속개되지 못했다. 당초 출석하기로 했던 황 장관은 '성남 보호관찰소 관련 긴급 민원'을 이유로 국회에 불출석 의사를 전했다. 회의 15분 전이었다. 여야는 특히 황 장관을 상대로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 등 검찰 현안에 대해 질의를 할 예정이었다. 야당은 최근 불거진 채 전 총장 사찰 의혹 문제를 검찰 독립성과 연계해 추궁한다는 방침도 세운 상태였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황교안 장관은 회의 시작 15분 전만 해도 나온다고 했었다. 그런데 합리적인 이유도 밝히지 않고 불출석했다”며 “국민들은 채 전 총장에 대한 감찰이 적법했는지, 또 서울고등법원이 국정원 이종명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을 강제기소한 것에 대한 변명을 듣고 싶어했다. 황 장관은 이 대답을 하기 싫어 안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동철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터에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니 장관도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며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답변해야 할 장관이 불출석 통보하는 현실을 집권여당이 방기하겠다는 것은 국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춘석 의원은 “황교안 장관에게 왜 출석 안 했느냐고 물어보니 성남보호관찰소에 급히 갈 일이 있다고 했다. 대체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일이냐”며 “국회의 권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당 의원이라면 황 장관이 왜 안 왔느냐고 묻고, 빨리 연락해 출석하라고 해서 정상 운영시켜야 맞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황 장관의 불출석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이날 사개특위 회의는 지난 6개월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결과보고서 채택을 하는 자리인 만큼, 황 장관의 출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폈다.

전직 공안검사 출신
대표적 공안통 유명


염동열 의원은 “황교안 장관의 불출석이 절차가 부족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한시적으로 마련된 사개특위 보고서 채택 자리가 (출석 문제로) 본말이 전도되어선 안 된다”고 했고, 홍일표 의원도 “법무장관이 아닌 차관이 나왔다고 해서 회의가 잘못된 것처럼 말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출석 안 했다고 회의를 연기하거나 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사개특위 유기준 위원장도 “황 장관이 오전에 출석이 불투명하다고 해서 가급적 출석을 하라고 했는데, 조금 전 못 오겠다고 통보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일단 여야는 정회를 한 후, 간사간 협의를 통해 황 장관이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회의가 재개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법무부 장관인가…

황 장관은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법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불리는 전직 공안 검사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검사장으로 곧바로 승진하지 못해 공안 검사라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검찰총장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기수 문화가 철저한 검찰에서 동기인 한상대(사법연수원 13기) 전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 2011년 8월2일 인사적체와 신임 검찰총장의 부담을 덜고자 부산고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에서 물러나고 2011년 9월19일부터 2013년 1월까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박근혜정부의 제63대 법무부 장관으로 공식 임명된 황 장관은 지난 3월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취임식을 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 때 정부를 대표해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며 이 사건 범행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위협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과거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가석방 절차에 제동을 걸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가석방 신청을 불허하기도 했다.
황 장관은 1980년 징병 검사 때 ‘만성담마진’(만성 두드러기)이란 피부질환으로 제2국민역(5급) 처분을 받았다. 그는 징병검사를 세 차례나 연기한 이유에 대해서 당시 “병역법상 대학생의 경우 24세까지 징병검사 연기가 가능했다.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졸업년도까지 징병검사를 연기하는 관례에 따라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박영렬 변호사(전 검사장)는 지난 2월 <TV조선>에 출연해 “1983∼84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함께 근무할 때 피부병 때문에 약 먹으면서 고생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고 확인해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황 장관이 징병검사에서 면제판정을 받은 이듬해인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점을 들어 잇단 징병검사 연기와 면제 판정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다.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의 질병을 갖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점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황 장관의 장남 황성진은 2009년 육군 35사단에 사병으로 입대해 병역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황교안 장관은?

▲서울 출생
▲경기고 졸업
▲성균관대 법학 학사, 석사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법무연수원 교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제5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공안제1과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삼성 X파일 사건수사)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법인 태평양 형사부문 고문 변호사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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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