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풀리는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전말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5.30 14: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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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 모아 담더니 한번에 모두 총살

[일요시사=정치팀]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에 전국이 피로 물들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는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이들만 3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학살’이었다. 단지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낙인이 그들을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진실은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했다.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고통에도 ‘빨갱이’라는 족쇄 때문에 쉬쉬하며 오랜 세월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대적인 학살이 자행된 지 6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보도연맹’은 몇몇 공안 담당검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다수를 차지했던 사상범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기타 사회지도자들의 검토와 동의를 거쳐 만든 사실상 관변단체다. 다시 말해 ‘빨갱이 관리조직’이었다. 보도연맹은 좌익인사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보도연맹원(이하 연맹원)으로 가입시켜 한국전쟁 직후 이들을 총살하거나 무자비하게 때려죽였다.

회원 가입 강제 할당
‘데스노트’도 실적주의

보도연맹 중앙본부에는 내무부 주관에 법무부, 검찰청, 국방부 등 행정부의 각 부서가 합동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공조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정부가 직접 민간인 학살에 개입할 수 있었던 구조다.

좌익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전향하거나 남조선노동당을 탈당한 이들이 당초 보도연맹 가입 대상자였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연맹원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강제 할당에 의한 회원 가입방식에 의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좌익뿐만 아니라 이승만정권의 테두리 안에 명확하게 포함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입대상, 즉 학살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연맹원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1950년 6월15까지 계속됐다. 보도연맹 중앙본부는 각 지역 경찰들에게 연맹원을 모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에 따라 마을 구장(이장) 또는 자수한 마을 책임자들이 사람들을 연맹원으로 가입시켰다.

비료나 고무신 받으려
자진해서 도장 찍어


좌익전향자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도 보도연맹 가입을 권유받았다. 거부할 경우 품앗이나 배급 등 마을 공동생활에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부는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보도연맹 현장 생존자 임모씨는 “이승만정권부터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입했다. 당시 마을의 젊은 남자들은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권유에 따라 가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라고 진술했다.

참고인 우모씨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마을 곳곳에 ‘자수하면 살고, 아니하면 죽는다’라는 글귀를 엄청나게 써놓았다. 그게 보도연맹에 가입하라는 글이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아도 죽고, 해도 죽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단체의 성격도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입 도장(주로 지장)을 찍은 가입자도 있었다. 무학의 농민들이 그 대상으로, 그것이 자신을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승만정권 테두리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입대상
현장 생존자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입했다”

진상조사 신청인(이하 신청인) 박모씨는 “학살이 있기 한 달 전쯤 품앗이도 하고 비료나 고무신을 타려면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내용도 모르고 남편이 도장을 찍었다”라고 말했다.

현장 생존자 유모씨는 “사건(학살)이 일어나기 20~30일 전쯤에 지서(파출소)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마을사람 12명과 함께 갔다. 거기에 순경이 저희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종이(보도연맹 가입신청서)를 한 장씩 나눠주면서 아무 설명도 없이 무조건 ‘보도연맹에 가입하라’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이름에 지장을 찍었다. 당시 함께 지서로 간 사람들은 모두 좌익 또는 우익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저는 옆 마을에 거주하며 좌익활동을 했던 전영문이 우리 이름을 일러주어 이를 근거로 경찰에서 가입시킨 것으로 짐작했다”라고 진술했다.


이들은 모두 경찰에 의해 불시에 소집됐다. 경찰서에 모여 반공교육을 받거나 노역을 했다. 심한 경우 우익단체 단원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신청인 김모씨는 “진천면 문봉리의 강주완은 좌익활동을 했다고 우익단원들이 집의 세간을 부수고 구타하여 앓다가 죽었다”라며 구타로 말미암아 살해당한 비극적인 사연을 전했다.

그리고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긴급명령1호를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 판단 하에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약식재판과 사형선고가 가능하게 됐다. 당시 경찰서 순경으로 근무했던 김모씨는 전쟁이 일어난 날 상부로부터 연맹원 명단을 올려보내라는 전통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 후 2~3일에 걸쳐 연맹원들을 소집시키라는 지시가 각 지역 경찰서에 내려왔다. 대학살의 전조가 울린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정권
사건 거론 철저 금지

각 지역 관계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맹원들을 소집했다. 종을 치거나 경찰이 논밭으로 찾아다니기도 하고 교육이 있다거나 비료를 나눠 준다거나 피난을 시켜주겠다고 속여서 모으기도 했다.

“7월8일 오전에 들에서 논을 매고 있던 중 징소리를 듣고 가보니 마을 마당에 (마을 청년) 40여 명이 모여 있었고 총을 맨 지서 직원 1명과 소방대원 10여 명이 있었다. 그들을 따라갔는데, 그때까지 전쟁이 난 것을 몰랐다.”

“이웃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 마당에 가면 비료 한 짝을 준다 하니 아버지에게 연락하라’라고 하여 들에서 일하던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지서에서 나온 경찰관들이 ‘인민군이 쳐들어와 난리가 났다. 우선 연맹원들로부터 피난을 시켜주겠다’라고 했다.”

당시 소집된 마을 사람들의 진술이다. 이들 대다수는 소집 및 감금에 저항하거나 불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고 자신에게 큰 처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맹원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 구타로 살해당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군인들은 저희를 공산패라고 하며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리고 나중에는 쇠로 창을 만들어 옆구리를 쑤셔 몸에서 피가 났다. 때리다가 총 개머리판이 부리지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 생존자 임모 씨의 진술이다.

6·25 발발하자 보도연맹원 소집 지시 떨어져, 학살의 대전조
소송 50건 진행, 오는 6월 소멸시효 끝나 구제 방법 전무


연맹원 딱지가 붙은 수많은 민간인은 1950년 7월 초에 창고, 갱도, 산골, 우물 등에서 총살당하거나 수류탄 등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사상자만 하루에 1500명에 달했다.

이승만정권에서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을 거론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됐다. 박정희정권은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유골을 수습한 유가족들을 빨갱이로 몰아 혁명재판에 부쳐 그들을 압박했다.

또한 이후에도 피해유가족들을 요시찰 대상자로 분류해 감시했다. 이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정부 기록들은 모두 소각됐으며 진상은 완전히 은폐됐다.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60년이 지난 후,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배상책임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을 배척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에 의해 피해자로 판명된 유가족들은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조사위의 활동이 2010년 6월 이명박정권에 의해 정지돼, 조사위로부터 피해자 결정을 받지 못한 유가족들은 더 이상 국가에 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피해자, 조사위 결정 받아야
보상입법 마련도 어려워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사위에 의해 손해배상사건 위자료 규명 결정이 난 이후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처음부터 소멸시효가 큰 문제가 됐다”라며 “조사위의 결정이 있은 후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끝나 이 사건을 더 이상 다룰 수 없다. 6월 말이 되면 더 이상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정을 받은 피해 유가족들에게 이 같은 사실이 많이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시효가 완성될 경우, 보상입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피해유족들이 보상받기는 어렵지만 그것도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대법원에서 조사위로부터 피해자로 결정하더라도 그 요건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어, 막상 손해배상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피해 규모가 약 800억 정도로 국가 예산에 대한 정책적 고려를 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관련 소송은 현재 50건 정도 진행되고 있다. 피해유족 윤모씨는 “아버지가 보도연맹 연루 및 좌익으로 몰려 억울하게 참살 당했다. 신문에서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 기사를 읽고 아버지의 억울함과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 때 잔인한 사살 현장에서는..

생존자 확인하고 ‘확인사살’

1950년 7월11일 새벽, 경남 창원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가보도연맹원으로 가입한 민간인들이 창고에 감금돼 있었다.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간 군인들은 구금자에게 기관총과 소총으로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수류탄을 투척했다.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 김모씨는 “군인들은 ‘산 사람은 일어나면 살려준다’라고 했고, 그 말에 총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일어서자 재차 기관총을 쏘았다”라고 과거사조사진상위원회와의 면담을 통해 밝혔다.

또 다른 생존자는 “1차로 총을 쏜 후 군인들이 말하길 ‘산 사람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문 앞으로 걸어 나오면 살려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생존자 몇 사람이 ‘대한민국 만세’를 하며 문 앞으로 걸어 나가자 군인들이 그들을 총으로 사살했다”라고 전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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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