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 문다

뿔난 노무현의 대반격 카드

권양숙, 정상문 패 잃고 궁지 몰린 盧 ‘숨은 칼’ 꺼내든다
홈페이지 폐쇄 후 봉하마을 사저 칩거, 측근들과 대책회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격이 시작됐다. 전방위로 펼쳐진 검찰 수사로 가족과 후원자, 정치적 동지들의 치부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그의 목줄을 죄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을 찾지 못하고 승부에 나선 것. 노 전 대통령은 그동안 ‘소통의 창구’로 활용해온 인터넷에서 손을 떼고 봉하마을에 칩거, 전략구상에 들어갔다. 측근들 중 검찰 수사에 불려가지 않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불러들였다. ‘위문방문’을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린 유시민 전 장관도 봉하마을을 찾는 등 ‘최후의 측근’들이 봉하마을 사저를 찾았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노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반격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권은 노 전 대통령이 품안에 숨겨두고 꺼내지 않고 있던 회심의 칼날에 주목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당초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는 지난달 22일과 23일 전후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됐지만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기획수사’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29일 이후로 미뤄졌다.

검찰은 소환조사가 미뤄짐에 따라 우선 노 전 대통령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7장 분량의 서면질의서에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에 관한 질문이 폭넓게 기술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을 이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방어논리를 철저히 깨뜨리는 것으로 그의 발목을 잡을 완벽한 그물을 친다는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도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구속된 지난달 22일 “이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이라며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미뤄진 검찰 소환조사
검찰, 노무현 전략구상 돌입

‘사람 사는 세상’은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과 함께 그의 ‘말’을 세상으로 전하는 통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통로를 통해 ‘박연차 게이트’가 터진 이후 여섯 번의 글로 ‘사과’와 ‘해명’을 해왔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폐쇄는 뜻밖일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여섯 번째 올린 글에서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있다”면서 “노무현은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형 건평씨 사건 이후 국민에게 사과할 계기를 찾던 중 ‘박연차 게이트’ 사건이 일어나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마저 구속됐다면서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도덕적 명분을 잃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있는 것 같다”고 홈페이지를 통한 해명이 더 이상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이라며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글을 마지막으로 봉하마을 사저에 칩거, 4·29 재보선 후 있을 검찰소환 대비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정치권은 노 전 대통령의 ‘수’를 세는 데 부산하다. 노 전 대통령이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대선자금이 문제가 되자 대담한 승부수로 판세를 뒤엎었으며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역공의 기회로 삼는 등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특유의 투사적 기질이 더 두드러졌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조사에 휘말리지 않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린 유시민 전 장관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문 전 실장은 지난달 7일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사저를 방문했다. 특히 지난달 19일에 이어 사흘 만인 22일 다시 사저를 방문했다.
문 전 실장의 방문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과 오찬을 하면서 겸사겸사 합의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그의 방문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대통령의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다음날 이뤄져 대책을 논의할 조력자로서 사저를 찾은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았다.
실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검찰이 건넨 서면질의서의 답변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풍전야 봉하사저
복심 품은 칼 무엇?

녹록지 않은 정치력을 가진 유 전 장관도 사저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검찰 수사를 비판하면서 사저 방문이 ‘오래전부터 약속된 일’임을 알렸다. 약속된 일정에 따라 사저를 방문하려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왔다 가면 괜히 사진 찍히고 온갖 고약한 소설이 난무할 테니 오지 말라”고 만류했다는 것.
그러나 유 전 장관은 결국 사저를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과 나눈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 “위로해드리고 가는 길”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사저로 쏠린 시선들을 알면서도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봉하마을을 방문한 데 대해 정치권은 위로만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조언 외에도 노 전 대통령이 품고 있는 칼을 전할 ‘전달자’가 되거나 이를 휘두를 ‘팔’이 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권은 여러 가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중 하나가 꼬리를 자르고 몸통은 살린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수사에 많은 진척을 보인 검찰이지만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에 대한 확증을 찾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경우 노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비리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면 처벌이 힘들어진다.
노 전 대통령은 여섯 번째 글에서 박연차 회장이 조카사위와 권양숙 여사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나 정상문 전 비서관의 비자금 조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때문에 법적 책임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측근과 친인척 관리에 실패했을지언정 노 전 대통령이 사건에 중심에 서지 않는다면 현 정권의 ‘사정수사’ ‘기획수사’를 강조, 동정표로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 있을 것”이라며 “노건호씨, 연철호씨가 처벌 대상이라고 해도 비교적 가벼운 처분이 예상되고 있는 만큼 ‘노무현’만 살리면 큰 문제없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관측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 간 ‘빅딜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도 이 대통령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번 사건과 관련,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의 관련성을 강조 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 대한 의혹은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원혜영 원내대표 발의로 ‘이 대통령의 측근 천신일·추부길·이상득 등에 대한 박연차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번 법안은 ▲지난 대선을 전후한 시점과 지난해 대통령 측근에 대한 박 회장의 20억원 제공설 ▲천 회장의 대통령 특별당비 30억원 대납 의혹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기획출국설 등 3대 의혹을 특검 대상에 포함하고 있으며 천 회장,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의 ‘박연차 구명 대책회의설’도 조사 대상이다.
당은 이미경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현 정권 3대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진상조사위원회도 구성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들과 관련한 의혹이 검찰수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무런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검법 제안 이유를 밝혔다.

검찰 친노 두드려 먼지만 ‘풀풀’ 결정적 증거는 빈껍데기
노, MB 측근 두드려 ‘경고’하거나 정권 심장부 직접 겨냥

측면으로 치거나
정면으로 돌파하거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법 외에도 상황을 역전시킬 카드가 노 전 대통령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논란이 됐던 ‘봉하문서’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
현 정부가 일정 시일이 지난 후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가지고 있던 문서들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데 대해 당시 정가에서는 이 문서에 포함된 내용이 현 정권을 공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대국민사과’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건평씨 사건 이후 사과의 ‘때’를 골랐던 노 전 대통령이지만 본인의 소환조사로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사과만큼 좋은 패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검찰의 허를 찔렀듯 ‘대국민사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잃어버린 신뢰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