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재벌’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성공스토리

재벌은 금수저를, 천재는 머리를 갖고 태어난다

벤처기업인이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려 화제다. 주인공은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 사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치고 1조원대 ‘주식 부자’에 등극했다. 재벌가 출신이 아닌 김 사장이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그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결국 성공을 이뤄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 사장의 ‘벤처 신화’를 되짚어봤다.

흔히 재벌하면 삼성, LG, 현대차 등 굴지의 그룹 총수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재벌 개념과 지형이 바뀌고 있다. 수대에 걸쳐 부를 세습한 재벌가들이 분가 등으로 핵분열한 틈새로 신흥갑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다. 김 사장은 최근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지분평가액은 무려 1조원이 넘는다.

재계전문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김 사장의 주식가치는 지난 15일 엔씨소프트 주가가 장중 한때 18만2000원까지 올라가면서 1조203억원을 기록했다. 김 사장은 엔씨소프트 주식 560만6091주(지분율 26.74%)를 보유하고 있다.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등극
지분평가액 1조원 돌파 “웬만한 황태자 명함도…”
리니지·아이온 ‘대박행진’
“모르면 간첩, 못하면 컴맹”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이 1조원이 되기 위한 마지노선은 엔씨소프트 주가 17만8500원이다. 시가총액 3조6448억원(상장사 48위)인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지난해 말 5만원대에서 3배나 뛰었다. 덩달아 김 사장의 지분가치도 연초 대비 200% 가까이 증가해 벤처기업 경영인으론 처음으로 상장사 주식부호 10위권에 진입했다.

김 사장의 지분 가치는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쳤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9494억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7583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4664억원) 등 재벌그룹 ‘황태자’들이 모두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김 사장보다 지분 가치가 높은 재벌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2조9339억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2조8550억원),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현대중공업 최대주주·1조9211억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1조5458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1조1900억원),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1조1447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1조150억원) 등 7명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보유주식 가치 1조원을 돌파한 김 사장이 대기업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의 부호로 급성장했다”며 “일부 금융권에서 엔씨소프트의 목표주가를 20만원까지 전망하고 있어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재벌가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올해 42세인 그가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온라인게임 ‘리니지’와 ‘아이온’단 2개의 아이템으로 대박을 터뜨린 결과다.

눈에 띄는 점은 김 사장이 재벌가와 동떨어진 인물이란 사실이다. 부호 리스트에 거론된 재벌들이 하나같이 선대로부터 주식이나 가업을 물려받는 등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로열패밀리인데 반해 김 사장만 유일하게 직접 엄청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이다.
인터넷과 디지털로 대변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트렌드를 일찌감치 읽어 아이디어 하나를 무기로 세상이란 무대에 나와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김 사장의 성공스토리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표본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주가 급등
지난해 말부터 3배 뛰어

1967년 서울 출생인 김 사장은 198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 재학 시절 대학선배인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과 함께 문서작성 프로그램 ‘아래아 한글’을 개발하면서 벤처의 꿈을 키웠다.
1989년 선보인 아래아 한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 사장 등은 한글과컴퓨터를 세웠지만 김 사장은 학교에 남았다. 그는 같은해 한메소프트란 벤처를 창업해 한메타자로 잘 알려진 한글입출력프로그램 ‘한메한글’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김 사장은 1990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입사해 미국 보스턴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네트워크 분야에서 일을 했다.
그랬던 그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 서울대 전자공학과 최초의 여학생인 장인경 마리텔레콤 사장과의 인연에 기인한다. 역시 김 사장의 대학선배인 장 사장은 ‘게임업계의 대모’로 유명한 인물로, 1994년 카이스트 재학 중인 게임 마니아들을 모아 마리텔레콤을 세워 ‘단군의 땅’ ‘쥬라기 원시전’등 최초의 온라인게임을 만들었다.

김 사장은 당시 장 사장을 통해 ‘게임계 괴물’들과 인맥을 형성했고, 이는 결국 게임사업에 뛰어든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때 만난 파트너가 송재경 XL게임즈 사장이다. 두 게임천재의 만남은 국내 온라인 게임의 역사에서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 사장은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하면서 카이스트 출신으로 온라인 게임개발부문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송 사장과 손을 잡고 이듬해 ‘리니지’서비스를 시작했다.

맨주먹으로 12년 만에
재벌 반열에 ‘우뚝’

김 사장은 “소프트웨어가 효율화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해 독립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정한 게 온라인 게임 개발”이라며 “개발 당시 IMF 상황을 맞아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리니지가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대박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게임업계는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시기상조’로 여기고 김 사장의 도전을 ‘무모한 짓’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국내 초고속통신망이 잘 갖춰져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겨우 서버컴퓨터 1대로 시작한 리니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리니지 모르면 간첩, 못하면 컴맹’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절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진 PC방의 출현은 리니지 대박 행진에 기름을 부었다. 재료비가 들지 않는 온라인게임이 매출의 30%가 수익으로 남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만큼 김 사장의 재산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리니지로 뿌리를 내린 엔씨소프트는 지금 꽃을 피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리니지2’에 이어 지난해 11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온’으로 또다시 대박을 터뜨린 것.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리니지2 등의 기존 매출에 아이온 매출까지 추가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어 월평균 1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아이온은 지난 1분기 국내에서만 4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리니지는 294억원, 리니지2는 411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엔씨소프트는 지난 1분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1% 증가한 13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어난 5000억원이 매출 목표다. 직원도 1997년 17명에서 12년 만에 3000여 명으로 늘었다.
성공신화를 써온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집 담보로 대출…조폭들 협박…정치권 러브콜…리니지 후속작 흥행 실패…부인과의 이혼…벤처신화 속 시련도

김 사장은 리니지를 개발할 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리니지가 인기를 끌자 ‘조폭’들이 회사에 난입해 리니지 아이템을 요구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2004년 4월 총선 때는 성공신화와 젊은 나이, 벤처정신 등이 정당의 개혁성과 어울린다고 판단한 정치권에서 그를 적잖게 괴롭혔다는 후문이다.

2005년과 2006년 야심차게 내놓은 리니지 후속게임인 ‘길드 워’와 ‘오토어썰트’가 판매 부진을 겪은 데 이어 2007년엔 북미시장을 겨냥해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타뷸라라사’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무엇보다 게임 중독 현상이 확산되는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게입산업 폐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김 사장으로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련은 김 사장이 줄곧 ‘위기론’을 제기하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 까닭이다. 김 사장은 여전히 “갑부나 부호란 얘기가 맞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아이온을 출시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많은 실패 속에 배운 교훈들이 많다”며 “흥미로운 도전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전한 바 있다.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김 사장은 2007년 11월 ‘천재소녀’윤송이씨와 비밀리에 재혼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윤씨가 2004년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서로 눈이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 뺨치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윤씨는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00년 ‘24년 2개월’이란 나이에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 미디어랩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컨설팅회사 매킨지, SK그룹 계열사 와이더댄닷컴을 거쳐 2004년 28세로 SK텔레콤 최연소 임원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아들을 출산한 뒤 곧바로 최고전략책임자(CSO)겸 부사장으로 엔씨소프트에 합류했다. 윤씨는 엔씨소프트 지분 0.02%를 보유하고 있다.
김 사장은 2004년 11월 전 부인 정모씨와 이혼했다. 당시 그는 이혼에 따른 양육비와 위자료 등 재산분할로 300억원대의 엔씨소프트 주식(35만여 주)을 정씨에게 양도해 화제를 모았다.

연매출 5천억원 ‘눈앞’
직원 17명서 3천명으로

이혼 사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김 사장이 사업으로 가정에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추론이다. 정씨는 이혼 직후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가족에 대해 전혀 알려진 게 없을 정도로 그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며 “다만 김 사장과 이혼한 부인과 자녀들, 한때 엔씨소프트에 근무한 처남이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만 확인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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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