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터뷰가 700호에 실려요? 정말 운이 좋은데요.”
‘가요계의 요정’에서 ‘뮤지컬 디바’로. 옥주현의 지난 10년을 요약하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2000년 이후 뮤지컬 붐을 타고 많은 스타급 연예인들이 뮤지컬 무대를 밟았지만 살아남은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옥주현이다. 그녀는 요즘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시카고>를 성황리에 공연하고 있다. 외형상 화려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하나면 보이지 않는 것은 더 많은 법. 지령 700호를 맞은 <일요시사>는 ‘뮤지컬 디바’로 우뚝 선 옥주현을 만나 어떻게 그리 쉽게(?) 자리 잡았는지 궁금증을 풀어 보았다.
록시 역 맡아 세 번째 출연…“매력적인 배역”
곱지 않은 시선 딛고 ‘연습 또 연습’으로 승부
성남아트센터. <시카고> 연습이 한창인 가운데 인터뷰를 위해 잠깐 짬을 낸 옥주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지난 2007년과 2008년 <시카고>에서 코러스 걸 록시 하트를 맡은 그녀는 이번이 세 번째 출연이다. 이젠 록시 하트 역에 100% 녹아들지 않을까.
“너무 좋아하는 뮤지컬이고 좋아하는 배역이라 기분 좋아요. 100%를 위해 항상 노력하죠. <시카고>는 춤이 정말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에요. 몸을 움직이는 각도까지 정확해야 해요. 절도 있으면서도 섹시함과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죠. 40~50대가 돼서도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에요.”
못 말리는 욕심쟁이
옥주현에게 이번 <시카고> 공연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연예계 대선배인 허준호, 인순이와 함께 무대에 서기 때문. 2000년 <시카고>의 초연 멤버였던 두 사람은 9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셈이다.
“처음에는 눈도 못 마주쳤어요. 근데 벨마 역을 맡은 인순이 선배님을 꺾어야 제가 맡은 록시 캐릭터가 산다는 생각에 기죽지 않고 덤벼들었죠. 인순이 선배님이 ‘오호, 요것 바라’하는 눈빛을 보내시던걸요. 남들은 돈 내고도 받기 힘든 연기 공부를 전 돈 받으며 하고 있어요.”
텃새가 심한 뮤지컬계에서 옥주현은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연습 또 연습’에 매진했다. 단원들과 똑같이 연습하고 고생하지 않으면 잠시 들렀다 가는, 이방인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배우들이 열심히 연습하는데 제가 게을리 하면 안 되죠. 신인의 자세로 열심히 하니까 단원들도 저를 챙겨주기 시작했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이젠 저를 향한 시선이 달라진 걸 체감할 수 있죠. 제가 노력한 시간들에 뿌듯함을 느껴요.”
최근 뮤지컬 1번지인 뉴욕 브로드웨이 <시카고> 공연장 외곽에 옥주현의 얼굴 포스터가 내걸려 화제다.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스타로 성장했다는 의미인 셈.
“브로드웨이는 공연장에 로비가 없어서 공연 시간 전까지 공연장 밖에 서 있다가 시간이 되면 들어가거든요. 대부분 관객들이 기다리는 동안 벽 주위를 둘러보면서 담소를 나누는데 벽에 걸린 제 사진을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뿌듯해요.”
그녀를 논하면서 핑클을 빼놓을 수 없다. 핑클 멤버들과는 요즘에도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효리 언니만 스케줄이 안 맞아서 <시카고>를 못 봤어요. 이번에 초대하려고요. 다들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가는 모습이 좋아요.”
옥주현은 자칫 ‘워커홀릭’으로 비춰질 소지가 다분하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일을 이것저것 벌여 놓는다. 19세에 핑클로 데뷔한 그녀는 솔로 앨범을 통해 여성 보컬리스트로 제 영역을 다졌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 인기 진행자의 자리에 오르더니 뮤지컬로 또 한 걸음 나아갔다. <아이다> <시카고> <캣츠> 등의 작품을 거치며 인기 가수에 대한 뮤지컬계의 선입견을 극복, 어엿한 배우의 자리에 섰다. 올해는 또 하나의 직함을 추가했다. ‘교수님’ 옥주현이다.
“그냥 기회가 오면 하고 싶고 잡고 싶어요. 일단 저질러 버리죠. 어쩔 수 없어요. 욕심이 생겨요. 학생들을 보면 예전 생각이 참 많이 나죠. 내가 한창 핑클로 바쁠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바쁘고 정신없던 시기를 거쳐 여기까지 왔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서른이 되기 전엔 불안하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세상을 여유 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옥주현 뉴욕 진출 사건?
그녀에게 이제 남은 도전은 연기자. 옥주현은 이미 한 차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지난 2002년 현직 가수들인 홍경민, 김장훈, 주영훈 등이 주연을 맡은 영화 <긴급조치 19호>에 출연했던 것.
“뮤지컬도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 많아요.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도 해보고 싶어요. 연기를 안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은 아니에요. 잘할 수 있는 배역이면 하겠는데 지금까지 들어온 배역들이 ‘저와 잘 맞을까’ 물음표만 생겨 섣불리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아직은 두려운 것 같아요.”
<인터뷰 후기> 진솔한 매력에 스르르
옥주현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연예인들은 모두 기(氣)가 보통이 아니라 인터뷰를 하고 나면 힘이 빠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옥주현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직하고 당돌하기에 더욱 기에 눌린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난 뒤 든 생각은 옥주현의 인기는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란 사실이다. 밝은 웃음 뒤에는 일에 대한 욕심과 프로로서의 고민이 항상 공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