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박근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 풀가동 전말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7.22 13: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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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매우 쳐라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위기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12월에 휘몰아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여파에도 불구하고 그간 박 대통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 지지율을 유지했다. 이유는 뭘까? 정치권에선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을 '성동격서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란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라는 뜻의 한자성어다. 이는 병법(兵法)의 한 가지로, 한쪽을 공격할 것처럼 속여서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다른 쪽으로 쳐들어가 적을 무찌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정국의 핵 원세훈
개인비리로 묶어두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자칫 박근혜정부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고, NLL·4대강 논란 등에 불을 지펴 야당의 공세를 원천 차단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 위반이나 국정원법 위반이 아닌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는 일단 물 건너간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0일 건설업자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원 전 원장을 전격 구속했다. 원 전 원장은 2009년부터 황보건설의 황보연 대표로부터 5000만원어치의 선물과 현금 1억6000만원을 받아 챙기고 공사수주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은 "그냥 생일선물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원 전 원장은 "억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며 "그냥 생일선물"이라고 답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게 바로 뇌물이에요" "진짜 뇌물을 얼마를 줘야 하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사건 자칫 박근혜정부 '정통성 시비' 비화 가능성 커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시국선언 확산, 박근혜 책임론 일어

야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을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가 개인비리 혐의에 덮여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진보정의당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국기문란 행위의 진상과 책임이 혹 원 전 원장 개인비리에 덮이는 일 따윈 절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한 누리꾼 역시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먼저 구속했어야 했다. 뇌물 및 금품 수수는 한낱 여죄일 뿐이다. 개인비리로 물 타기 하지 마라"라는 의견을 남겼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국정원에 대한 민심은 점점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국정원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마저 새누리당의 배수진으로 표류하자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민심이 곳곳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집회에선 일주일 새 2배로 늘어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 최대 인원이 몰렸다.

NLL카드 실패
'물 타기용' 비난

집회를 주최한 '국정원 대응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는 참가자를 2만3000여 명(경찰 추산 6500명)으로 추산했다.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는 지난달 21일 처음 열렸으며, 초기에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평일 150~200명, 주말에는 1000여 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물타기와 버티기 역공이 계속되면서 국민 반발이 증폭, 지난 8일 집회 때부터는 1만여 명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잇따라 서울대 등 이미 전국 30여 개 대학교수들이 참여했고,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교수들의 이 같은 규모의 시국선언은 극히 이례적이다.


청소년도 들고일어났다. 전국 464개교 중·고등학생 817명이 지난 17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 이들은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청소년 61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의 NLL대화록 공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5.3%가 '국민의 촛불, 시국선언의 확산을 막기 위한 물타기용'이라고 답했다. 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응답자의 33.2%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촉구'라고 답했다. 이어 '국정조사'(24%), '철저한 진상규명'(20.4%), '원세훈·김용판 구속'(13.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전국적으로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의혹과 박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박 대통령은 이에 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국정지지율은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성동격서’ 전략이 현 정국의 위기를 제대로 관통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4대강 감사에
친이계 반발 극심

첫 번째 '물타기용'으로 꼽히는 NLL대화록 공개는 '역풍'을 맞아 실패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성급한 자충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 전 원장에 대한 언론 보도는 대폭 줄었다. 물타기라는 비난에도 여야의 NLL을 둘러싼 팽팽한 기싸움에 국정조사가 미뤄져 새누리당으로선 충분히 시간을 번 셈이다.

NLL 정국이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즈음, 박 대통령은 '4대강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새누리당이 야권과 사활을 건 대치전선에서 4대강 사업은 국정원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부딪쳐야 하는 사안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야권의 '대선불복' 조짐을 진화하고 박근혜 정부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의 산은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4대강 사업' 정리 '이명박근혜' 고리 끊는 첫 단계로 인식돼
국정원 국정조사 앞두고 검찰 전두환 일가 본격적 압수수색

국민들은 그동안 4대강 사업 정리는 '이명박근혜'라는 고리를 끊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이 이명박정부의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아 박근혜정부의 앞길을 순탄하게 다지는 첩경 역할에 해당하는 사안이지만 이보다는 현정권 앞에 가로놓인 '국정원' 산을 넘기 위한 정치적 징검다리의 성격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웬만해서는 실명보도를 삼가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감사원이 4대강 감사결과를 발표하자 "내 이름을 써도 좋다"면서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첫 포문을 연 것도 그렇다.

친이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4대강을 ‘정치제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마저도 감사원의 4대강 결과에 대해 비판했다. 4대강 사업 정리로 인해 당내 친이와 친박 갈등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
"난센스"라 해놓고…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에 대해 여당 내 잡음이 일자 이번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기 위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보여주기식 수사'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지난달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가 불거질 당시 박 대통령은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등 전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문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도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에서 해결을 못 하고, 이제야 새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새정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난센스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앞두고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자택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 대통령의 태도에 묘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는 것.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찾기가 '박 전 대통령의 성동격서 전략' 중 하나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다.

진통 끝에 통과한 전두환 추징법이 검찰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시작하는 단초가 됐다는 해석도 있지만 검찰 수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특위는 새누리당 정문헌·이철우 의원과 민주당 김현·진선미 의원의 특위 배제를 놓고 벌어진 논란 때문에 개점휴업상태였다.

이들 의원들이 모두 특위위원직에서 사퇴하면서 15일 만에 본격적으로 특위가 열렸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모든 이목이 쏠려 특위 진행 과정과 성과가 얼마나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이은 박 대통령의 다음 성동격서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위기 때마다 빛을 발하는 눈부신 탈출능력으로 위기의 달인이라 평가받는 박 대통령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채동욱 검찰총장 VS 전두환 '다시 이어진 악연'  

"무력 점거, 군사 반란 아니냐?"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 검찰이 사실상 전방위 수사에 착수한 배경에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채 총장은 취임 이후 전 전 대통령 등 고액 벌금 추징금 미납 집행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추징금 환수 특별팀 구성을 지시했다.

채 총장은 지난 95년 5·18특별법 제정으로 구성된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해 전 전 대통령의 공소유지를 맡은 전력이 있는데 이번 검찰수사와 맞물려 두 사람의 인연이 회자되고 있다.

채 총장은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인 전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을 위해 집중 추궁했다. 채 총장은 1996년 3월11일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전 전 대통령에게 "(12·12군사반란이)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출동한 것은 불법이지요?"라고 물었다.

전 전 대통령은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정식 계통입니까?"라고 반문했고 채 총장은 "국방부, 육본 등 정식 지휘계통의 지휘에 따라야 할 군부대로 하여금 대통령의 사전 승인조차 없이 무력으로 국방부와 육본을 점거하도록 한 것은 결국 군사반란이 아닌가요"라고 불법성을 강조했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그때 상황으로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채 총장은 특히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할 때 논고문 초안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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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