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의 ‘역발상 경영’ 화제

“메이저대회 최고의 권위는 우리 스스로”

매년 4월 초 전 세계의 골프 마니아들을 TV 앞에 붙들어 놓는 마스터스.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가장 역사가 짧고 자금력이나 탄탄한 조직력도 없는 일개 골프장에서 시작한 대회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돈보다는 명예 “후원금은 일절 사절”
중계권료·입장권 판매·영업 무관심

마스터스는 다른 메이저대회와는 달리 기업들의 후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다. 엄청난 수입을 보장하는 TV 중계권료나 입장권 판매, 골프장 영업 등에도 무관심하다. 세속적인 가치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돈 보기를 돌같이’하는 마스터스의 ‘경영 비법’이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1등 대회를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돈 보기를 돌같이’
1등 대회 비법


마스터스는 77년간 타이틀 스폰서를 허용하지 않았다. AT&T, IBM, 엑슨모빌, 롤렉스 등 4개의 기업을 후원사로 선정했으나 이들은 후원금이 아니라 물품 공급 후원 계약만 맺고 있다. 이에 따라 코스 내 어떤 기업 로고도 노출되지 않는다.

다른 메이저대회인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도 타이틀 스폰서를 두지 않고 있지만 대신 공식후원사라는 창구를 통해 여러 기업에서 연간 수천만달러의 후원금을 받고 있다. US오픈을 여는 미국골프협회는 마스터스처럼 기업 후원을 받지 않다가 2006년부터 셰브론, 롤렉스, IBM, 렉서스, 아멕스카드 등 5개 기업 파트너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PGA챔피언십을 주최하는 PGA오브아메리카는 ‘패트론(후원자) 스폰서’라는 이름으로 아멕스카드, 내셔널렌터카, 로열뱅크오브캐나다, 메르세데스벤츠, 오메가 등의 후원을 받는 것도 모자라 대회 로고 사용 대가로 25개 기업으로부터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 등 ‘수익사업’에 열을 올린다.

브리티시오픈을 주관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1978년 롤렉스를 시작으로 니콘, 메르세데스벤츠, HSBC, 두산 등의 후원을 받았으며 최근 마스터카드, 랄프로렌을 추가하는 등 후원금에 익숙해졌다.

마스터스는 사실상 중계권료가 없다. 매년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지금까지 CBS가 독점하고 있다. CBS가 중계권료로 지급하는 금액은 다른 대회에 비해 매우 싼 300만달러다.

미국 PGA투어는 CBS와 NBC 두 방송사로부터 10년간 28억달러 이상을 중계권료로 받는다. 연간 2억8000만달러를 대회 수 40개(메이저대회 제외)로 나누면 대회당 700만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메이저대회는 일반 대회보다 몇 배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US오픈 테니스대회는 2008~2011년 중계권료로 CBS에서 1억4500만달러(연간 3625만달러)를 받았다. 마스터스는 최소한 중계권료로 연간 3000만~5000만달러 이상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오거스타는 중계권을 포기하는 대신 대회 도중 1시간 동안 4분만 광고를 하도록 하고 하루 총 16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해 상업성을 배제하는 데 성공했다.


마스터스는 입장권 수입에도 큰 관심이 없다. ‘패트론’이라고 부르는 4만 명에게 평생 볼 수 있는 권한을 이미 넘겨버렸다. 이들은 대회 기간에 1인당 200달러(1일 62.50달러)만 내면 된다. 하지만 이 입장권은 시장에서 수십 배로 폭등한다. 연습라운드 관람 티켓만 1000달러가 넘고 4일짜리 티켓은 7000달러를 웃돈다.

US오픈의 하루 입장료는 가장 싼 것이 250~385달러며 1주일짜리 패키지는 1875달러다. 브리티시오픈은 하루에 90파운드부터, 7일은 240파운드부터 판다. 메이저대회 중 가장 인기가 떨어지는 PGA챔피언십은 1일에
75~85달러, 1주일에 285~550달러다.

더 큰 입장료 수입은 기업 고객을 위한 VIP용 티켓이다. 브리티시오픈의 ‘프리미어 스위트’는 30명 수용에 1만6500파운드(약 2800만원)부터 시작한다. PGA챔피언십은 코스 내에 VIP석을 마련해놓고 50석은 15만달러(약 1억7000만원), 150석은 42만5000달러(약 4억8000만원)를 받고 있다. US오픈 13만5000달러(약 1억5000만원)와 21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짜리 패키지가 있다.

오거스타는 대회를 마치고 나면 코스 관리를 이유로 5개월간 휴장에 들어간다. 다른 코스들이 메이저대회 개최를 이유로 그린피를 올리는 등 영업 활동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회 기간 나타나는
‘마스터스 메뉴판’

마스터스는 기업들의 후원과 TV 중계권료 대신 대회 기간에만 판매하는 기념품 판매 수입(3000만~4000만달러)과 패트론 입장권 판매 수입(1000만달러), 식음료비 등으로 대회 상금과 경비를 충당한다. 대략 6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매년 1000만달러의 수익을 남긴다. 이 돈마저 아마추어 골퍼를 후원하는데 사용한다.

마스터스는 돈을 포기했지만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지역에 어마어마한 경제효과를 안겨줬다. 영국 BBC는 마스터스 주최로 조지아주에 50억달러의 경제효과가 발생하고 일자리 6만 개를 창출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다른 메이저 대회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지만 이들 대회는 세계 각국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140∼150명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반면 마스터스는 출전 자격부터 다른 메이저 대회와 차별화하고 있다. 엄격한 출전 자격 조건을 충족시킨 100명 내외의 선수들만 추려 우승자를 가린다.

출전 자격 100명 내외, 다른 메이저는 140~150명
골프장 밖 식당 음식 값 껑충, 갤러리는 월마트 수준


올해 마스터스 출전 선수는 93명이었다. 역대 마스터스 우승자, 지난 5년간 메이저 대회 우승자, 작년 마스터스 공동 16위 이내 입상자, 2012시즌 PGA 상금 랭킹 30위, 2012년 세계 랭킹 50위, 올 3월31일자 세계 골프랭킹 50위, 작년 마스터스 이후 PGA 우승자, 지난해 US아마추어 챔피언 등이 이번 대회에 출전 자격을 얻었다.

외국인 초청선수는 이시카와 료(일본), 타워른 위랏찬트(태국) 등 2명뿐이었다. 이로 인해 ‘명인들의 열전’에 초대된 선수들은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그린재킷’을 입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올해도 이틀간 1, 2라운드를 치른 뒤 공동 60위 이내와 2라운드 선두와 10타 차 이내의 선수들만을 가려 3, 4라운드를 치렀다.

‘마스터스 메뉴판’은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 담장 하나 사이로 안과 밖이 매우 다르다. 골프장 담장 바로 앞 워싱턴로드 대로변에는 식당과 술집, 모텔, 주차장이 즐비하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4월 둘째 주 한 주 동안 이곳의 메뉴판은 평소와 다르다. 평소 20∼30달러이던 스테이크하우스는 ‘마스터스 위크’에는 50∼100달러짜리 메뉴판을 손님들에게 내민다.

그럼에도 이곳은 물론 주변 식당에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후터스’란 바 역시 해떨어지기 무섭게 만원사례다. 두 시간을 기다려도 테이블 하나 얻기 힘들다. 인근 술집들도 마찬가지이며 능력있는 웨이트리스는 하루에 버는 팁만 1만달러에 달했다는 지역신문 보도도 있었다.

외지인만 10만 명이 찾다보니 초절정 성수기를 맞은 모텔은 평소 20∼30달러하던 하루 요금이 매년 오르더니 올해는 200∼300달러로 폭등했다. 이런 게 싫어 ‘패트론’들은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 인터넷을 통해 모인 이들과 숙박비를 분담하며 ‘1주일간 동거’를 하기도 한다. 평소 무료주차 지역이던 상가 주차장이 20∼40달러까지 받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다.


갤러리는 돈벌이
수단 아니야

‘마스터스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골프장 담장 안은 어떨까. 마스터스 관람 티켓을 구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입장하면 담장 밖 세상과 딴판이다. 골프장 측은 하루 수만의 갤러리가 몰리는 이곳에서 먹거리도 팔지만 가격은 가장 싸게 판다는 ‘월마트’ 수준이다. 물과 콜라, 스낵류는 1달러, 칠면조·치킨 샌드위치가 1.5달러, 맥주가 4달러 선이다.

골프장 측은 그래도 남는 장사라며 10년 전 가격 그대로 받고 있다. 기념품 역시 올해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골프장은 돈을 벌기 위해 갤러리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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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