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장자연 사건 핵심인물 전 소속사 대표 K씨 일본서 검거

드디어 ‘성접대’ 실체 드러나나?

고 장자연에 대한 폭행과 술시중 강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장씨 소속사 전 대표인 K씨가 지난 6월24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 장씨 사건의 핵심 연루자인 K씨가 체포됨에 따라 지난 4월 하순 일단락됐던 장씨 사건과 관련된 수사는 재개될 전망이며, 장씨 문건에 등장했던 유력 인사들의 줄소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 도쿄 호텔서 잡혀
강제추방 형식이면 1주일내 신병 인도 가능
경찰 측 문건에 올라 있는 모든 인사들 소환조사 벌일 방침
K씨 혐의 부정하면 혐의밝힐 수 있겠나 회의적인 반응도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6월24일 일본에 도피 중인 고 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 K씨가 이날 오후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고 밝혔다.
K씨는 오후 5시30분쯤 일본 도쿄 도심 미나토구의 한 호텔에서 지인을 만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해 있던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K씨를 검거한 도쿄경시청 조직범죄대책2과는 K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불법체류)로 체포, 유치했다.

K씨는 여권이 무효화된 지 42일 만에,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 83일 만에 검거됐다. 일본경찰 조사결과 K씨는 지난 6월23일까지 나가노현의 하쿠바 지역 펜션 등에서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 K씨는 일본 경찰에서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체포를 면하기 위해 일본에 체류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분당경찰서는 지난 4월24일 장자연씨 자살사건을 수사하면서 일본에 잠적해 있던 K씨를 강요, 협박, 폭행, 횡령 등 혐의로 기소중지했다.

경찰은 당시 K씨에 대한 신병 확보가 늦어지자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리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일본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K씨는 지난해 12월2일 ‘90일짜리 무비자 여권’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태국에서 체류 기간을 연장해 지난 3월4일 일본으로 재입국, 6월1일로 무비자 체류 기간이 만료됐다.
경찰은 여권 무효화 조치를 통해 지난 5월14일 K씨의 여권을 무효화했고 K씨는 이때부터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됐다. 경찰은 K씨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한 절차를 법무부를 통해 일본 당국과 협의 중이다.

지인 만난다는 첩보 입수
잠복경찰에 붙잡혀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신병을 넘겨받을 경우 길게는 두 달까지 걸려 강제추방형식으로 K씨를 송환받는 쪽으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추방 형식을 밟으면 질병·채권·채무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일주일이면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다.
경기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장씨 자살사건의 핵심 인물인 K씨가 한국에 도착하는 대로 즉각 수사를 재개할 것”이라면서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계장은 지난 4월24일 중간수사결과가 ‘부실 수사’였다는 지적에 대해 “기존 수사는 장씨의 문건 하나만 갖고 한 수사였다”며 “하지만 사건 전반을 꿰고 있는 중요 인물이 체포된 만큼 수사가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에 올라 있는 모든 인사들의 소환조사도 벌일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4월 말 장자연 사건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4월24일 수사대상자 20명 중 9명을 접대 강요,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했다.

K씨 성상납 강요 사실
얼마나 털어놓을지 미지수

금융계와 IT 업체 인사를 비롯한 5명에 대해선 참고인 중지 조치를 취했다. 혐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할 만하지만 핵심 참고인인 K씨를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를 잠정 중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K씨 체포로 경찰의 추가 수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은 참고인 중지된 5명만이 아니다. 영화감독 등 내사중지된 4명에 대한 수사도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장씨와 한 차례 이상 만난 것으로 조사됐지만 경찰은 접촉 경위 등에 대한 구체적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장자연 문건’에는 ‘K씨가 잠자리를 강요했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장씨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유력 인사들이 신인 여배우에게 성상납을 받았다는 대형 스캔들로 비화한 이유다. 그러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기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수사 대상자들이 극구 부인하는데다 K씨의 진술이 없어 실제로 성상납이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K씨가 경찰 조사에서 성상납 강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털어놓을지는 미지수다. 경찰은 성상납에 관한 참고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K씨를 추궁하면 그가 성상납 관련 내용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문건 내용에 대해 수사하면서 600명이 넘는 참고인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계 인사 등 새로운 인물이 상당수 등장했다.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된 전직 언론인도 K씨의 강요로 장씨와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동료 연예인의 진술을 통해 찾아낸 인물이다.이 때문에 K씨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유력 인사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K씨가 접대에는 일가견이 있어 유력 인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변의 진술도 수차례 나왔다.K씨 소속사 전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건설사 임원 등 재계 유력 인사들과의 약속이 적힌 스케줄표가 나오기도 했다.

문건에 담긴 내용
모두 진실인지에 초점

그렇다면 혐의자 처벌은 어느 정도 이뤄질까. 불구속 입건된 3명은 혐의가 이미 상당부분 드러난 만큼 처벌이 가능할 거란 예측이 우세하지만 술자리에 동석해서 강요죄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은 과연 혐의를 밝힐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더 크다.

한 검찰 관계자는 “K씨가 술접대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혐의를 부정하면 피해자가 이미 사망하고 없는 상황에서 혐의를 밝힐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한 연예관계자는 “유력 인사를 포함해 그 많은 수사대상자들을 다시 불러서 대대적 조사를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탄했다.

경찰은 두 달 가까운 수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장씨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 ▲‘장자연 문건’의 진위와 유출 배경 등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채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의 향후 수사는 ‘문건’을 장씨 혼자 만들었는지, 왜·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과연 모두 진실인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故 장자연 사건일지
▲2009년 2월28일=탤런트 장자연 호야스포테인먼트 대표 유장호씨 사무실서 문건 4장 작성.
▲2009년 3월1일=장자연 유장호씨에게 편지 3장 전달.
▲2009년 3월7일=장자연 분당 자택서 자살.
▲2009년 3월8일=유장호씨 자신의 미니홈피에 ‘장자연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 아니다’ ‘장자연 문건 있다’ 밝혀.
▲2009년 3월10일=언론이 장자연 문건 일부 공개.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 담김.
▲2009년 3월12일=장자연 유족과 유장호씨 서울의 한 사찰서 ‘장자연 문건’ 소각.
▲2009년 3월13일=언론이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장자연 문건’ 찾아 보도하며 자살 원인에 대한 의혹 제기.
▲2009년 3월14일=우울증에 의한 자살사건으로 수사를 종결했던 경찰이 자살관련 의혹과 관련해 재수사에 착수.
▲2009년 3월17일=장자연 유족이 유장호씨와 문건을 보도한 기자 등 3명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문건에 거론된 인물 등 4명을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
▲2009년 3월18일=유장호씨 기자회견 열어 문건 다 태웠다고 밝힘.
▲2009년 3월20일=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수사전담팀 27명에서 41명으로 증원.
▲2009년 3월20일=경찰 유장호씨 출국금지 조치.
▲2009년 3월21일=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 K씨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 실시. 건물 3층엔 침대와 샤워실이 있었음.
▲2009년 3월24일=경찰은 브리핑에서 “수사대상자는 유족이 고소한 7명과 문건에 거론된 인물 7명, 2명이 겹쳐 모두 12명”이라고 밝힘.
▲2009년 3월25일=유장호씨 분당경찰서에서 조사받음.
▲2009년 3월31일=소속사 전 대표 K씨에 대해 외교부에서 여권반납명령 통지.
▲2009년 4월2일=경찰 K씨에 대한 체포영장 신청해 범죄인 인도요청 절차 착수.
▲2009년 4월3일=경찰 K씨 로밍 휴대전화를 이용해 위치를 추적하겠다고 밝힘.
▲2009년 4월3일=경찰 오전 브리핑에서 “수사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밝힐 거다. 실명까지 밝힐 거다. 문건 내용도 다 밝히겠다”라고 말했다가 7시간 후에 “공익을 판단해 실명과 혐의내용 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말 바꿈.
▲2009년 4월6일=경찰 브리핑에서 “수사대상자 9명 중 6명을 희망하는 장소에서 만나 1차 진술을 확보했고 나머지 3명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힘.
▲2009년 4월7일=유장호씨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받음.
▲2009년 4월8일=유장호씨 전날에 이어 경찰 조사받음. 경찰에 출석하며 ‘3개 언론사와 기자 4명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소송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힘.
▲2009년 4월9일=경찰 유장호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
▲2009년 4월15일=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입기자단 간담회서 “사법처리 대상이 적어도 1~2명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해 4명 이상이 사법처리 대상임을 시사.
▲2009년 4월24일=경찰 장자연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술접대 강요,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 혐의로 모두 9명 입건.
▲2009년 6월24일=일본 도쿄에서 소속사 전 대표 K씨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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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