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 ①'정면돌파' 박근혜 보름달 프로젝트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17 0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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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나누며 추석 민심 잡고 정국 주도권도 확!

[일요시사=특별기획팀] 추석 여론은 민심의 바로미터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만큼 이 기간에 어떤 여론이 형성되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의 판세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은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취임 후 처음으로 추석을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원의 개혁을 요구하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벌써 한 달이 넘어섰고, 지난 2일 개원한 정기국회는 여야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파행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야 간 대립이 길어진다면 책임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박근혜정부와 국정원 정국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게 될 10월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추석여론은 민심의 바로미터가 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어떠한 선물 보따리를 준비할 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취임 후 첫 추석명절을 맞이하는 박 대통령이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영수회담 성사?
갈 길 멀어

우선 박 대통령이 지난 12일 전격적으로 제안한 3자회담은 추석민심을 겨냥한 최대 승부수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귀국보고회 형식으로 직접 국회를 찾아 민주당과 대화하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로 현재 여야 정치권은 냉전 중이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이 추석을 전후해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게 전격적으로 회담을 제안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꽉 막혀 버린 정국을 풀기 위해 회담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다자회담이냐 3자회담이냐의 형식을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국회의 공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부와 여당에도 부담이 되는 만큼 추석을 맞아 박 대통령이 파격적인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당초 민주당은 회담에 부정적이었다. 박 대통령이 회담에 나선다고 해도 민주당이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온 대통령의 사과 또는 유감표명,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국회 중심의 국정원 개혁 등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귀국보고회 형식으로 직접 국회를 찾는다는 파격적인 형식을 제안한 만큼 민주당으로서도 더 이상 대화를 거부할 명분이 부족했다. 결국 민주당은 다음 날 박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적은 사상 처음이다.

야권과 끝없는 냉전, 영수회담 성사될까?
국민 이목 모을 대형 정책이슈 대기 중?

정부와 여당이 추석을 전후해 국민들의 이목을 끌만한 새로운 대형 정책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25일 취임 6개월을 맞이해 주요성과로 ▲국민행복주택 사업 실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 등의 복지정책을 꼽았다. 이 같은 정책들은 비록 야권에선 선심성 정책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공약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 134조8000억원 가운데 복지공약에 해당하는 '국민행복' 부문의 소요재원은 무려 79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공약 예산 중 58.8%다. 박 대통령에게 남은 카드는 아직도 많다는 뜻이다.

추석연휴를 맞이해 박 대통령이 방송 출연과 봉사활동 등 적극적인 대민스킨십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겨울 정도로 '불통' 논란을 겪어왔다. 청와대는 불통 지적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당선인 신분으로 국회를 방문해 야당 대표를 만나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야당 지도부 및 간사단 전원을 초청해 대화를 나눈 바 있는 등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불통'은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방송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추석연휴에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된 KBS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시낭송과 합창 등을 했다. 방송에서 보여준 이 전 대통령 부부의 모습은 광우병 쇠고기 촛불 파동 이후 크게 훼손된 이미지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 한번 대형정책?
국민행복 이룰까?


이 때문인지 이 전 대통령은 2010년에도 김윤옥 여사와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 부부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제로 대통령 부부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했고, 지난 2011년에는 추석연휴를 사흘 앞두고 청와대에서 전문가들과의 방송 대담을 통해 '공생발전'의 국정철학을 설명하고 주요 국정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추석연휴 박 대통령이 봉사활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방송출연 등은 준비과정이 복잡한데다 자칫 방송에서의 언행 등이 야권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반면 봉사활동은 큰 파급력은 없지만 논란의 여지가 적고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기간 추석연휴에도 유일한 공식일정으로 양로원 방문을 택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 서울시립고덕양로원을 찾아 노년층 유권자들을 만나 민심을 청취하고 가족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한가위를 보내는 노인들을 위로했다.

추석 직후 실시될 남북이산가족상봉도 청와대가 추석민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북한에 오는 추석 전후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제안했다.

이산가족 상봉
민심 잡을까?

이후 남북이산가족상봉 협상은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오는 25일부터 실시되는 것으로 일단 확정이 된 상태다. 여전히 장소를 둘러싼 남북 간 이견 등이 남아 있지만 큰 틀에서의 합의가 성사된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추석민심을 크게 좌우할 물가안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안전행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를 '추석명절 물가안정 특별대책기간'으로 정하고 과일·채소·생선 등 31개 추석 성수품을 중심으로 관리에 나선 상태다.

이와 함께 안행부는 '물가대책종합상황실'을 운영해 합동점검대응체제를 유지하고 소비자단체·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부당요금 징수·사재기 등 불공정 상행위를 집중 점검했다. 특히 물가책임관제를 운영해 17개 시·도별로 주요 간부가 시군구를 전담하고 시·군·구별 직능단체·주민간담회를 실시해 추석 성수품 관련 품목의 가격동향을 집중점검하기도 했다.

봉사활동, 방송출연 등 대민스킨십 강화
인선 발표 코앞? 조용한 추석 보낼 수도

박 대통령이 추석연휴기간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역을 찾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명절연휴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역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박 대통령의 경우는 특별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사다.

공식적인 묘역 방문은 보수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진보진영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질 우려도 있다. 일종의 박정희 우상화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이른바 '과거사 사과'를 했었다.

마지막으로 추석을 전후한 청와대의 인사 쇄신도 기대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5일에도 저도에서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오자마자 취임 5개월 만에 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비서관 절반을 갈아치우는 파격적인 인사를 발표했다.


추석연휴는 박 대통령이 모처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출범 6개월이 지났음에도 공공기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국정운영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경질되고 일부 이명박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추가로 사퇴 의사를 밝히며 인사 요인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 인사가 늦어지면서 각종 설이 난무하는 등 잡음도 증폭되고 있다.

7개월 공백
인선 마무리?

따라서 박 대통령이 추석연휴를 계기로 각종 인선을 마무리짓고 국정운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8월초에도 인사안을 들고 휴가를 갔는데, 이번 추석 연휴 때도 공공기관장 인선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전후에 인선이 마무리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 대통령이 새정부 출범 후 국무총리와 장관 내정자들이 줄줄이 낙하해 '인사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검증을 대폭 강화하는 바람에 인선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3배수였던 후보 추천을 6배로 늘려 검증을 대폭 강화했고 전과, 납세, 병역 등 기초적인 검증 자료뿐 아니라 논문 표절 여부, 위장전입 여부 등에 대한 검증과 평판조사까지 실시하고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인사문제에 치중하게 된다면 추석연휴를 청와대에서 조용히 보낼 가능성이 크다.

또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이긴 하지만 여전히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와 이석기 사태 등으로 국내외가 어수선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외부활동보다는 정국수습을 위해 청와대에 머물며 조용한 추석을 보낼 가능성도 크다. 보름달이 뜨면 박 대통령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박근혜 보름달 프로젝트'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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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