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의 황제’ 이승철의 목소리는 추억이고 그리움이고 설렘이다. 1985년 데뷔한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음악팬들 곁에서 숨쉬며 각자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여전히 그리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10집 <뮤토피아>를 노래한다. ‘이승철’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한국 가요계에서 그의 위치는 충분하다. 그런데도 이승철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일요시사>는 이승철을 만나 그의 음악과 가족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이승철 자신 철저히 배제…한국적 록 처음 완성
“실제로 연주한 라이브 음악 들려주고 싶었어요”
최근 10집 <뮤토피아>를 발표한 이승철은 방송 활동을 앞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솔로앨범 후 처음으로 록음악으로 활동한다는 기대에 브리티시 록 스타일의 ‘손톱이 빠져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곡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의 급속한 사랑을 받았다.
음악적 깊이 만족
섬세한 사운드가 일품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중략)/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등 애절한 가사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실제 5월 마지막 주 라디오 방송횟수 1위는 ‘손톱이 빠져서’이지만 10위권에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도 올라왔으며 온라인이나 모바일 차트에서도 두 곡이 함께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이승철은 “이번 10집 수록곡 중 국민들의 자연스러운 합의에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사랑을 받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노래하는 이유가 된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번 앨범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는 타이틀곡 ‘손톱이 빠져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와 달라며 손톱이 빠지도록 꼭꼭 눌러 편지를 쓴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의 노래 ‘긴 하루’를 작곡한 전해성이 작사와 작곡을 했다. ‘황제 밴드’가 들려주는 섬세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인기가 너무 뜨겁다. “제목이 좀 강하다”고 하자 “‘총 맞은 것처럼’보다는 덜 아프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떤다.
“이번 앨범은 우리 밴드 ‘황제’팀이 직접 프로듀싱하고 연주했다는 점에서 음악적 상징성이 큽니다. 지난 앨범은 모두 세션들과 작업했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과 편곡의 다양성에 한계가 많았지요.”
그는 이번 음반에선 이승철 자신을 철저히 배제했다. 자유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14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자신의 밴드 리더이자 베이시스트 최원혁에게 전곡의 음반 프로듀싱을 맡겼다. 80일간의 노력과 연구 끝에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켰고 ‘손톱이 빠져서’를 선보이게 됐다.
이승철은 “‘황제’ 밴드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 한국적 록음악을 처음 완성했다. 지금껏 발매된 음반 중 10집이 가장 음악적인 깊이가 있고 만족스럽다”며 “그룹 부활의 보컬 시절을 그리워하는 올드 팬들에게는 밴드 음악의 감성을 채워주는 앨범이다. 젊은 팬들에게는 기계음 대신 실제로 연주한 라이브 음악을 선물로 들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록과 발라드밖에 못한다는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보사노바와 레게 등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의 음악도 다뤘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외에 ‘인 더 러브’ ‘뒤돌아보면’ ‘무빙 스타’ 등 총 13곡이 수록돼 있다.
“영화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블록버스터가 제작되는 것처럼 음반도 제작비를 많이 들여 구매력 있게 만든 앨범이 나와야 합니다.”
이승철은 이번 음반에 4억원의 돈을 들였다. 굳이 돈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의 10집은 자타가 공인하는 ‘웰메이드’ 음반이다. 책처럼 만든 앨범은 그 자체로 소장 가치를 지닌다.
자신의 솔로 앨범이 두 자리 수로 들어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들인 음반으로 팬들을 만난다. 그의 여전한 고집스러움이 참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음반이 불황일수록 앨범은 더욱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바로 ‘역발상’.
불황은 곧 기회
4억 ‘웰메이드’ 음반
이승철은 “음반계의 불황은 내게 곧 기회다. 이럴 때일수록 성의 있는 음악을 시도해야 한다. 디지털 싱글을 자주 발매하는 요즘 가요계에서 많은 제작자들이 단기간에 짧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지금을 두고 호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가요계 발전을 저해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음반 시장은 축소됐지만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기에 음악인들에겐 오히려 기회”라며 “불황일수록 아낌없이 투자해 최고의 퀄리티를 선보일 줄 아는 책임감이 필요할 때”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승철은 이번 자신의 음악을 두고 “생각의 전환에서 시작된 최고의 앨범이었다”고 자부했다.
‘역발상’ 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바로 아내 박현정씨다. 이승철의 국내외 활동을 항상 함께하며 귀가 얇은(?) 이승철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내조를 톡톡히 하고 있다. 이승철은 재혼을 한 후 한층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가수가 됐다.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나 콘서트 현장에도 아내인 박현정씨와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생후 10개월인 아기와 항상 함께한다.
재혼 후 한층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가수
“중견 가수로서 책임감 강하게 느낀다”
아내 덕에 철저한 다이어트로 체중도 15kg 이상 감량해 미중년의 모습을 되찾았다.
“‘둘째딸 백일이나 돌잔치 때 브래드 피트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이야기에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 살을 뺐어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닭가슴살과 야채로 된 식단을 먹지요. 물론 술도 폭탄주 대신 열량이 적은 와인을 즐깁니다. 이젠 몸이 가뿐해져 장시간 녹음과 공연도 문제없어요. 가족, 음악, 믿음, 인연, 팬이라는 다섯 손가락 같은 날개로 나만의 뮤토피아를 훨훨 날고 싶어요.”
이승철은 음악시장에 대한 걱정과 함께 중견 가수로서의 책임감도 강하게 느낀다고 했다. 이런 때일수록 중견가수들은 더 좋은 음반을 만들어 후배 가수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9집 발매 당시 “CD로 내는 마지막 음반이 될지 모른다”고 했던 그가 전작보다 더 알찬 10집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쉽게 음반을 내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투자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11집과 12집은 더 많은 돈과 정성을 쏟으려 합니다.”
“아내와 두 딸은
내 평생의 날개”
그렇다면 10집 앨범 타이틀 ‘뮤토피아’처럼 가수 이승철이 꿈꾸는 음악세계는 어떤 것일까.
“음악 인생은 40세부터가 아닌가 싶어요. 결혼 후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하고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등을 깨닫기도 했고요. 이제는 팬이 좋아하는 음악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제가 하고 싶은 음악과의 조율을 거쳐 또 다른 저의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