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난 ‘박통키드’ 전성시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19 12: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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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혈관에 ‘박정희 DNA’ 흐른다

[일요시사=경제팀] ‘박정희 측근 2세.’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키워드 중 하나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온 나라에 ‘박정희 DNA’가 흐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 2세들이 박근혜정부 내각과 청와대에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금융업 수장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박정희 키드’ 어디까지 퍼졌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박정희 측근 2세’다. 인수위 시절부터 치고 들어오기 시작한 박정희 측근 2세들은 현 정부 내각과 청와대를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나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1956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85년 미국 프리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장, 한국지역학회 회장,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건설교통부 부동산시장 조기경보시스템(EWS) 지표점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토교통 분야와 인연을 맺어왔다.

국토부 장관
든든한 빽은?

서 장관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부친인 고 서종철씨 때문이다. 서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대통령 안보 담당 특별 보좌관, 국방장관을 지냈다. 특히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육사 1기 선배다.

서 장관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서씨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사형 집행 명령서에 최종 날인해 8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유신 정권이 저지른 유신 살상 행위라는 민주통합당 박수현 의원의 지적을 받고 “인혁당 사건은 재심에서 모든 분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 자리를 빌려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고 사과한 바 있다.


서 장관은 그러나 5·16군사정변에 대한 질문에는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교과서에 기술된 표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남겼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90년 KDI에 입사해 23년간 KDI에 재직한 ‘통’이지만 박 대통령과 ‘대를 이은 인연’으로 더 유명하다. 김 원장은 이명박정권에서 17대 대통령인수위원회 위원,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재정경제2비서관을 지냈다. 경기고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UC샌디에고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엔 KDI부원장을 지냈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김 원장의 부친은 박 전 대통령 시절 69년 10월부터 78년 12월까지 비서실장으로 9년3개월을 재직해 최장수 기록을 세운 김정렴씨다. 박 전 대통령 임기(18년6개월)의 절반가량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정치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경제분야까지 손을 뻗었다. ‘경제사령관 총참모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박정희 측근 2세들 현정부 들어 요직에 배치
60∼70년대 부친에 이어…대 이은 인연 화제

박 전 대통령과는 62년 5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에 불려가 통화개혁에 관한 브리핑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53년 한국은행 기획조사과장 시절 제1차 통화개혁을 기안한 경력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없던 경제 전문성을 기반으로 그는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79년 2월부터 80년 9월까지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를 역임했고, 화폐 개혁, 새마을 운동, 산림 녹화 등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부친은 대한교육연합회장을 맡았던 고 류형진씨다. 류씨는 5·16 이후 3공 수립 때까지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을 맡았다. 숙명여대 교수이자 교육학자였던 류씨는 3공 교육정책 수립에 기여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최장수 비서실장
아들이 KDI 원장


류 장관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 북학대학원 교수,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북한연구학회 회장 등을 지낸 학자 출신으로 박 대통령과는 2011년 박 대통령이 미국 외교 전문지인 ‘초린어페어스’에 글을 기고할 때 옆에서 도우며 직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지난 5월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장순흥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의 부친은 장우주씨다. 장씨는 한미경영권 이사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육사 한 기수 후배로 이산가족 상봉에 앞장섰다. 박 전 대통령이 육사 2기생이었고 장씨는 3기생이었다. 65년에는 국방부 관리차관보 자격으로 박 전 대통령 방미 당시 대통령을 수행했으며 71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 사무국 사무총장을 맡는 등 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다.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 브레인으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초석을 마련했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부친은 고 최재구씨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경남 고성 선거구에서 8, 9, 10대(공화당), 12대(국민당) 의원을 지냈다. 최씨는 공화당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의원으로 통했다. 청와대 연회 때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노래 10곡을 연속해 불러 박 전 대통령이 기뻐한 일도 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대 석사를 거쳐 미국 클레어몬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통일연구원, 민족통일연구원의 연구원을 거쳐 96년부터 2006년까지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를 지낸 뒤 이화여대 사회과학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평화나눔센터 소장과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활발한 대북 관련 시민단체 활동도 펼쳐 왔으며, 박 대통령에게 오랫동안 조언자 역할을 함으로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대북 정책의 핵심 공약을 성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서종철-서승환
     김정렴-김준경
     류형진-류길재
     장우주-장순흥
     최재구-최대석
     이정순-이건호

지난 1월 인수위원 사퇴 이후 6개월 동안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지난 7월 말부터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7월22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16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앙아시아 지역협의회 출범식’에 참석해 대북 정책과 관련해 강연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선 7월19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러시아협의회 출범식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알마티 강연에서 최 교수는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일 정도로 높은 호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상훈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위다. 김 비서실장은 마산중, 경남고, 서울법대 대학원 출신으로 드물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모두 지냈다. 15, 16, 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 특보단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국회 법사위원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의 이력을 쌓았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자 부설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던 2005년에는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다.

최대석 활동 재개
부활의 날개짓

그는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으로, 정수장학회 출신 모임인 ‘삼청회’ 회장을 지냈다. 특히 74년 8월 공안 검사로 재직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박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고, 지난 6월에는 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박 대통령을 돕는 대표적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 활동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6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김 비서실장 부부가 포함된 일행과 여행을 가는 등 친분도 깊다.

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기 비서실장을 지냈고 새누리당의 현직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일호 의원은 고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의 아들이다. 유 전 총재는 64년 박 전 대통령의 하야 권고 건의를 검토했던 야당 6인 소위 멤버였지만 94년 박 전 대통령 서거 15주년 추모위원회 고문에 이름을 올리는 등 ‘박정희 재평가’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고용복지 수석을 맡고 있는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 측근 2세는 아니지만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이름을 따 68년 서울대에 세워진 기숙사 ‘정영사’ 1기생이다. 69년 ‘정영사 증축운동’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국고로 이를 지원했던 인연을 계기로 정영사 출신들은 1년에 한두 번씩 청와대에 인사하러 가게 됐고 자연스럽게 육 여사와 박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최 명예교수 말고도 정영사 출신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1기 정운찬 전 국무총리, 2기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 3기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4기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사회 각층에 널리 퍼져 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주요 인재풀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동흡 전 재판관이 헌재 소장 후보에 올랐던 것도 이런 인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얼마 전 정무수석에 발탁된 박준우 수석의 장인도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 수석의 장인은 동양석판(현 TCC동양) 창업주인 고 손열호 회장. 동야석판은 통조림·음료수캔 등에 사용되는 석도강판(합금판)을 독점 생산하던 업체로, 62년 국내 최초로 자체 생산에 성공하면서 주목 받았다.

손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김계원 전 실장과 막역한 사이. 영주보통학교(현 경북영주초등학교) 동기로 말년까지 ‘영주회’라는 모임을 함께 했다.

박 수석은 78년 외무고시 12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81년 손 회장의 차녀인 현진씨와 결혼했다. 박 수석의 처남인 손봉락 TCC동양 회장은 지난 6월 박 대통령 방중 때 동행했던 중견기업 사절단 33인에 포함된 바 있다. 박 수석은 부인과 공동 명의로 처가인 TCC동양 주식 15만주(13억원)를 보유해 대주주 명단에 올라 있기도 하다.

국가미래연구원 창립을 주도하고 박 대통령의 ‘스터디모임’ 핵심 멤버인 김영세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 시절 내무부 지방국 행정담당관, 인천시장, 대통령 비서관 등을 지낸 고 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 아들이다. 부인은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 김 교수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 꾸준히 중용설이 나오고 있다.

직접 ‘부녀 대통령’ 모두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인사들도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경제기획원과 KDI를 거쳤으며 76년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참여했다.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72년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최근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 고리를 들고 다니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5일 경질된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 정부1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허 전 실장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박 전 대통령이다.


지난 5월 별세한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도 박 대통령 부녀와 대를 이어 각별한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60년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강학파’의 대부로 이름을 날렸고 69년 박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재무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거쳐 80년 제14대 국무총리에 임명돼 2년 여간 활동했다.

17대 대선이 있던 지난 2007년 1월에는 박근혜 캠프에 합류해 경제자문단의 좌장을 맡아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최근까지 한일협력위원회 회장을 맡았다. 그가 이끌었던 사람으로는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 김광두 서강대 교수 등이 있으며 이들은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일원으로 18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재계까지 퍼진
‘박정희 키드’

박 전 대통령 측근 2세는 정치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최근 노사합의로 출근 저지가 종료되면서 취임 15일 만에 첫 출근한 이건호 국민은행장 얘기다. 이 행장의 부친은 이정순 예비역 준장이다. 이 준장은 육사 5기 출신으로 5·16 이후 부정축재위처리위 조사단장을 맡았다. 부정축재처리위 조사단장 활동 공로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으며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해 64년까지 육본 경리감을 맡았다. 

이들 인사의 면면만 보더라도 박 전 대통령 측근 또는 그들의 2세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세습 정치’라는 비난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이유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근혜정권 초반 ‘독재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물론 이들이 박 전 대통령 정권의 인사들과 혈연으로 얽혀있다고 해서 유신 시대가 부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시절 유신과 독재를 목도했던 이들이 요직을 차지해 역사를 거스르지는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활하는 ‘박정희 유산’
또 다시 새마을운동?

박정희 시대 만들어졌다가 이후 정부에서 폐지된 각종 기구와 제도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9일 김관진 장관 주재로 군무회의를 열어 장병 정신교육 강화를 위해 ‘정신전력원’을 올해 12월까지 설립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정신전력원은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설립된 국군정신전력학교를 모태로 한다. 이후 국방정신교육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98년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폐지됐다. 15년만의 부활인 것이다. 63년 박 전 대통령의 수출진흥확대회의도 부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이후 2차례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가 그것이다. 79년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거의 매달 이어진 이 회의는 2009년에 사라졌다가 박근혜정부에 부활했다.

64년 박 전 대통령이 장기영씨를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원하면서부터 시작됐다가 김대중 정부 때 폐지(1998년) 및 부활(2000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아예 사려졌던 경제부총리제도 다시 생겼다.

76년 시작됐다가 95년 폐지된 재형저축도 지난 3월 18년 만에 부활했으며 ‘한강의 기적’ ‘새마을운동’ 같은 박 전 대통령 시절 슬로건도 박근혜정부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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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