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 ②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 추석정국 진단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17 07: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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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최대 실정? 우열 가리기도 어렵다"

[일요시사=특별기획팀] 현재 민주당은 위기다. 이른바 이석기 사태로 공안정국이 조성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바닥을 맴돌던 민주당의 지지율은 한차례 더 폭락했다. 새누리당과의 격차는 어느새 두 배 이상 벌어졌다. 민주당은 국정원 개혁 이슈를 다시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여권은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민주당에 책임론까지 덧씌우며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60년 전통의 민주당은 이대로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민주당 살리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전병헌 원내대표를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난달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는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0일이 마치 1000일 같았다"며 하소연을 했다.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에 취임하자마자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정부여당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지금까지는 새누리당의 압승. 그만큼 전 원내대표는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전 원내대표는 역전의 명수다. 전 원내대표는 당내 원내대표 경선 당시에도 1차투표에서는 2위에 그쳤지만 결선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하며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그는 위기에 처한 민주당을 구하고 또 한 번 대역전 드라마를 써낼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전병헌 원내대표를 만나 추석정국 현안들의 해법을 들어봤다.

- 민족의 대명절 추석입니다. 추석연휴가 지난 후 중점적으로 관심을 두고 추진해 나갈 현안은 무엇입니까?
▲ 민주주의와 민생회복을 위해 원내외 병행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제1야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첫째,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합니다. 국정원,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국가권력기관의 개혁을 주도하겠습니다. 둘째, 민생살리기와 경제민주화에 집중하겠습니다. 박근혜정부의 반민생 부자본색 3종세트인 세법개정, 전력개편안, 전세대책 등을 반드시 바로 잡겠습니다. 셋째, 새누리당 정권의 4대강 비리, 원전 비리, 자원외교 비리, 이 3대 비리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는 국회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 국정원 개혁을 위한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장외투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61.9%나 나왔다고 하던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민주당을 광장으로 내몬 것은 새누리당과 청와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청와대에 말 한마디 못하는 입장입니다. 장외투쟁에는 반대여론이 높지만,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에는 찬성여론이 높습니다. 이런 점을 잘 파악해 국민과 함께 호흡해 나가야 합니다. '장외투쟁'은 '국정원 개혁의 동력'이라고 국민들에게 잘 설득해 나갈 것입니다. 정기국회가 본격화되고, 민주당이 국회에서나 광장에서나 지금보다 제 역할을 더 잘 해내면 국민도 알아줄 것입니다.

- 이른바 '이석기 사태'로 민주당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국정원 개혁'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놓고 국정원의 물타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 그렇습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과는 별개로 이를 빌미삼아 야당을 음해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태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3년 동안 내사해온 이 사건을 왜 하필 이 시기에 발표한 것인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국정원 개혁 요구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입니다. 국정원이 여론의 역풍을 맞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새누리당의 요즘 행태는 과유불급입니다. 자격심사가 불발되자 제명안을 제출해 기소도 안된 사건에 대해 국회전체를 섣부른 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새누리당 주요간부는 공개석상에서 체포동의안에 찬성하지 않은 31명의 의원은 모두 종북, 간첩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국정원 개혁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국정원, 검찰에게 맡기고,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석기 사건, 국정원 물타기 의심스러워"
"박근혜 대통령, 독재 통치스타일 버려야"

- 민주당의 '을지로(乙을 지키는 길)위원회'가 지난달 출범 100일을 넘겼습니다. 그동안 어떤 성과를 남겼습니까?
▲ 을지로위원회는 '을의 대변자'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동안 35회 이상의 현장방문, 11회의 사례발표, 34회의 기자회견, 54건 이상의 법률상담, 9건의 교섭중재와 타결, 4건의 입법 성과를 거뒀습니다. 최근에는 교보문고와 교재 유통업체간의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더 많은 을들이 민주당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을을 지키기 위한 입법과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정기국회에서는 더 깊이 듣고 더 치열하게 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아울러 경제권력의 횡포로 고통 받는 을(乙) 뿐 아니라 인간 존엄을 훼손당하는 많은 을을 살리는 정당으로 진화해 나갈 것입니다.

-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법 입법을 놓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국민 기만용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은 중단돼야 합니다. 경제민주화는 박 대통령 대선공약을 넘어 국민적 합의이자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자마자 '속도조절론'이란 미명하에 줄곧 경제민주화 발목을 잡더니, 얼마 전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옥죄기가 되지 않게 할 것'이라며 이명박정부가 이미 실패한 '대기업 프렌들리'를 답습하려는 우려스러운 발언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과의 만남 후 재계는 경제민주화 무력화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상법개정안, 금산분리 강화, 순환출자 금지 등 핵심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전부 하지 말자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또 이례적으로 대법원에 탄원서까지 제출해가며 통상임금 결정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정권 5년 동안 자기자본의 10배가 넘는 450조 가량의 잉여금을 쌓아놓고 있는 재벌들의 염치없는 행태입니다. 제발 박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고, 경제민주화에 관한 여러 정책들을 제대로 펼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 국정원 사태와 민주당의 민생행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부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신지?
▲ 민주당의 지지율 정체는 지금 꽉 막혀 있는 정국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당장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으로 빚어진 경색정국을 풀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으나, 제1야당 대표가 노숙을 하든, 국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든 야당 무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야당과의 소통부재를 국민들은 대통령이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당장은 효과를 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매를 벌고 있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바로 눈앞의 지지율에 도취돼 민생과 정치를 분리하고 정치를 실종시키는 것은 앞으로 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정치와 민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일관된 목표는 민주주의와 민생입니다. 선명한 민주당, 존재감 있는 민주당, 유능한 민주당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입니다. 9월 국회에서도 성과를 축적하는 민주당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 10월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민주당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독자세력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가칭)안철수신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 안철수신당과는 선의의 경쟁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쟁해야 할 일이 있으면 서로가 당당히 경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대나 단일화를 하는 모습은 국민들이 정치공학적인 것으로 느낄 것입니다. 안철수신당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차별화를 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무조건 독자세력화를 향해 가다가는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며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박근혜정부가 가장 잘한 일과 못한 일을 한 가지씩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 박근혜정부 6개월은 '3무3유'의 6개월입니다. '3유(有)'는 국정원 권력농단, 인사실패, 정책혼선이며, '3무(無)'는 민생, 민주주의, 국정최고책임자입니다. 박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의 지도자가 아니라, '공약 뒤집기, 책임 떠넘기기, 말 바꾸기'를 일삼는 구경꾼 대통령입니다.
가장 잘한 일은 아직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지 않아 박수치기에 이르지만 남북이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성과입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쌓아놓았던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등이 하루 빨리 재개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가장 못한 일은 국정권 권력농단, 윤창중, 김기춘을 비롯한 인사실패, 민생파탄 등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여전히 정국을 꽉 가로 막고 있는 국정원 권력농단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통 상황인식입니다. 국정원 셀프개혁 지시, 야당대표와의 대화 거절, 국민적 요구인 대통령의 사과 거절 등 국민과의 소통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촉구합니다.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 중단돼야"
"안철수신당 모호, 차별화 논할 단계 아냐"

-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박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신지요?
▲ 국민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박근혜정부는 경제민주화, 무상보육, 노인복지(기초노령연금 등) 등 공약뒤집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더 최악의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더 늦기 전에 원칙을 지키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당부합니다. 불통정치를 소통의 정치를 바꾸시길 바랍니다. 인사, 국정원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보면 과거 독재시대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입니다. 박 대통령의 화법은 '절벽'입니다. 여야 모두 정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정치는 없고 통치만 남는 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 마지막으로 추석을 맞이해 국민들에게 남기시고픈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 국민 여러분, 참 힘드시죠? 민족 최대명절인 한가위를 맞았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또 가슴은 답답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추석만큼은 우리 온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은 국민이 절대 갑인 섬김의 정치, 경청의 정치를 실천할 것입니다. 이 땅에 정의와 진리를 지키려는 국민의 분노가 멈추지 않고 있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아파하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민생도 민주주의도 국민과 함께 민주당이 책임 질 것입니다. 국민의 삶속에서 민생의 현장에서 답을 찾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입법으로 반드시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행복하고 풍요로운 명절 보내십시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전병헌 원내대표 프로필>


▲ 1998 대통령 정무비서관
▲ 2002 국정홍보처 차장
▲ 2005 열린우리당 대변인
▲ 한국정학연구소 이사장
▲ 제5대 한국e스포츠협회 협회장
▲ 17~19대 국회의원
▲ 민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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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