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강경 보수파'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26 16: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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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플러스·외교 마이너스 "깐깐한 스타일"

[일요시사=경제1팀]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이 내정됐다. 남 내정자는 '돌직구남'으로 불릴 정도로 원리원칙을 중시한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안보'만큼은 튼튼히 다질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외교'다. 성격이 지나치게 깐깐해 주변국과의 협조체계 구축·협상 등 '총론'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각종 비리로 지탄을 받아온 국정원인지라 직원들도 남 후보자의 스타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새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이 내정됐다. 

지난 2일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연이은 도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위기 상황에 대처하면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고 예방하기 위해 시급한 인선을 우선적으로 발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회 검증 문턱
무사히 넘었다

윤 대변인은 남 내정자에 대해 "확고한 안보의식을 가진 분으로 지금의 안보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국정원이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일에는 남 내정자에 대한 국회 정보위 인사청문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면서 마무리됐다. 정보위는 보고서 종합의견에서 "후보자가 평소에 검소하게 생활해 온 것으로 보이고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경력이 상당해 보이는 점, 관련 연구와 강의에 진력해 온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정원장으로 직무수행을 무난히 수행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8일부터 진행됐던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의혹 등 남 내정자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야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남 내정자가 청문회를 위해 신고한 재산 내역을 두고 강원도 홍천군 토지 매입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남 내정자는 참모총장에 재직 중인 2004년 11월 경춘고속도로 설악인터체인지에서 20분가량 떨어진 강원도 홍천군에 밭 510m²(약 155평)를 부인 명의로 매입했다. 실거래 기준으로 3080만원선이었던 이 땅은 8년 뒤인 지금 6200만원선 정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똑 떨어지는 대북관 국정원 기능 강화 기대
주변국과 협조체계 구축·협상력 부족 평가

이에 대해 남 내정자는 "맹세코 투기를 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그는 "전역 당시 친한 동기가 같이 농사를 짓자고 해 산 것"이라며 "땅 값이 오를 만큼 오른 뒤 비싸게 주고 산 것이고 실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투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추미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주말 농장하겠다는 분이 농지에서 대지로 전체 땅의 2/3이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지목을 변경 한 것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따져 물었고 남 내정자는 "여름에 일하다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땅에 컨테이너를 설치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총 소득 7억여원 가운데 70% 이상을 저축한 것과 관련해서는 "평소 생활비를 적게 쓴다. 옷 한 벌을 15년 이상씩 입고 살았다"고 말했다.

남 내정자는 서경대 군사학과 석좌교수 재직 당시 군사학과 졸업생 26명 전원이 학사 장교로 선발된 것과 관련해 제기된 전관예우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2008∼2009년 당시에는 원광대 군사학과 초빙교수로 있었다"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가 원광대에 다니면서 서경대를 위해 로비했다는 게 되는 데 이게 납득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군 쏠림인사
부작용 우려


국정원장에 육군 장성 출신이 임명된 것은 1999년 12월 임동원 원장(육군 소장)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법조인 출신의 신건·고영구·김승규·김성호 원장, 내부승진의 김만복 원장이 임명됐고 현재 원세훈 국정원장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다.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군 출신 인사를 앉혀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보실장, 국정원장,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통일부 장관, 외교안보수석 등 외교·안보 요직 '빅6' 중 절반인 세 자리가 군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군사 정부'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기 고조 대북관계 어디로?

남 내정자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내정자는 모두 육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다. 남 내정자가 육사 25기로 가장 선배이며 육사 27기인 김장수 내정자가 남 후보자가 거친 6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등을 이어 받았다. 박 내정자는 김장수 내정자로부터 육군참모총장 직위를 이어받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정부의 안보외교정책 기조가 '강경책'으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지난 2011년 연평도 포격 같은 남북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강한 대응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정원에 민간인이 아닌 군 출신이 수장으로 내정된 것에 대해서 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 의지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정보 독점 우려
참여정부와 충돌

야권은 "특정 군맥의 독주가 우려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과거 상하관계로 맺어졌던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된 논의구조가 확보될리 만무하다"며 "가급적이면 육·해·공 인사들을 골고루 포진해서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하나회가 전횡을 부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문민정부 때 해체시켰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 멤버들이 육사 출신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정보 한정 및 독점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주축으로 한 육사 출신들이 결성한 사조직으로, 신군부 세력으로 발전해 1979년 군사반란인 12·12사태의 주역이 됐다.

윤관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평화시대를 함께 열자던 대통령의 다짐이 군 출신 인사 일색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박홍근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은 "이번 인사로 외교안보라인 인사의 핵심은 모두 육사출신이 장악하게 됐다"며 "벌써부터 신군부시대니 육사전성시대니 하면서 특정군맥의 득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외교안보라인이 군 출신으로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며 "안보는 1000번 강조해도 모자라지만 안보를 강조한다고 11명 축구선수 전체를 공격수로만 뽑을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남 내정자는 어떤 인물일까.


1944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난 남 내정자는 65년 육사 25기로 입학해 69년 임관했다. 하나회(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육사 출신 사조직)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 멤버가 아니었던 그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특히 남 내정자는 1979년 하나회 주동으로 일어난 12·12 쿠데타로 동기였던 김오랑 소령을 잃고 그의 묘소에서 통곡했다는 이유로 진급 누락 등 불이익을 받았다.

그가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때는 김영삼 정부 들어 하나회가 척결되면서 부터다. 남 내정자는 95년 6사단장을 시작으로 97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98년 수도방위사령관, 2000년 합참 작전본부장, 2002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군부 요직을 두루 거쳐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2005년에는 육군 최고 수장인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올랐다.

군 시절 기본 중시 철저한 ‘원칙주의자'
"FM장교 유명"…타협 모르는 '돌직구남'

한시에 능통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한문에 능숙하며 취미는 등산이다. 최전방 철책에서 지휘관으로 생활하며 병사들과 함께 걷다가 생긴 취미다.  

군 생활의 대부분을 작전분야에 몸담았던 남 내정자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FM'(군내에서 원칙이나 규정대로만 한다는 의미)의 대명사 혹은 '돌직구남'으로 불릴 정도다.


그는 부대 지휘관 시절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도록 했고, 부하들과 회식도 애국가로 마무리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직각보행을 어기지 않았으며 군 생활 내내 부하들에겐 청렴과 결백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참모총장 역임 후 2005년 4월, 40년간 몸담았던 군을 떠나면서 관용차 대신 쏘나타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장군으로서는 드물게 골프도 하지 않는가 하면 군사 교범을 마치 '성경'처럼 여길 정도였다. 육군대학 대대장반 장교들에게 '묏자리도 기관총 진지 자리를 찾듯이 하면 최고의 명당을 찾을 수 있다'고 강연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타협을 모르는 스타일로 육군참모총장 시절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크고 작은 충돌을 벌이며 대립했다.

노 전 대통령이 별장인 청남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자 청와대 참모들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남 내정자가 이를 거절한 것이 첫 번째 충돌이다.

남 내정자는 군 법무관을 국방부 산하로 옮기려던 청와대에도 반대했다. 당시 그는 "군 법무관이 지휘관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고려시대 무신 반란 사건인 '정중부의 난'을 언급한 것으로 비쳐 논란이 됐다. 그는 "(정중부의 난은) 무인들을 무시한 결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 쿠데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장군 진급 인사 문제로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 지난 2004년 육군 진급심사가 끝난 지 한 달가량 뒤인 그해 11월22일 장교 숙소인 서울 용산구 국방 레스텔 지하에서 육군 준장 진급심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는 괴문서가 발견되면서 부터다. 군 검찰은 '군 장성 진급비리 수사'에 착수했고 남 내정자는 전역지원서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의 사의를 반려하면서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그가 '나눔회'라는 군내 엘리트 사조직의 멤버라는 말이 돌았다. 2004년 12월 국방부 현안보고에서 당시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남 총장 밑에 있던 사람들이 다 진급됐는데 비리 자료를 수집해 경쟁자를 탈락시켰다"며 "군내 사조직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남 내정자는 예편 후에도 노무현 정부와 충돌했다. 2006년 당시 노 대통령이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라고 발언하며 군 복무기간 단축, 한미연합사 해체를 전제로 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을 논의 하자 이에 반발에 다른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2007년 경선 때
국방특보로 활동

전역 후 충남대, 원광대, 서경대 등에서 군사학 강의를 하며 지내던 그가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였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안보 분야를 자문해 왔다. 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등 중대한 안보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남 내정자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상의했다. 지난해부터는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국방안보 분야 특보로 활동하면서 국정원장은 물론 국가안보실장, 국방장관 등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왔다. 가족은 부인 김은숙씨와 두 딸이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남재준은?>

▲서울 출생, 65세
▲배재고·육사 25기
▲수도방위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서경대 석좌교수
▲새누리당 행추위 국방안보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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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