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⑧ 사진으로 본 노무현의 치열했던 63년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을 위하여…

산골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바보 노무현’으로 불릴 만큼 깨끗한 정치인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도덕성에 흠집이 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저 뒷산에서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까지 역임하는 등 나름의 인생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 갔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 인권변호사 활동에 나섰다. 1988년에는 지역주의를 허물겠다는 의지로 제13대 총선에서 부산지역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계에 입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의 시작이었다. 정계에 입성한 그가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청문회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다. 그는 그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정계의 판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2002년 ‘노풍’을 일으키며 제16대 대통령 당선이라는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당선만으로 세상이 바뀔 리 만무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노무현 정부는 ‘아마추어정부’라는 비아냥에 시달리는가 하면, 대통령 탄핵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임기 5년, 파란만장했던 참여정부와 그. 그의 가시밭길 인생과 정계 활동이 대통령직 퇴임과 함께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퇴임 후에도 그의 비운은 끝나지 않았다.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려 가족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비리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감수해야 했다. 도덕성은 물론 자존심마저 바닥으로 치닫자 노 전 대통령은 끝내 감내하지 못하고 결국 토요일 아침, 마을 뒷산에서 세상을 등졌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는 짧은 유서만을 남긴 채 63년 인생이 끝이 난 것이다.
어느 순간도 순탄한 적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의 삶.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를 향한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 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요시사DB,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저 앞마당에서 국민들과 대화를 가졌다.
 

탄핵 당시 참담한 심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사진설명
1. 초등학생 시절의 모습.
2.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
3. 군 복무 당시의 모습. (사진의 맨 왼쪽)
4. 사법연수생 당시의 모습.
5. 변호사 사무실 개업 당시의 모습.
6.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
7.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 당시의 모습.
8. 13대 국회의원 당선 당시의 모습.
9. 16대 대통령 당선 당시의 모습.
10.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모습.
11. 퇴임 후 손녀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노 전 대통령.
12.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노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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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현지서 탈옥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현지서 탈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