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가 왜 성매매죠?” 한 20대 여성의 이 당돌한 답변은 젊은 여성들이 ‘스폰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스폰서는 원래 고급 룸살롱 등 화류계 중심으로 손님과 여성접대부 사이에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였다. 그들만의 문화였던 스폰서가 일반 여성들 속으로 파고 든 것은 ‘애인대행 사이트’가 범람하면서부터다. 결혼식 하객, 가사도우미 등 건전한 역할대행을 앞세웠지만 실제론 상당수 애인대행 사이트들이 온라인 성매매의 온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리고 이 스폰서는 불황 속에서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저의 가치를 인정해 주시는 능력 있는 스폰서 구해요. 나이는 21살, 양천구에 살고요. 키는 163에 늘씬한 편이에요. 오래 만나도 항상 재밌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요. 옷 스타일은 원하는 대로 다 됩니다.”
한 애인대행 사이트에 스폰서를 구하는 여성이 올린 글이다. 구애를 펼치는 여성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남성을 은밀하게 유혹하고 있다. 공통점은 우선 무엇보다 남자의 능력을 강조한다는 것.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능력은 곧 경제력을 의미한다. 일부 여성은 호기심을 표시하는 무능력 남자가 귀찮다는 듯 ‘능력 없는 남자는 연락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표시해 놓기까지 한다.
“영양가 있는 남자만”
일명 ‘스폰녀’로 불리는 이들은 남자의 조건을 말한 뒤 자신의 나이와 신장, 몸매 등을 강조한다. 추가로 ‘함께 다녀도 절대 꿀리지 않는 스타일’ ‘고급스러운 럭셔리 스타일’ 등 홈쇼핑에나 등장할 만한 용어들로 자신의 상품성을 강조한다. 스폰녀들의 홍보문구를 모아놓고 보면 ‘신 인간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다.
‘유흥업소 출신 여성들이 아닐까?’라는 순진한 의문은 버젓이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무너져 버린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바에서 스폰서를 구하는 23세의 한 여성을 직접 만났다. 기자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몇 초간 훑어본 그는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명품 하나 걸치지 못했던 탓인지 그는 ‘영양가 없음’을 직감적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신분을 밝히자 그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자리를 뜨려했다.
간신히 진정시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그는 지금까지 두 명의 스폰서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동거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살진 않지만 서로 조건을 맞춰주며 살아가는 거죠. 전 남자에게 무리한 요구도 안 해요. 월 200만원이면 충분해요. 사정에 따라 주 1∼2회 정도 만나주는 조건이고요.”
어쨌든 스폰서가 변형된 성매매의 하나 아니냐고 묻자 그는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아저씨, 스폰서가 성매매면 결혼도 성매매죠. 스폰서 한다고 다 섹스부터 하는 줄 아세요? 스폰서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신뢰부터 쌓아야 해요. 돈 준다고 덥석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고요.”
애인대행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스폰서 관계는 조건만남이나 애인대행과는 달리 남녀가 나름대로 검증 과정을 거친다고 증언한다. 스폰서 금액은 최하 월 100만원에서 200만원 이상이 평균. 이 관계자는 “스폰서 관련 등록자를 매일 삭제하고 있지만 교묘한 문구로 올릴 땐 대처 방안이 없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대놓고 스폰서를 구한다고 밝히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남자’ 정도로 묘사해 놓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 내용도 성매매를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문구가 없기 때문에 자체 제재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세태가 자신의 조건과 능력에 맞춰 남녀가 단순한 성관계 이상을 거래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스폰서가 돼봤다는 모 대리운전회사 사장 A씨는 “애인대행 사이트에서 여자를 골랐으니 첫인상은 좋을 리가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만났는데 의외로 진짜 평범하고 괜찮은 여자들이 많았다”면서 “스폰녀들은 카드빚이나 생활비, 학비, 부모님 병원비 등 사연도 가지가지다. 속는 느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내 작은 도움으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죄책감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A씨는 “스무 살 넘은 스폰녀 중에 솔직히 처녀가 어디 있겠나. 남자도 ‘차가 뭐예요?’ ‘재산이 얼마 있어요?’하고 돈 밝히는 여자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는 여자를 스폰서해주기 마련”이라면서 “아쉽게도 스폰서 관계가 유부남과 처녀일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연애와 다를 바 없다”고 털어놓는다.
빠르게 증가하는 스폰녀
경제적 조건과 외모만을 따지는 만남이다 보니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고급차와 옷 등 남자의 겉모습만 믿고 만났다가 몸만 뺏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남성의 경우 빈발하는 사고는 금전거래를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다. 아무리 서로 검증을 한다고는 하지만 돈을 전제로 만난 만남의 끝은 행복보다는 불행의 씨앗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폰녀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손쉽게 돈도 벌고 멋진 남자와 로맨스도 즐겼다는 믿을 수 없는 성공담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인대행 사이트에 ‘건전만남’만 하겠다고 글을 올린 여성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들 중 월 수백만원의 스폰서 제의를 뿌리칠 수 있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이유에서다.
<스포츠서울닷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