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탈북 간첩 진실게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16 20: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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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에 '빨갱이' 자백?…'북풍' 노렸나

[일요시사=사회팀] '댓글 조작'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북풍'을 겨냥,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최근 법정 공방에 돌입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국정원발 대형 공안사건이 터졌다. 서울시 공무원 중 간첩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너희 오빠가
간첩이라 말해"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 유모(33)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 지령에 따라 탈북자 리스트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지난 1월13일 긴급 체포됐다. 자신이 관리 중이던 탈북자 명단과 한국정착상황, 탈북자 생활환경 등의 정보를 북으로 넘긴 혐의다.

지난 2004년 북에서 탈출한 유씨는 서울시에서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중국을 통해 독재정권의 폐쇄성을 알게 된 후 탈북을 결심했다"던 유씨는 자신이 택한 나라에서 간첩으로 몰리는 비극에 처했다.

유씨는 북한에서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로 알려졌다. 함경북도에서 1년간 외과의사로 활동했던 유씨는 탈북 후 서울 Y대에서 중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자랑했다.


지난 2011년 6월에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 특별공채에서 2년 계약직에 합격, 체포 전까지 1만여명의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 가도를 달린 셈. 그래서 유씨는 탈북자의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불리며 국내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다.

그러나 유씨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가 있었다. 바로 출생의 비밀. 유씨는 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으로 부모가 모두 한족인 '화교'였다. 이와 관련 유씨의 지인은 "탈북자 중 화교가 여럿 있는데 유씨도 그 중 1명"이라며 "이 때문에 유씨는 평소 다른 탈북자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유씨의 지인은 "유씨가 화교 출신임에도 탈북자로 국내에 정착해 성공을 거듭하자 자연스레 주변의 시기를 많이 받았다"며 "워낙 탈북자 사회에서 유명했던 터라 그를 둘러싼 루머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북한에서 화교는 성공한 집단에 속한다. 대다수의 화교가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큰돈을 만지기 때문. 유씨 가족 역시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탓에 일반 주민보다는 부유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유씨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한다.

서울시 공무원 긴급 체포…국정원 6년전부터 내사
'화교 출신 엘리트' 탈북자 정보 북에 넘긴 혐의

한국 국적을 취득한 유씨는 대학 졸업 후 무역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이른바 '환치기' 사건에 연루돼 2008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단순 가담이 인정된 유씨는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났다. 당시 검찰은 유씨가 '화교' 출신인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유씨는 어머니의 장례 소식을 듣고 북으로 입국했다가 국정원의 조사를 받았다. 유씨의 입국 사실을 신고한 건 유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또 다른 탈북자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씨는 중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북한에는 화교로 등록돼 있어 남북을 오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유씨의 간첩 행위를 의심했다. 특히 유씨가 북한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직원에게 소위 '댓가'를 제공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추궁했다.


하지만 유씨는 소위 '프로돈'이라 불리는 관례적인 선물을 보위부에 제공했을 뿐 간첩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정원은 유씨의 이적행위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 뒤에도 유씨는 사업을 목적으로 북한에 서너 차례 입국했다. 그리고 국정원은 유씨의 월북 사실을 전해 들으며 그가 간첩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확신했다.

현재 국정원은 유씨가 북으로 보낸 소포에 기밀 정보가 담긴 노트북을 동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씨는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유씨를 2007년부터 감시했던 국정원은 2011년에도 경찰을 동원, 유씨를 내사했다. 유씨와 적대관계에 있던 탈북단체가 유씨를 간첩으로 신고한 데 따른 대응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씨는 여동생인 Y(26)씨를 북한에서 빼내 한국으로 입국시켰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남한에 온 탈북자가 북에 있는 가족을 빼내는 일은 매우 흔하며, 국내 탈북자 중 상당수는 아직 이북에 가족을 두고 있어 이들과 상시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즉 유씨 역시 다른 탈북자들처럼 자신의 여동생과 접촉해 그(Y씨)를 빼냈다는 설명. 그러나 유씨 입장에서는 국정원이 쳐놓은 덫에 걸린 셈이었다.

체포된 공무원
구금된 여동생

유씨의 여동생 Y씨는 한국인 이름을 가진 여권을 들고 중국을 경유, 한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이를 파악하고 있던 국정원은 지난해 10월30일 Y씨를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로 이송했다. 그리고 3개월여 동안 Y씨에 대한 강제 수사에 들어갔다. 여동생 Y씨를 통해 오빠 유씨의 간첩 행위를 입증하겠다는 국정원의 노림수였다.

국정원은 조사 과정에서 Y씨의 자백을 받았다. Y씨의 육성을 담은 녹음 파일이 그 증거였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11월, 국정원은 Y씨를 통해 유씨가 간첩일 수 밖에 없는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2013년 1월, 유씨를 체포하기 위한 영장이 발부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유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같은달 1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유씨의 신병을 국정원으로부터 넘겨 받아 구속수감했다. 그리고 2월26일 유씨에게 여권법 위반 혐의 등을 추가로 적용,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이 밝힌 주요 혐의는 유씨가 탈북자 200여명의 신원을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통해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유씨가 구속기소된 다음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탈북 화교 남매 간첩사건에 대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검찰과 국정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유씨 여동생인 Y씨의 허위진술에 따른 조작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앞서 Y씨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의 지령에 따라 오빠 유씨의 간첩행위를 돕기 위해 국내로 잠입, 탈북자 신상정보를 넘겨 받아 북한에 전달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이 자백이 국정원의 회유와 압박에 의해 꾸며진 '거짓 자백'이란 폭로였다.

당시 구명 요청을 받고 사건을 접수한 민변은 중국에 거주하는 유씨 남매의 아버지와 접촉, "딸이 자백을 했다면 정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거짓 증언"이란 회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씨의 방북 일시와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하면 Y씨의 자백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란 설명이었다.

이에 유씨의 변호인단은 경기도 시흥 소재의 중앙합동신문센터로 향했다. 불법 구금돼있는 Y씨를 접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정원은 Y씨와의 접견을 불허했고, 서신 교환도 가로막았다. 이 상황에서 유씨는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며 Y씨와의 대질신문을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증거인멸을 이유로 유씨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Y씨의 불법 구금은 6개월 넘게 이어졌다.


국정원 "간첩"
민변 "조작"

3월4일, 독방에 갇혀 있던 Y씨가 빛을 봤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인신구제청구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열린 증거보전절차에서 Y씨와 민변은 6개월여만에 처음 대면하며 탈북자 간첩 사건의 반전을 알렸다.

같은달 12일 민변이 한 언론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 사건은 탈북자와 우리 국민의 인식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며, 유씨의 여동생은 국정원 직원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오빠에게 큰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허위 진술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Y씨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자백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Y씨는 최초 오빠 유씨의 간첩 행위를 부인했다. Y씨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듣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2012년 11월, Y씨를 구속 수사 과정을 기록한 녹화영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의 녹화분은 증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 관계자는 이 무렵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Y씨가 혐의를 부인하자 그를 신문하던 수사관은 그간 유씨를 내사했던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집을 Y씨 앞에 내밀며 Y씨의 중국 본명을 크게 불렀다. "유00." Y씨는 자신이 화교란 사실이 들통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더불어 그의 눈 앞에 쌓인 방대한 서류철에 Y씨는 완전히 무너졌다. 누가봐도 유씨는 명백한 간첩이었다.

Y씨가 심리적으로 몰리자 국정원은 이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Y씨의 등에 Y씨의 중국 본명을 프린트한 게시물을 붙인 뒤 국정원 요원들을 앞에 세웠다. 그리고 번갈아가며 Y씨의 중국 이름을 소리내 불렀다. "유00." 매일 계속되는 가혹행위에 Y씨는 자해를 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어떤 날은 말로 구슬리고, 어떤 날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회유와 폭력의 나날이 반복됐다. 결국 Y씨는 투항했다. 국정원이 쓴 시나리오에 동의하기로 한 것. 민변 등에 따르면 Y씨는 국정원이 미리 짜준 얼개에 자신의 진술을 맞췄다. 국정원은 Y씨에게 "간첩 행위를 인정하면 유씨의 형량을 낮춰주고, 나중에 한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Y씨는 1월3일 최초로 혐의를 시인했다.

민변 "거짓증언 강요"조작 의혹 제기
유씨 여동생 구금·폭행 주장…진실은?

그러나 Y씨의 진술을 기초로 한 공소장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 국정원은 Y씨가 2012년 여름, 유씨로부터 받은 USB를 들고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북으로 갔다고 설명했지만 최근 Y씨는 "나는 화교이기 때문에 차를 통해서도 북한에 갈 수 있으며, 심장이 약해 수영을 못할 뿐 아니라 여름에는 두만강에 물이 불어 수영으로 국경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또 유씨가 북에서 간첩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시점(1월22∼24일)에 중국에서 지인을 만나 사진을 찍은 장면, 검찰 조사에서 ‘유씨가 간첩이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Y씨가 답을 하지 못했던 점, 유씨가 노트북과 함께 보위부로 보냈다는 소포의 무게가 기준 이하인 점 등이 의혹으로 제기됐다.

특히 검찰은 유씨가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신변을 위협받아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것으로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 Y씨는 "우리 가족은 이미 2011년 7월 북에서 중국으로 완전히 이사를 했기 때문에 검찰의 주장대로 '2012년 2월과 7월에 북한에 정보를 넘겼다'라는 기소 사실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 역시 "이외에도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증거가 더 있다"며 "재판에서 유씨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정원 민변 고소
진실공방 2라운드

지난달 27일 민변은 유씨 사건에 대한 공판을 앞두고,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는 유씨의 여동생 Y씨가 자리한 가운데 "북한 화교 출신 공무원 유씨 사건이 국정원에 의해 조작됐다"는 Y씨의 증언이 이어졌다.

이어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Y씨는 피고석에 앉은 오빠 유씨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민변 측은 "Y씨가 국정원의 강압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유씨를 방어했다. 하지만 검찰은 "과거 '왕재산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신병을 확보한 변호인이 핵심 증인인 여동생을 회유해 진술을 번복하게 만들었다"고 공격했다.

공판 후 국정원은 "민변이 회유·협박 등 허위 사실을 말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씨 변호인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유씨 변호인단 장경욱 변호사는 "모든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증거를 통해 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김용민 변호사는 "유씨의 억울함이 곧 밝혀질 것"이라며 "유씨와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재판에 임할 것"이란 각오를 전했다.

유씨의 공무원 임용을 전후로 시작된 '간첩 사건'의 진실공방이 국정원과 민변의 소송전으로까지 확대된 가운데 현재 Y씨는 오는 23일 강제 출국을 앞두고 서울 모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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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