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조희준 막장 스캔들 풀스토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06 11: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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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혼외정사…사랑과 전쟁 실사판

[일요시사=사회팀] 민주당 차영 전 대변인이 조용기 목사의 아들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 '불륜, 이혼, 동거, 출산, 소송'으로 이어진 이들의 인생사는 마치 막장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연상케 한다. 차 전 대변인이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포기하면서 소송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통합당 차영 전 대변인이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의 아들을 낳았다며 서울가정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

지난 1일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을 상대로 "아들 서모군을 친아들로 인정하고 2004년 초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양육비 8억원(매달 700만원으로 계산) 중 1억원을 우선 지급하라"는 소송을 7월31일 서울가정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차 전 대변인은 위자료 1억원과 함께 서군의 향후 양육비로 매달 700만원도 청구했다.

차 전 대변인이 제출한 소장의 내용은 이렇다. 2001년 3월 차 전 대변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에서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일하다 청와대 만찬에서 조 전 회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넥스트미디어그룹의 회장이던 조 전 회장은 그해 8월 세금 포탈 혐의로 구속됐다가 3개월 뒤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았다.

조용기 장남 조희준
세 번의 결혼·이혼

둘은 서로 배우자가 있었지만 2002년 중반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2002년 7월에는 조 전 회장이 자신이 대주주였던 넥스트미디어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차 전 대변인을 임명했다. 그해 11월에는 명품 피아제 시계를 선물하면서 청혼했다.

차 전 대변인과 조 전 회장은 각각 2003년 1월과 2002년 12월 서로의 배우자와 이혼했다. 이후 둘은 서울 강남의 고급 레지던스에서 동거했고 2003년 8월 하와이에서 서군을 낳았다.


차 전 대변인이 하와이에 머무르는 동안 조 전 회장은 운전기사가 딸린 최고급 리무진과 고급 주택, 매월 1200만원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대줬다. 하지만 조 전 회장은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4년 초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겼다.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이 머물던 일본으로 갓난 아기였던 서군을 데리고 찾아가 수차례 연락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3월 조 전 회장 동생을 통해 조용기 원로목사를 따로 만나 서군 사진을 보여준 뒤 '우리 집 장손이 맞다'고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조 전 회장의 연락은 없었고 차 전 대변인은 아이들을 생각해 2008년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

차 전 대변인은 올해 2월 서군을 데리고 조 원로목사와 조 전 회장의 형제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서군이 장손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아들로 등재시키는 것도 동의를 받았다. 당시 조 전 회장은 운영하던 기업의 배임 혐의로 구속돼 식사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서군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차 전 대변인 측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조 전 회장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지출하고 있는 양육비는 일반인들의 몇 배 이상일 것"이라며 과거 양육비 1억원에 매달 700만원 양육비를 요구했다.

"조용기 목사 손자 낳았다"친자확인소송
위자료 1억에 매달 양육비 700만원 청구

또한 "조 전 회장은 결혼만 하면 호화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이혼으로 인해 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며 위자료 1억원도 청구했다.


이어 "조 전 회장은 아들을 한 번도 찾지 않았고 심지어 다른 여성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고 있다"며 자신을 친권자 및 양육권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남 완도 출신의 차 전 대변인은 1984년 전남대 농경대학을 졸업한 후 1987년까지 광주 MBC 아나운서로 일했다. 이후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정치권과 안면을 텄다. 1992년 민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미디어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5년 조순 서울시장 정책 비서관으로도 활동했다. 1999년에는 세종문화회관 공연 부장, 홍보실 실장을 역임했으며 홍조근정훈장(3등급)을 받기도 했다.

2001년 조 전 회장을 만난 차 전 대변인은 2002∼2004년까지 넥스트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2004∼2006년에는 KT 마케팅전략담당 상무, 2006∼2007년에는 KT 고문 자리까지 올라갔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중앙선거 대책위원회 홍보특보로 활동했고 2008년 3월 통합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 4∼7월까지는 민주당 공동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는 민주당 언론특보를 맡았으며 지난해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텃밭인 서울 양천갑 지역구에 출마해 길정우 후보와 막판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근소한 차이로 아깝게 패배했다. 이후 서울양천갑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뽑혔지만 올해 1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유로 지역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화려한 정치 경력
포기한 이유는?

저서로는 <나는 대통령도 바꿀수 있다>(1997년), <젊은 그녀 전쟁터를 즐겨라>(2006년) 등이 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의 차 전 대변인이 정치생명까지 포기하면서 법조계를 통해 자신의 스캔들을 공개한 이유는 뭘까.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게 중론이다. 차 전 대변인은 생계와 아이 문제 등으로 전 남편과 재결합했고 양육비 8억원 중 1억원을 우선 청구했다. 그러나 차 전 대변인이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차 전 대변인이 지난해 제19대 총선에 출마하며 신고한 재산내역만 23억232만원에 이른다.

차 전 대변인 측이 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소장에서도 밝혔듯이 아들 서군 때문이다. 올해 11살로 곧 중학생이 되는 서군은 예민한 시기인데다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의 양육은 서군의 외할머니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 전 대변인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자로서 창피하고 정치적 입지도 포기했지만 속은 시원하다"며 "어머니로서 늘 미안했는데 아들에게 잃어버린 인생을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차 전 대변인의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또 다른 이유는 조 전 회장에 대한 배신감이다. 조 원로목사와 조 전 회장의 형제들까지 서군이 장손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후 조 전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가족들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올해 조용기 목사를 만났는데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얘기가 다 됐다. 그런데 최근 조희준이 석방돼 나와 딴소리를 했다. '내 아들이 맞긴 한데 친자 확인은 안 된다. 성년이 되면 해주겠다'고 했다. 법적으로 책임지기 싫다는 거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내 삶을 포기하고 소송을 하기로 했다. 인간적으로 용서하기 어렵다"는 게 차 전 대변인이 언론을 통해 밝힌 입장이다.


하지만 차 전 대변인 측의 주장에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차 전 대변인의 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다. 차 전 대변인은 소장에서 자신의 이혼으로 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 전 대변인은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계에 입문한 계기를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차 전 대변인은 당시 "주위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지원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3월15일 딸이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상중에 친정어머니가 부르시더니 아이가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하느냐,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도록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조 전 회장 침묵
"휴가 중이다"

또 차 전 대변인은 "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유야교육학과에 다니던 딸은 저소득층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엄마가 국회의원이 돼서 그런 일을 해주길 바랐다"고 말한 적도 있다.

반면 제19대 총선 당시 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 전 대변인은 "정치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들었다. 가족과 관련된 사연이라고 하던데"라는 질문에 "오늘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차영, 큰딸이 심장마비사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등 의문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차 전 대변인 측은 이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아들의 성씨다. 서군이 조 전 회장의 친자라면 성씨는 조씨가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차 전 대변인 측은 재결합한 남편의 성씨를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큰딸이 세상을 등진 후 작은딸과 서군의 양육을 위해 작은딸의 친부와 재결합했고 남편의 동의를 얻어 서군을 호적에 등재하게 됐다는 것. 차 전 대변인의 변호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차 전 대변인과 재결합했고 서군을 아들로 입적하는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차 전 대변인이 제출한 소장과 그의 변호사가 언론을 통해 밝힌 내용은 모두 차 전 대변인의 주장일 뿐이다. 그러나 조 전 회장 측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조 전 회장은 휴가 중이라며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마찬가지다.

유부남녀 신분으로 2002년 중반부터 '불륜'
이혼 후 은밀한 동거생활…2003년 원정출산

1965년 조 원로목사와 김성혜 한세대 총장 사이에서 태어난 조 전 회장은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가 맨해튼 음대를 졸업했다.

1988년 조 원로목사가 국민일보를 창간하자 상무이사로 발을 들여놓았으며 이후 해외사업당담 부사장을 거쳐 1997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국민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듬해에는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국민일보 경영을 맡은 그는 넥스트미디어홀딩스를 설립하고 스포츠투데이와 파이낸셜 뉴스 등을 창간하고 현대방송을 인수하는 등 언론 미디어 사업을 확장했다. 2000년에는 파이낸셜뉴스 발행인 겸 회장을 지냈다.

2001년에는 국세청 세무조사 때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고발됐고, 같은 해 8월 조세포탈 및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월에는 넥스트미디어홀딩스의 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으나 이후 6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아들 성씨 '서씨'
전 남편과 재결합

이렇든 경영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조 전 회장은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나이 48세의 조 전 회장은 이미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 80년대 후반 탤런트 나종미씨와 전격 결혼했지만 딸 하나를 남긴 채 법정소송 끝에 이혼했고 직후 일본인 나카무라 유리꼬씨와 1992년 2월 결혼식을 올렸으나 2년7개월 만에 다시 이혼소송에 휩싸였고 패소했다.

2002년 12월에는 넥스트미디어그룹에서 발행한 잡지 <엘르>의 과장인 장모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고 차 전 대변인과 만나던 2002년 12월 2년 만에 이혼을 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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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