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⑦ 전직 대통령 수난사

무소불위 권력 끝은 언제나 모진 풍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노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정점에 섰던 9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부분 하야와 시해, 검찰 수사를 겪는 등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 속 모진 풍파에 휘말렸던 전직 대통령들의 뒤안길을 좇아가 봤다.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대통령직이 생긴 이후 권력의 달콤함을 맛봤던 이들의 말로는 씁쓸했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는 초대부터 3대 대통령으로 1948 ~1960년 재임한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은 반공에 기초해서 당시 강대국들의 정치적 각축전 아래서 나름대로의 외교력과 국가관으로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정부를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원치 않아도 쫓겨가고

그러나 끝은 좋지 못했다. 건국 초기에 필요한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초법적·권위주의적·폭력적 정치형태로 12년간의 장기집권을 시도한 과욕이 화를 부른 것. 3선 개헌과 3·15 부정선거로 이어진 이 대통령의 권력욕은 1960년 4·19 혁명이라는 역풍으로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결국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그는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죽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만 망명길에 오르면서 사법심판은 피해갔으며 대신 최인규 당시 내무부장관 등 측근들만 사형을 비롯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윤보선 전 대통령은 내각책임제 하의 상징적 대통령이었다. 실질적인 국가지도자 역할을 했던 장면 총리와 갈등하고 사회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하지 못해 5·16 군사쿠데타의 빌미를 제공, 도중하차했다.

1974년 민청학련 배후 지원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1976년 명동성당 3·1구국선언 사건으로 징역 8년, 1979년 YWCA 위장결혼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사법처리됐다. 검찰의 직접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져 법원 선고 후 형집행면제 처분을 받았으나 최초로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5~9대 대통령직을 지내면서 경제개발과 남북관계 발전에 물꼬를 트는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비극이 되어 돌아왔다.

3선 개헌과 1972년 ‘10월 유신’으로 종신집권체제를 획책하다 1979년 10월26일에 궁정동 안가 연회장에서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 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 ‘박통’이라 불렸던 박 전 대통령은 ‘시해’로 18년의 장기집권을 마무리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서거로 갑작스레 대통령직에 오른 최규하 전 대통령은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우유부단한 성품에 무책임한 행동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의 성립을 가능케 했다는 이유에서다. 최 전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을 한 번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최 주사로 불렸으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민주주의 잔혹사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한 헌정사상 최단명 대통령이었다.

1989년 12월 국회광주특위의 네 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와 임의동행명령을 모두 거부, 국회모욕죄 등으로 형사고발됐지만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12·12 군사쿠데타와 1980년 5·18 광주사태를 통해 차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시절 12·12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와 6공화국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노 전 대통령은 첫 검찰 소환과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안게 된 전직 대통령이며, 전 전 대통령은 친구였던 노 전 대통령에 의해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백담사에 유배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열어 본격적인 민주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임기 말 IMF 위기를 초래, 1998년 검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서면조사를 받았다.

또한 차남 현철씨가 그의 재임 시절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현철씨는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인 2004년에도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며 집권에 성공했다. 남북관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IMF 위기를 극복했으나 ‘게이트 공화국’ ‘3홍 게이트’로 불린 친인척 권력형 비리에 휩싸였다. 임기 말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기업체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

두 아들이 한 달여 사이에 차례로 구속되자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대국민 사과를 했다. 본인은 퇴임 직후인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면서 직접 조사는 받지 않았다.

퇴임 후 검찰 신세 ‘톡톡’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전임 대통령들이 겪은 비운을 피해가지 못했다. 높은 도덕성을 세우며 참여정부를 이끌었지만 퇴임 직후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연루되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은 것.

참여정부 측근들과 친형 건평씨와 부인, 아들 등 가족까지 수사를 받자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면서 홈페이지를 닫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수사 도중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전직 대통령 수난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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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