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노무현 쇼크④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신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그와 고락 함께했던 측근들 재조명
상주 자청해 빈소 지키며 오열하고 현 정권에 쓴 소리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 이후 국민들의 슬픔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비탄에 빠져 있다. 끝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슬픔이다. 노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그의 삶과 죽음을 함께 해온 이들, 또 그의 퇴임과 함께 야인의 삶으로 돌아가거나 구속수감 등 불운을 함께 맞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통해하는 사람 중 한 명은 그의 ‘영원한 후원자’를 자처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다. 노 전 대통령으로 인해 구속 수감됐던 강 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으로 인해 잠시나마 석방되어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소식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오열했던 강 회장. 그와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노 전 대통령이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당시였던 1998년이다.

‘영원한 후원자’ 강금원
서거 이후 눈물의 재회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쓴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란 글에도 언급된다. 이 글에 따르면 당시 강 회장은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후원금을 내며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랬던 강 회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3년 12월이다. 당시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인수했던 생수업체의 빚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19억원을 제공한 것이 문제가 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때부터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에게 늘 ‘면목 없는 사람’이었다. 강 회장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내가 겪을 고초를 대신 겪은 사람”이라는 말로 그의 소개를 대신했던 노 전 대통령. 최근 강 회장이 구속된 후에는 강 회장에 대한 옹호와 애정을 담은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보게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치적 동반자로 인생역정을 함께 한 두 사람은 결국 산 자와 죽은 자로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구속된 지 4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로 한달음에 달려와 오열했다.

자신들의 관계에 끊임없이 의혹의 시선을 던졌던 세상은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후에야 강 회장의 진심에 귀를 기울였다.

강 회장은 빈소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하며 흐느꼈다. 그는 또 “내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검찰에 그렇게 얘기했건만 나를 잡아넣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있느냐”며 자신과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처럼 정치가와 사업가 사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 준 두 사람의 얘기는 정치사에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영원한 ‘노의 남자’다. 빈소에 오자마자 영정에 담배 한 대를 올리는 것으로 애도를 시작한 유 전 장관은 장례식의 모든 과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했다.

대중들에게 ‘친노 아이콘’으로 불리며 단 한 번도 그에게 등을 돌린 적이 없는 유 전 장관.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단협 등 반노-비노 세력이 노 전 대통령의 후보사퇴를 종용하는 것을 보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했을 만큼 그의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였던 유 전 장관은 서거 이후 빈소에서 떠나지 않으며 상주 역할을 했다. 또 검찰과 언론 등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던 세력들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27일에는 자신의 팬클럽 홈페이지 ‘시민광장’에 ‘넥타이를 고르며’란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정권과 검권과 언권에 서거당한 대통령”이라고 썼다. 또 지난달 29일 열린 영결식에 대해 “죄 없는 죽음을 공모한 자들이 조문을 명분 삼아 거짓 슬픔의 가면을 쓰고 지켜보는 영결식”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비판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발 벗고 나서 대변인을 자처했던 문재인 비서실장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다.

대통령 재임 시 가장 신임했던 참모이자 친구였던 문 전 실장은 부산지역에서 시국사범 변론을 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건강문제로 잠시 청와대를 떠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5년 내내 노 전 대통령의 옆을 든든하게 지켰다.

그리고 위기에 빠질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역할을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어김없이 변호인으로 나섰다. 서거 이후에도 슬픔을 감추고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국민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 숨진 정황을 설명하고 장례절차 등 모든 부분에 참여해 ‘영원한 비서실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각별한 인연의 끈
죽음으로 끊어져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신 결과가 이겁니까”라며 분노를 유감없이 표출했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도 정치인생의 시작과 마지막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한 인물이다. ‘좌희정’이란 별칭을 얻을 만큼 노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던 안 최고위원은 1997년 노 전 대통령이 운영하던 지방자치연구소에서 일을 하면서 그와 연을 맺었다.

이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경선캠프의 사무국장, 비서실 정무팀장,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민주당 충남 논산·계룡·금산 지역위원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안 최고위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안 최고위원의 홈페이지에 “안희정씨는 나한테 오늘이 있게 한 아주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정치적 동지”라며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사람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라고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일시 석방돼 빈소를 찾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 민주당 의원도 오열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박연차 리스트에 연루되어 나란히 구속되는 불운을 겪은 세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의 허망한 서거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 1987년부터 인연을 맺고 노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였던 이 전 수석은 “평생 동지이자 친구인 노 대통령을 생각하면 죽지 못하고 살아 있다는 게 부끄럽고 죄스럽다”며 오열했다.


또 “정치보복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참극을 당했다”며 정부와 검찰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이명박 정권과 검찰이 진정으로 반성해야만 화해가 될 수 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1970년 경남 김해의 한 암자에서 46년생 동갑내기로 노 전 대통령과 만난 정 전 비서관은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고락을 함께했다. 고향 친구인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2003년 8월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로 입성하면서부터다. 당시 4급 공무원이었던 정 전 비서관은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돼 4년여 동안 청와대 안살림을 맡았다.

잠시나마 석방돼
마지막 길 동행

이처럼 40년이 넘도록 각별한 관계가 유지된 사실로 인해 두 사람은 비리의혹에 자주 휘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구속수감에 이른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우광재’로 불렸던 최측근 이광재 의원도 뒤늦게 빈소를 찾아 침통한 마음을 전했다. 이 의원은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라며 “다만 권 여사님과 가족들은 제가 살면서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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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