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에서 엑스터시까지 ‘길고 긴 환각의 역사’

뽑아도 뽑아도 뿌리는 ‘건재’

해방이전
우리나라에 최초로 유입되어 남용된 마약류는 아편으로서 그 사용이 시작된 시기는 구한말로 추정되며 당시 중국인 ‘양대인’이라는 자가 아편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제점령기 세계대전으로 아편가격이 급등하자 함경도 등 산간지역에서 양귀비 비밀재배가 시작됐었고 이에 조선총독부는 1912~1914년에 걸쳐 아편 단속법령을 공포해 아편재배 및 사용자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해방이후~1950년대
1945년 해방과 함께 귀환한 동포 중 아편에 중독된 자가 많았다. 또 농촌지역에서 양귀비 밀경작이 확산되어 아편중독자가 대폭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1957년 4·23 마약법을 제정해 양귀비 재배자 및 아편 사용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1960년대
5·16군사정부는 마약사범 근절을 위해 1961년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임시법에 마약사범에 대한 가중처벌을 두어 강력한 단속을 실시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63년부터는 합성 마약인 메사돈으로 인해 마약중독자수는 오히려 늘었고 1965년부터 대대적으로 마약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시작해 1967년에 이르러서야 마약사범이 감소했다.

1970년대
섬유용으로만 재배되던 대마가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경부터 도취감을 일으키는 물질로 전파돼 대마담배 흡연자가 생겨났다. 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기지촌을 중심으로 대마흡연자들이 점차 늘었다. 당시 단속법규가 없어 단속을 하지 못했고, 1970년 8월7일 습관성의약품관리법을 제정해 단속을 시작했으나 이미 대마초 흡연이 사회각층으로 전파돼 1975년에는 대학가, 연예계 등에 대마초가 확산됐다. 이에 정부는 습관성의약품관리법에서 대마를 분리시켜 대마흡연자 1490명을 단속했다. 이로 인해 대마초사범은 급감했지만 필로폰 밀제조량이 급증하는 현상이 생겼다.

1980년대
1980년대 들어 가장 심각하게 대두된 약물은 메스암페타민(속칭 필로폰)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한국이 필로폰을 제조해 일본 등지에 수출했으나 한국에서는 복용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경제성장과 함께 유흥, 향락문화가 발전하면서 필로폰이 국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향락문화가 극에 달했고 필로폰을 복용하는 이들이 크게 증가했다.
 
1990년대
필로폰 중독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정부는 심각성을 인식해 1989년 대검찰청에 마약과를 신설하고 필로폰 제조조직에 대한 집중적 단속을 전개했다. 그 결과 89년부터 91년까지 3년간 국내의 거의 모든 필로폰 제조기술자를 검거하고 필로폰 제조조직을 근절시켰다. 이에 따라 1990년부터 92년까지 3년간 한국은 국내에서 마약을 찾아볼 수 없는 소위 마약 진공시대(Drug Vacuum Period)를 맞이했다. 그러나 필로폰 가격이 폭등하면서 대만, 중국 등 동남아에서 값싼 필로폰이 밀수입됐다. 과거 필로폰 최대 수출국이었던 한국은 필로폰 수입국이 됐고,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마약수출국이 수입국으로 전환된 최초의 성공사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89년부터 91년 사이 검거됐던 필로폰 제조기술자들이 출소해 중국으로 건너가 필로폰을 제조해 한국으로 밀수출했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난과 맞물려 필로폰 중독자가 증가했다.

2000년~현재
급격한 개방화와 국제화 추세로 인해 외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되자 2000년대부터는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필로폰에서 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야바, 엑스터시 등 신종마약류가 국내에 밀반입됐다.
또 최근에는 마약류 밀수출의 중간경유지로 한국을 이용하는 국제마약조직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한국을 경유하는 마약류사범이 증가하고 있다.
 ※ 출처 : 국가정보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