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백수들의 하루살이 비법

백수는 폐인? 편견은 버려!

백수 100만 시대다. 최근에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초보 백수부터 백수생활이 몸에 밸 대로 밴 베테랑 백수까지 그 유형도 가지가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얀 손’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오늘 하루도 어떻게 돈 안들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 있다. 부르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는 것이 모토인 활동적인 백수, 돈 안 들고 마음편한 집이 최고라는 은둔형 백수 등 나름대로 틀을 갖추고 생활하는 이 시대의 백수들. 그들을 만나 백수생활의 노하우와 고충에 대해 들었다.

실업자 100만 시대 들면서 백수들 생활 노하우도 늘어나
돈 안 들이고 외식, 몸만들기에 피부관리까지 하며 백수생활

대학 졸업 후 2년여 간 직장생활을 하다 1년 전부터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30)씨.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을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듣는 실업자 신세지만 나름대로 백수의 삶을 즐기고 있다. 처음 직장을 뛰쳐나올 땐 ‘설마 갈 곳 없을까’라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후에는 ‘정말 갈 곳이 없구나’란 것을 절감했고 쉬는 기간을 재충전과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

때문에 이씨의 백수생활은 나름대로 원칙과 체계가 있다. 밤새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컵라면으로 요기하고 집에 들어와 잠을 자는 전형적인 백수의 생활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아침에 눈을 떠도 특별히 갈 곳 없는 이씨지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는 나태한 생활은 하지 않는다. 함께 사는 부모님의 눈치가 보일뿐더러 무계획적인 삶이 몸에 밸 것이 두렵기 때문이란다.

쿠폰은 백수생활 필수품
발품 팔면 ‘화려한 백수’

식사도 규칙적으로 한다. 요리가 취미인 이씨는 적은 돈으로도 그럴싸한 밥상을 차리는 방법을 터득해 가족들에게 대접을 하며 점수를 딴다. 외식할 때도 최소한의 비용을 들인다. 백수시절 초기엔 집 근처 대형 할인마트에 시식코너에서 한 끼 식사를 때우곤 했지만 지금은 되도록 쓰지 않는 방법이다. 대신 틈틈이 인터넷을 뒤져 무료식사쿠폰이나 할인쿠폰을 모아 두고 외식을 하고 싶을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운이 좋으면 값비싼 뷔페 이용권이나 패밀리레스토랑 쿠폰을 찾을 수 있어 이와 관련된 사이트는 늘 그의 레이더망 안에 있다.

또 하나 이씨가 자주 찾는 외식장소는 각종 이벤트를 여는 식당이다. ‘20분 안에 다 먹으면 공짜’라는 조건이 붙은 식당 등 노력을 기울이면 돈이 없어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그가 노리는 음식점이다. 건강관리에도 부쩍 신경을 쓴다. 실직 초기,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 늘여갔던 술과 담배로 순식간에 건강이 악화된 경험이 있었던 이씨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최대한 몸에 나쁜 것들은 피하고 있다.

발품 팔아 각종 이벤트 참여하고 품평회 참석 제품까지 얻어
많은 백수들 방안서 취업사이트 뒤지며 폐인생활 하기도


대신 집 근처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에 꾸준히 다니며 체력을 키우고 몸매를 다듬는다. 한 달 동안 헬스장을 이용하는 데 드는 돈은 단돈 1만원. 사설헬스장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취업을 위해서도 꾸준히 몸매관리를 한다. 외모관리는 취업에도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씨는 “취업시장에서 내 경쟁상대 가운데는 파릇파릇한 20대도 많은데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틈틈이 문화생활도 즐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이씨는 영화표도 제 돈 내고 사지 않는다. 각종 업체에서 하는 경품 응모행사에 참가하는 등 공짜로 영화표 정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도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집 근처 구립도서관이 이씨의 단골 아지트. 이곳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상 도서를 읽고 취업공부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은 0원. 밥값도 비교적 싼 편이라 식사해결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단다.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장소로도 도서관은 요긴하게 쓰인다. 여자친구 역시 자신과 같은 취업준비생이기 때문에 나란히 앉아 데이트 같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것. 이처럼 알차게 시간을 활용하는 이씨지만 두려운 시간은 언제나 그를 찾는다. 그중 하나는 목돈이 드는 일이 생길 때다. 결혼적령기인 이씨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친구들의 결혼청첩장이 날아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를 조여 오는 것은 축의금에 대한 부담감. 3~5만원 정도의 적은 돈이지만 그 돈이 모였을 때는 목돈이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준비하는 등 소소한 것에 드는 돈도 무시하지 못해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도 불참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단다. 이씨는 “인간구실도 못하면서 몇 만원 아껴 뭐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날이 갈수록 비어가는 통장잔고를 보면 배부른 생각일 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은 이른바 ‘백조’로 불리는 여성 실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잃은 지 2년이 되어 간다는 최모(28·여)씨도 그중 하나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작은 회사에 입사한 최씨는 3년 전 직장을 나와야 했다. 해고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사정상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직장에서 나온 최씨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여성복 인터넷쇼핑몰을 차렸다. 그러나 경험 부족과 홍보 부족 등으로 그마저도 접어야 했다. 이후 보험회사 영업사원에 도전했지만 인맥도, 경험도 없던 그녀에게 영업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결국 백조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공짜로 피부관리까지
자기관리도 부지런히

2년여 간 백수생활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도 적지 않다. 특히 여자인 최씨에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 부분은 치장하고 꾸미는 데 드는 돈이라고. 돈이 없다고 해서 자신을 꾸미는 일을 멈추기에는 너무 젊은 그녀는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 최소한의 돈으로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무료마사지 이벤트 등을 찾아다니며 공짜로 혹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피부 관리 등을 받는 것이다. 물론 발품을 팔아 틈새정보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필수다. 동사무소나 구민회관 등에서 하는 피부마사지 강의 등에도 찾아다니며 저렴하게 피부 관리를 하는 비법을 배우기도 한다.

몸매 관리도 부지런히 한다. 헬스클럽 등에 다니는 대신 몇십원에서 몇 백원이면 컴퓨터에 다운 받을 수 있는 체조나 요가 등의 비디오를 보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실직자들이 모이는 인터넷카페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산행을 해 체력을 키우기도 한다. 이 모임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 될 뿐만 아니라 각종 취업 정보를 알 수 있게 해 줘 자주 참석하게 된다고 한다.

백수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간 죽이기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노하우를 쌓는 것도 내공이 필요하다. 최씨가 시간을 죽이는 방법으로 택한 것 중 하나는 서울 시내 곳곳을 탐방하는 일. 지하철요금만 있으면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그녀가 자주 찾는 곳이다. 박물관, 고궁 등 문화재가 있는 곳들과 삼청동, 인사동 등 볼거리가 많은 장소가 그곳이다. 동네 책방 주인들과 친목을 도모해 둔 것도 시간을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루일과는 이력서 쓰기
장판신세 백수도 수두룩

최씨는 “가끔 주인들이 가게를 비울 때 자리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그럴 땐 용돈도 벌고 책도 마음껏 볼 수도 있어 일석이조”라고 귀띔했다.
용돈벌이를 하는 방법은 또 있다. 각종 기업들이 하는 소비자 품평회에 참석해 소정의 돈도 받고 제품도 받는 것이 그중 하나. 최씨가 자주 참석하는 것은 화장품 품평회라고 한다. 새로 나온 화장품을 누구보다 먼저 써 보는 재미가 있는데다 제품까지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모든 백수들이 이씨나 최씨처럼 알찬 생활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많은 이들은 방안에 갇혀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수백 번씩 들락거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약 6개월 전 실직하고 실업급여로 살아가고 있는 김모(29)씨도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컴퓨터 앞.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접속하는 곳은 취업사이트다. 김씨는 새로 등록된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자기소개서에 등장하는 업체 이름만 바꾸면 이력서 작성은 완성되고 그렇게 작성된 볼품없는 이력서는 수많은 인사담당자들에게 보여지고 또 버려지게 되는 것. 그러나 면접을 보러오라는 회사는 100군데에 1~2군데뿐이라고. 그마저도 악덕기업으로 소문나 구직자들이 기피하는 회사나 다단계업체가 전부다. 김씨는 “아무런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습관적으로 입사원서를 내고 혹시 올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라며 “나태한 생활이 몸에 굳어지기 전에 일자리를 찾아야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3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가 몇 달 전 고향집으로 내려간 정모(27·여)씨도 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백수생활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 머무르며 취업준비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고향에 있는 부모님에게 차마 손을 벌릴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졸업 후 긴 공백 기간은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줄어들게 만들었다.

어쩌다 면접을 보게 되면 면접관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졸업한 뒤 몇 년 동안 뭐했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포장하기엔 너무 공백 기간이 길어 취업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정씨는 “취업을 못해 백수가 됐는데 백수로 지낸 시간들이 또다시 취업의 발목을 잡게 됐으니 암담하다”며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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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